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라한을 아는가. 그렇다. 중세시대에 머리를 들고 다니는 기사를 듀라한이라 한다. 농노들이 얼마나 기사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지 잘 나타내는 장원 괴담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듀라한은 상상력으로 끝나지만.
일본왕개미 사회에서는 아니다.
벼룩 파리가 있다. 이름 처럼 작다. 0.8mm 이 작은 녀석들은 산란을 준비중이다. 일본왕개미들이 영역에서 식량확보에 열중할 때 뒤쪽으로 다가온다. 일본왕개미는 배쪽에 황금색 털로 뒤덮이는데. 센서 역활을 한다.
벼룩 파리가 파고 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알이 마려운 벼룩 산부 파리들은 끝임 없이 시도를 한다. 그러다가 늙은 여왕개미를 발견하게 된다.
늙어서 털의 감각이 무뎌진 노인 일본왕개미는 처음엔 몇번 소가 꼬리로 파리를 쫒듯이 뒷다리로 다가오는 파리를 쫒아내지만 곧 노쇠하여 기력이 달려 엉덩이를 내주게 된다.
배쪽에 착지한 벼룩 파리들은 산란관을 허겁지겁 꺼내 그대로 꽂는다.
그제서야 눈치챈 노장 개미는 흥분하여 날뛴다. 뒷발 치기를 시도하지만 한번 삽입에 성공한 산란관의 힘은 강하다.
옆에 동료들이 달려들어도 소용이 없다.
시원하게 털어버린 벼룩 파리는 유유히 사라진다.
노장은 곧 다가올 끔찍한 미래를 직감한다.
현실을 부정하듯 둥지로 힘없이 도망간다.
닷새다.
앞으로 그녀에게 개미로써 남은 삶은.
고치를 벗고 투명하던 몸이 검게 되어 한마리의 몫을 하게 된 순간 부터 노장은 열심히 여왕과 구성원들을 위해 노역했다. 사냥을 했으며, 수많은 곰개미와 사무라이 개미, 불개미, 흰개미들을 물리쳤으며 승자의 전리품을 챙겨 여왕와 전우들에게 받쳤다.
과거의 영광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용맹했다.
그녀는 현신했다.
그녀의 거대한 두턱은 강력했고 무자비 했으며 노련했다.
투쟁의 세월 앞에 그녀는, 젊은 전우들에게 존경과 여왕의 신뢰를 받았다.
그랬던 그녀가 둥지의 어두운 귀퉁이에서 앞다리를 떨고 있다.
예정된 시간이 찾아왔다.
조금씩 떨리던 앞다리는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맹렬하게 떨리고 있다. 곧 몸 전체가 떨리며 그녀의 자랑스런 턱을 지탱하던 머리가 바닥 아래로 축 쳐졌다.
바로 그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노쇠한 그녀를 급습한다.
알이 부화하여 유층들의 그녀의 내장을 파먹기 시작했다.
머리는 쳐지다 못해 바닥을 쓸고 다녔다.
그녀의 육지는 이제는 그녀의 의지가 아닌 유층들이 장악했다.
원치 않지만 계속 머리를 땅에 대어 거칠게 쓸고 다녔다.
이를 눈치챈 동료들이 도와주러 다가오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었다. 안타까움을 삼키며 그저 외면 하는게 노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동료애였다.
결국 유층들의 의지대로 바닥을 쓸고 다니던 머리가 부러지고 급기야 찢어져 몸에서 떨구어져 나갔다.
바닥을 구른 머리에 박힌 두눈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졌다.
그런데도 유층이 장악한 몸은 움직였다.
이틀 동안 그렇게 목이 없는 시체가 되어 움직이는 듀라한이 된 것이다.
머리가 잘린 몸통으로 곧 내장을 다 파먹은 유층들이 성충이 되어 기어나올것이다.
벼룩 파리가 된 이들은 재빠른 날개짓으로 둥지를 유유히 벗어날 것이다.
엉엉 슬퍼
ㅠ..ㅠ
자연은 잔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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