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천주교 인정이라기 보다는 당시 신해박해 연루자들이 당시 정권의 주도세력이자 정조정책의 지지자인 남인세력이기 때문에 축소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신해통공을 통해 폐단으로 불렸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로운 상업발달에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역시 기존 국역부담자인 육의전의 금난전권은 유지하면서 특권은 유지했기 때문에 이걸 혁신이라고 할만한 정책인지는 의문입니다. 서얼등용 역시 혁신이라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서얼층에 대한 점차적인 관직 개방이 이어진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청 문물 수용 역시 정조만의 혁신적인 생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봅니다. 훨씬 이전부터 집권 노론 내에서도 존재했던 인물성동론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조 척신 제거는 영조시기에 이미 노론과 척신 중심으로 정권이 구성되었기 때문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자신만의 탕평책을 위함이었지 세도정치와 연결 짓기에는 무리라고 봅니다. 이 외에도 규장각, 장용영, 화성, 초계문신제 등 역시 혁신이라기보다는 복고적인 왕권강화를 위한 개혁이였다고 봅니다. 정조 본인조차도 자신을 유교적으로 이상적인 왕을 의미하는 '군사'를 자처했고 또 이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정조를 허물어져가는 조선을 왕권을 중심으로 다시 정비하려한 복고적인 개혁을 시도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물론 정조가 뛰어난 왕이며 조선 재부흥에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인물이라는 점은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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