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22

  • 작성자
    Lv.1 닐니
    작성일
    10.04.20 22:45
    No. 1

    딱히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는 질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Clari
    작성일
    10.04.20 22:52
    No. 2

    3. 달빠요 ㅡㅡ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꿀도르
    작성일
    10.04.20 22:57
    No. 3

    달빠랑 환빠가 몬가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2 삼성HDD
    작성일
    10.04.20 22:58
    No. 4

    2.원균빠.

    환빠나 달빠는 보기는 싫어도, 최소한 자기 국가를 말아먹을 정도로 크리티컬 띄운 놈은 존경 않하잖아요?

    근데 원균빠는 국가 말아먹기 직전까지 몰고간 세키한테 하악하악 거리는게참.....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빠랑, 일본에 빌붙어먹은 친일파빠 다음으로 한심하고 어이없는게 원균빠일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은수저군
    작성일
    10.04.20 23:00
    No. 5

    제일 위험한 건 환빠입니다.
    원균빠는 동조자가 거의 없고 달빠는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환빠는 민족주의와 결합하면 단숨에 백만파워를 내는지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나우자
    작성일
    10.04.20 23:00
    No. 6

    환빠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꿀도르
    작성일
    10.04.20 23:01
    No. 7

    달빠는 뭔지 모르겠는데 환빠는 환단고기 인가 이건가 보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9 흑마인형
    작성일
    10.04.20 23:01
    No. 8

    환빠가 뭐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묘로링
    작성일
    10.04.20 23:11
    No. 9

    실제로 이순신이 잘싸우든 어떻든 박정희 시대에 와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고평가 된 것은 확실합니다.

    원균이 문제가 있든 어쨌든 이순신과 라이벌 구도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더 그러한 원균 까기가 심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근데 원균 빠는 도대체 글에서 어디까지 가야나오는 겁니까.

    솔직히 이순신장군을 인물 까면 안되는 이유가 그 분이 민족의 영웅이라서 그렇다면 그게 더 어이없는 일이지요. 역사적 재조명은 어느시대에나 있는 법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세라프스
    작성일
    10.04.20 23:30
    No. 10

    그래도 거북선 신화는 좀 까여야 맞죠
    일본 사료를 정설로 받아들여서 세계 최초의 철갑선 최고! 한건 좀...
    철갑선 신화는 현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얼마나 연구를 안했고
    일본의 학계에 얼마나 종속되어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듯 싶어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윈드데빌改
    작성일
    10.04.20 23:30
    No. 11

    거북선이야 태종때 만들었던건 국사시간에도 배우는 내용이고,,
    다만 이순신 장군의 활약은 배의 우월함 등도 있지만
    그 질적인 우월함들도 이순신 장군의 미리 준비해서 나온것 아닌가요.
    그조차 13척의 배만으로 일본군을 박살내는 활약보면 질만이 아니라는걸 보여주고 -_-;;
    어쨌든 그글 때문에 제4차 슈퍼한우대전이 묻혀버린 =_=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o*****
    작성일
    10.04.20 23:34
    No. 12

    원균빠의 오버질 때문에 원균이 아예 과거시험부터 아버지가 시험관으로 있었던 부정시험에 임진왜란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쥐뿔도 공이 없는데다가 실제로는 목낚시도 못해서 십시일반 으로 목 얻은게 제일 많아서 일등공신 먹은 경력이 있다는 정말 웃지 못할 사람이였다는게 더 까발려 졌을뿐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콤니노스
    작성일
    10.04.20 23:36
    No. 13

    환빠가 답이 없죠. 이미 주요 논리(그게 있기는 했다면)가 박살난지도 몇년인데 지금도 믿고 있는 부류는 이미 그게 신앙 체계로 승화한 종자들이라 더이상 논리와 증거로 교화하는것도 불가능하지요. 함부로 깠다가는 '우리 민족 좋다는 소린데 뭘 그렇게 깐깐하게 나오냐'식으로 어설픈 민족주의자들까지 링크되서 끌려오기 때문에 개난감한 사태도 벌어지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no*****
    작성일
    10.04.20 23:37
    No. 14

    환빠는 사실 학문적으로는 일빠와 사촌입죠. 환단고기 저자부터 진성 친일파......... 일본의 대동아 공영론 슬쩍 모방하기 등등.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PandaRol..
    작성일
    10.04.21 01:17
    No. 15

    그것들 말고도 대책없는 빠들은 많지요.
    한가지 잘한 것처럼 보인게 있으면 다른 것도 잘하고 못한 것은 없다는 듯이 하는....

