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북유럽 민족들은 지중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춥고 습한 곳에 살기 때문에 따뜻하고 비교적 몸에 맞는 옷을 여러벌 껴입었습니다. 켈트, 튜턴, 앵글로색슨, 바이킹족은 모직으로 만든 여러 가지 모양의 바지를 입고 리넨이나 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다리의 아래쪽을 감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튜닉, 셔츠, 바지와 겉에 입는 튜닉, 망토를 입었습니다. 망토와 튜닉, 가운, 나이트가운, 부츠, 미튼 때때로 모피로 안감을 대거나 가장자리를 둘렀지요. 여자들은 바지는 입지 않았지만 긴 튜닉 아래에 모직이나 리넨으로 만든 거친 스타킹을 입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어졌으며, 제대로 된 "상품"의 개념은 르네상스나 되어야지 나옵니다.
반면 유럽 봉건주의 시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귀족들은 옷자락이 끌리는 화려한 옷을 입고 섬세한 머리 장식을 하였으며, 남자들은 소매는 넓고 길며 길이는 짧은 튜닉과 뾰족한 구두를 신었습니다. 귀족이 아닌 농민들은 스스로 실을 뽑고 다채로운 모양의 옷감을 짰습니다. 외국에 나갔던 상인들, 십자군, 순례자들은 그리고 학자들은 동양이나 에스파냐는 물론 이탈리아, 터키, 몽골등에서 이국적인 옷감과 옷 모양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 이 떄는 완전히 이탈리아 인의 시대였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뽐내 보이는 것을 좋아했고 배우 같은 행동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부드럽고 우아한 옷차림에 르네상스 예술에 나타나있는 이상적인 인간의모습을 보였습니다.검은 비단 벨벳으로 만든 두블레에에 금실로 자수를 놓았고 흰색 셔츠는 옷깃에 끈이 있어 턱 아래에서 묶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호즈를 신고 둘로 나뉘어진 소매를 하고 코드피스를 찼지요.
사실 중세 유럽은 자료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아니, 자료 자체는 많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의생활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지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고대 로마가 더 자료가 많을 정도이니까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흔히 잽스 애니나 라노벨에 나오는, 혹은 우리나라 판소에 나오는 중세의 공주나 여인들이 입던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의 드레스......라는 건 다 구라입니다. 그 시절 사람들이 입던 드레스는 어떻게 뜯어보아도 대부분이 현대인의 미적 기준에선 촌스럽고, 유치하며, 무가치하고, 쓸 데 없는 그런 옷이었습니다.
전에 TV에서 중세 복식을 통한 시선권력 강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강의었지요.
산업혁명과 백화점이 등장하기 전에는 옷 한벌이 너무나 귀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누더기였고,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 몇 안되었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옷을 가내수공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옷 한벌의 가격이 어마어마 했다고 합니다. 옷이 전부 맞춤이었기 때문이래요. 지금도 기성복이 아닌 한 가격은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중세시대에는 떨어진 옷을 줍거나, 물려받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샀거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옷이 날개'란 말이 있습니다. 옷만 보면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산업혁명이 시작되어도 이 경향은 변하지 않았고요, 단지 프랑스에서 박리다매를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옷값이 떨어지게 됩니다.
다만, 인간은 누구나 '겉모습으로 있어보이려는' 욕망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귀족층은 '맞춤복'을 선호하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 우리들이 아닌 명품룩의 시작이 되었다는... 그런 강의였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강의였는데요.
종합하자면, 중세시대 옷은 가내수공업이었고 평민들이 입는 옷도 고액이라 평생 옷 한벌가진 사람이 대다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더기, 신발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옷이 두벌있으면 헐벗은자에게 주라고 되어있는데, 왜 이런말이 있었는지 그걸보고 알게 되었죠.
중세... 우리 생각만큼 화려한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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