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6

  • 작성자
    Lv.26 과곰
    작성일
    10.04.27 19:25
    No. 1

    머리좋은데요...?? 인기작가가 신문사 차리는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신문은 그리 비싸지도 않으니까요. 비싸지 않아서 힘들려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태산일명
    작성일
    10.04.27 21:25
    No. 2

    명보를 세우고 김용은 편집장겸 주필겸 정치평론에 신문연재를
    합니다. 아마 그게 그의 두번째 작인 벽혈검이었을 거구요.
    이후 사조삼부작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의 초인적인1인 3역의 역활로 인해 명보가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면서 그의 대필설이 나왔고
    공식적으로 일부 대필을 본인이 인정합니다.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것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무곡성
    작성일
    10.04.27 22:53
    No. 3

    대필을 인정했다고요?
    처음 듣는 말이네요
    어디서 들으신건지 링크좀 부탁드려요

    고룡이랑 헷갈리신게 아닌가하고 생각되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o*****
    작성일
    10.04.28 00:30
    No. 4

    공식적으로 인정 안했다고 기억했었는데 좀더 찾아 보니 일부 부재기간 대필은 인정한 경우가 있었나 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태산일명
    작성일
    10.04.28 00:51
    No. 5

    천롱팔불를 쓰던 도중 2번째 결혼을 하면서 신혼여행을 1~2달 유럽으로
    갑니다. 그 기간동안 신문연재는 계속되었고 결국 나중에 예광이
    신혼여행기간중에만 대필했다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예광과 김용이 처음 만난게 사조를 쓰기 전 이었고 그때 예광은
    중국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사조때부터 예광이
    대필하지 않았나 하는 설이 있습니다. 솔직히 신혼여행기간만 대필
    했다는게 궁색한 변경 같지 않습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태산일명
    작성일
    10.04.28 00:53
    No. 6

    아 그리고 예광은 이후에 고룡 및 와룡생의 대필도 했다고 합니다.
    대필계의 전설격이라 할까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목록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