    ㄴ빠
    ㄱ빠
    ㅈ빠
    ㅇ빠

    앞에 글자들을 확실한 글로 적을까 하다가 그냥 제일 처음의 자음 하나만 적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선위
    작성일
    10.04.21 01:53
    No. 16

    달빠는뭔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세이
    작성일
    10.04.21 08:33
    No. 17

    원균은 맹장축에 속합니다. 육군파죠.
    솔직히 자리를 완전 잘못 앉았을 뿐, 싸움만은 무척이나 잘합니다.

    삼국지로 따지자면 닥돌형 장비나 여포쯤 되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4 무념무상
    작성일
    10.04.21 10:12
    No. 18

    원균이 육군파? 원균은 육군에서 전과도 없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어서다
    작성일
    10.04.21 10:36
    No. 19

    원균이 여포나 장비라니 너무 심한 비약인듯 ㅡ.ㅡ
    대체 무슨 전공이 있다고 그렇게 비유를 하셧는지 ㅎㅎ
    원균이 여포면 최영장군이나 척준경 이런분들은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호우속안개
    작성일
    10.04.21 10:51
    No. 20

    원균이 맹장이라는 증거 즉 사료나 기술면이 있나요? 순전히 추측과 날조를 인용한거 아닙니까?

    원균은 살이 비대하고 뚱뚱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장수인지 모르겠다는 글은 본적이 있습니다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공부하세요
    작성일
    10.04.21 11:27
    No. 21

    이순신이 고평가되었다고 말하시거나 원균이 저평가되었다고 말하시고 혹은 원균이 명장이라고 말하시는 것이 바로 잘못된 것입니다.

    예전에 원균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한참 논의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원균 옹호파들이 각종 사료찾아서 비교대조해보고 조사하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했었는데, 그 결과 역사를 뒤져봐도 원균이 맹장노릇을 할 일이 없습니다. 여진족 잡을 때도 실제로는 원균은 공을 세울만한 위치의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녹둔도 토벌과 니탕개난 평정,시전부락 토벌전 등을 내세우는데, 이중 녹둔도 토벌은 김탁환에 의한 날조된 왜곡이고 니탕개난의 경우는 그가 공을 세울만한 위치가 아니었으면 시전부락 토벌전의 경우는 참전은 했으되 그의 소속은 좌위소속의 1계원장어었습니다. 후방대기하다 백업해주는 보직이었는데, 이 전투는 이일이 습격으로 순식간에 승리해버린 전투였습니다. 즉 그가 나설 일이 없습니다.

    원균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가 관직에 오른 것도 비리의 의혹이 제기되었죠.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정황상으로 보자면 심증이 가죠. 기록상으로 보면 거의 확실합니다. 또 임란 전까지 그의 관직생활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않좋았습니다. 그럼에도 경상우수사까지 되죠. 관직평가도 않좋고 전공도 없는데 승진은 됩니다. 참고로 원균은 명문가인 원주 원씨 출신에 윤두수, 윤근수 형제와는 동서지간이었고, 윤두수의 아들은 선조의 부마였습니다.

    그가 용맹 하다는 글도 임금앞에서 자기편 사람을 소개하면서 붙는 수식어에 불과할 뿐입니다.그나마도 포악하다는 내용이 실록에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란 이전에 전공도 전무할뿐 아니라 임란 이후에 그의 전공은 이순신과 같이 세운 기록뿐입니다.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백성들과 군졸들 등쳐먹던 포악한 탐관오리일뿐이며 임란 초 적군을 보지도 않은채로 자기 부대를 불지르고 이순신 함대의 두배전력인 자신의 함대를 자침시키고 도망쳤고, 이순신과 같이 싸울때는 자그마치 전투를 끝낸 아군에게 활을 쏴서 피해를 입혔으며 이순신을 공을 탐해 그를 험담했고, 이순신 파직 후 한나라의 수군을 자그마치 싸워보지도 못한채로 전멸시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웁니다. 실록에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공을 탐하고 병법의 기초도 모르는 지휘를 했으며 어떻게 그런 놈이 선무일등 공신이 될수 있었는지 잘 나와있습니다. 선조가 그를 공신의 반열에 올려놓자 신하들이 그러죠. 그 새끼는 공신될 자격이 없는데 선조 니가 올리니 그냥 놔두마.

    이순신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그의 전공에 의문을 품고 그의 여러기록들을 교차검증해보면 이건 완전히 드라마입니다. 임란초기 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승승장구하다 시련이 있고 목숨을 잃을뻔하다 여기저기서 구명해서 간신히 살아나고 백의종군하다 복직 후 기적의 승리,그리고 종전과 더불어 전사. 임란 중 그 삶은 인간시대고 인간승리의 전형입니다. 처절하기까지 느껴지죠.

