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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7

  • 작성자
    Lv.99 墨歌
    작성일
    12.08.15 11:54
    No. 1

    일단 돈을 벌어서 빨리 이 나라를 떠야겠단 생각 밖에 안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수우
    작성일
    12.08.15 11:55
    No. 2

    음,,,제대로 된 책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장준하 선생님의 자전적 수필로 "돌베개"라는 책이 있습니다.
    80년대초 그 책을 읽고,,,
    아~ 이렇게 아름답게 살다 가신 분도 있구나 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사상계 편집인으로 많이 알려지셨지만,

    학도병으로 끌려가서,,,,탈출,,,,임시정부가 있는 곳까지 고난의 장정...
    임시정부 도착,,,미군으로부터 군사훈련(음,,,내용상 정보계통)
    본토 입국 준비,,,그러던 중,,슬픈 해방(왜 슬픈 해방인지는 책을 보시면,,,,),,,쓸쓸한 입국,,,

    예전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꼭 책을 사서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이제 마음이 얼어붙은 듯...

    제 마음속에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급으로(^^) 존경하는 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묘로링
    작성일
    12.08.15 12:00
    No. 3

    이 분은 많이 비교되지요. 엘리트가도였으니 질투가 날만도하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난너부리
    작성일
    12.08.15 12:15
    No. 4

    백수우님, 그렇군요.
    그저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말씀해주시니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책 검색해보니 출판하고 있군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은림칠성
    작성일
    12.08.15 12:29
    No. 5

    우리나라 해방은 진짜 슬픈해방이죠... 스스로 해낸게 아니라 남의 손에 의해 해방됬고 그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지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초정리편지
    작성일
    12.08.15 21:59
    No. 6

    진짜 이분보면 친일파논란 어떻게해아되는지 궁금하죠

    일본군 자원입대한후 몇개월간 광복군의 열심히 항일운동하셨는데..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난너부리
    작성일
    12.08.15 23:02
    No. 7

    위키피디아에서 입대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왔습니다


    최기일은 그의 오랜 고향친구이자 아버지가 목사로 있던 교회 신도의 아들이기도 했는데[주 3], 최기일은 장준하가 동경신학교 재학 중 일본군에 입대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였다.[8] 최기일은 장준하의 일군 입대를 열심히 만류하였으나 장준하는 자원하여 학도병에 입대했다.[8] 후일 최기일에 의하면 '그는 어떤 뜻을 품었는지 일본군에 입대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8]'고 회고하였다.
    장준하는 자신이 자원입대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돌베개》에서 일본군 자원 입대 이유를 밝혔다. '도쿄의 일본신학교에 다녔던 장선생은 ‘우리 집안의 불행을 내 한몸으로 대신하고자 이른바 그 지원에 나를 맡겨 버렸다’고 회고했다. 그의 부친은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개신교 목사로 왜정의 요시찰 인물이었다. 학병을 기피하면 미구에 가족에 닥칠 어려움 때문에 학병에 지원했다[9]'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편집]탈영과 광복군 입대


    1944년 7월 탈영 무렵의 장준하, 왼쪽은 노능서, 오른쪽은 김준엽
    1944년 1월 일본 육군에 학도병으로 입소하여 훈련을 받고 일본 관동군 쓰가다 부대에 배치되어 복무하였다. 일본군 복무 당시 이름은 장안준하(張安俊河)였고[10], 후일 그가 일본군 탈출의 사실여부를 찾은 끝에 그의 병적기록부가 발견되었다.[10]
    1월 20일 중국 주둔 일본군 제65사단 7991부대에 배속[11]되었고, 같은 해 7월 7일 중국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탈영하였다.
    1944년 7월에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소수의 동지들과 함께 쉬저우 시내에서 일본군을 탈영, 가던 길에서 김준엽, 노능서 등 역시 일본군을 탈출한 조선인 청년들을 만나 함께 걸어서 안후이 성 임천까지 걸어갔다. 일본군에게 발각될 염려가 있었으므로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고 걸어서 갔다. 탈영하면서 수배를 피해 민간인 복장을 갖추고 충칭까지 향했다. 이때 하늘의 별을 보고 성경에 나오는 돌베개를 생각하며, 나라를 잃은 부끄러운 선조들의 모습을 보고 반성하며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들이 되자고 다짐했다. 후일 그의 자서전 돌베개는 이때 떠올린 야곱의 돌베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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