    마치 그가 박정희로 인해 뜬 것인양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박정희가 싫어서 원균을 띄운 세력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의 재조명은 조선시대부터였습니다. 이순신을 그리 싫어하던 선조조차 그를 일등공신에 올릴수밖에 없었고 후대 임금들과 신하들은 이순신을 높게 평가하고 이순신의 후예들은 별 한일도 없이 벼슬길에 올라 후한 대접을 받았죠.

    가장 중요한 점은 이순신은 일본과 명나라까지 높게 평가하지만 원균은 듣보잡이죠.

    원균을 옹호했던 사람들조차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봤지만 찾으면 찾을 수록 원균의 치부만 나오고 그의 긍정적인 부분은 전혀 나오지도 않았죠. 역사를 살펴보면 볼수록 원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그소수의 기록들조차 진실성을 의심받을수밖에 없고, 어찌 옹호해줄래야 방법이 없다고 한탄한 원균빠도 있었죠.

    원균은 재평가하면 할수록 인간말종이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서 이름이 올라간 장수중에 그보다 더 무능력하고 욕심많고 한나라의 운명을 오락가락하게 만든 장수는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오히려 과소평가되었고, 원균은 지금 제대로 알려진 것조차 과대평가 되었습니다. 대로 알려진 것조차 과대평가 되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공부하세요
    작성일
    10.04.21 12:11
    No. 22

    솔직히 원균의 부정적 기록중 교차검증으로 그 상황을 확실히 검증할수가 없어서 그렇지 그의 부정적 기록을 다 살펴보면 엽기적이기 까지 합니다.

    무과응시때도 부정의 의혹이 있고, 인사평가가 않좋았음에도 진급이되고, 선조28년에는 충청병사가 되어서도 계속 비리를 저지르고 병사들에게 뇌물을 받고 군대에서 빼주며 무리한 형벌을 일으켜 다친자가 많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그를 원망했다는 기록이 있고 난중일기 1597년 5월 8일기사에 자기 부하인 서리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으며 한양의 권세가들에게 계속 뇌물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고, 선조29년에는 상당산성을 농번기에 짖는다고 백성을 강제로 혹사시켜 농사를 하지 못하게 되어 백성들의 원성을 샀으며 부실공사로 비가 내리자 무너질 정도였다는 기록도 나오며 1597년 3월 조정의 장계에서 이순신 함대의 부산 공격이 크게 실패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모함하다가 이순신과 함께 작전을 했던 김응서가 권율에게 모함임을 밝혀 들키기도 하고 징비록의 기록에는 이순신을 대신해 수군통제사가 되자 이순신이 신임하던 장수를 모두 버리자 병사들이 계속 달아나 조선 수군의 전력이 감소되고 또 군량 확보나 함선건조 및 군기 확립같은 것이 전혀 되지 않았음에도 운주당 기생을 불러 들여 질탕한 술잔치나 벌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원균이 이순신을 몰아내고 삼도 수군통제사로 부임하기 전에, 먼 친척이 되는 안중홍을 찾아가 서 말하기를, "나는 이 직책에 오른 것이 영광스럽지 않고 오직 이순신에 대한 치욕을 값은 것이 통쾌할 뿐입니다."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전설적인 기문포 해전도 압권입니다. 기문포해전을 논하자면 당시 일본과 협상하느라 잠시 휴전상황이었는데, 원균이 기문포에서 왜적을 잡아서 47급의 수급과 승전보고를 합니다. 처음에는 조정에서도 좋아했죠. 그런데 문제는 이후에 진실이 바로 밝혀졌죠. 기문포에 상륙한 왜적은 전투병력이 아닌 경상우병사 김응서가 허가한 벌목증을 소지한 일꾼들이었고, 그들을 상대로 함대를 동원해서 사격을 했음에도 자그마치 나무꾼 30명에게 반격당해 판옥선에 탄 140명이 학살당하는 참사를 당합니다. 그럼에도 중간 내용 쏙 빼고 승전보고를 해버리죠. 그런데 고성현에서 지네 현령이 싸우다 죽었으니 새 현령을 보내달라고 자세한 전투상황을 장계로 올려 진실이 들어나죠. 거기에 협상중이던 일본과 명나라에서 항의해오고 그 와중에 일본은 자신들의 피해가 32명이라고 하고 올라온 수급은 47급이고... 15급의 수급은 누구?

    안골포에서도 웃기죠. 왜군이 버리고 간 빈배 불사르다가 자그마치 여러 장수들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총맞아 죽습니다.

    칠천량 패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했는데 알고보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도망가버리죠.

    위에 언급하지 못한것도 많고 위에 언급된 것도 거의 절반 이상은 정사에 자세한 정황이 기록된 진실이죠. 같은 파벌에서도 지켜주지 못하고 조선시대 최악의 막장 임금 선조가 유일한 지지자이죠.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목록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