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임주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 내 시야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득해지고,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이내 나는 낯익은 세트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촬영이 진행되고 있지만, 불길하게 조명이 흔들리고 있었고 스태프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주원은 촬영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는 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피곤에 찌들어있었다.
스태프들은 그의 연기에 몰입하지 못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흘리듯 말을 뱉었다.
"이게 벌써 몇번째야.. 제발 좀 끝나라.."
"야..야.. 너만 힘드냐 지금? 다 이악물고 버티는거 안보여? "
스태프의 말을 못들은척 하는 주원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사실 그의 집중력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컷! 주원 씨, 다시 한 번 가볼게요." 기건우 피디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과 강행군속에 멘탈과 체력이 약한 임주원은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이게 진짜라면..." 나는 무심결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본 미래는 임주원이 아닌 다른 배우가 첫사랑입니다에 출연했다면 벌어졌을 상황이었다.
주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원씨, 내가 봤을 때..."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첫사랑입니다는 주원씨가 했으면 결과가 안좋았을것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공범자에 집중하는 게 맞아요."
전화 너머에서 주원의 한숨이 길게 들렸다.
"정말... 그렇겠죠? 고마워요, 팀장님. 나도 이젠 잊고 공범자에 집중할수있을것같아요."
주원의 목소리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드디어 주말이 지나고, 스페셜 방송이 편성되었다.
첫사랑입니다의 주요장면들이 편집된 특집방송이 송출되면서 평소 바빠서 못 봤던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첫사랑입니다'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가정집, 가족들이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엄마, 이 드라마 왜 재밌어? 그동안 나 멜로싫어해서 안봤는데 "
딸이 드라마에 눈을 고정시킨채로 물었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주위에서 '첫사랑입니다' 이야기 할때 처음에는 시큰둥했는데, 요즘은 이 드라마 이야기뿐이야."
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같아. 앞으로 정주행해야겠어."
드라마 '첫사랑입니다'가 연일 시청률 기록을 갱신하면서, 스케줄은 더욱 빡빡해졌다.
매일같이 새로운 촬영 일정이 추가되었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부담을 느낀 사람은 기건우 PD였다.
촬영 현장은 항상 분주했다. 기건우 PD는 모든 장면을 꼼꼼히 확인하며, 완벽한 촬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고, 피로가 누적된 눈빛은 점점 흐려졌다.
기건우 PD는 촬영 장면을 지켜보며 지시를 내렸다. "카메라 2번, 조금 더 왼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어, 그렇게 . 배우들, 다음 장면 준비해 주세요."
조연출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PD님, 조금만 쉬시죠. 요즘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세요."
기건우 PD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 쉬면 안 돼. 이 드라마는 다음씬이 가장 중요한 장면이야. 끝까지 완성해야해."
하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기건우 PD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기건우PD의 코에서 피가 멈추지않고 흐르기 시작했다
"PD님!! 피..!! 피가!!"
조연출이 놀라서 소리치고, 주변 스태프가 촬영을 멈추고 몰려들었고
기건우PD는 그장면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시간 추가 촬영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표영호 부장은 기건우 PD를 돕기 위해 잠시 다른쪽 현장에 나와 있었다.
그는 모니터를 보며 촬영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스태프가 급히 달려왔다.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기건우 PD님이 쓰러지셨어요!"
표영호 부장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라고?! "
"지금 병원으로 급히 이송 중입니다. 촬영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결국 쓰러지신 것 같아요."
표영호 부장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스태프들은 당장 본촬영을 이어갈 방법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당장 내일모래 방영일인데 촬영을 이어갈 감독이 없잖아?"
조연출이 말했다.
카메라 감독이 답답한 듯 말했다.
"지금 촬영 멈추면 모든 일정이 꼬이는데.. 방송국에 남는 PD도 없고.."
그때, 한 스태프가 생각났다는듯이 소리쳤다.
"잠깐만, 표영호 부장님이 계시잖아요!"
모두의 시선이 표영호 부장에게로 쏠렸다.
" 저..저는 추가촬영으로 이야기하고 왔는데, 일단 회사와 이야기해볼게요"
표영호 부장은 촬영장 한쪽으로 이동해 정선우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너머로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전화를 받았다.
"표영호 부장님, 무슨 일이죠? 지금 촬영 중 아닌가요?"
나는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정팀장, 큰일이야. 기건우 PD가 쓰러졌어. 병원으로 급히 이송 중이야."
표영호 부장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실려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뭐라고요? 기 PD님이 쓰러졌다고요? 지금 현장은 어떻게 됐나요?"
"상황이 매우 심각해. 지금 촬영을 계속 이어갈 감독이 없어서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
표영호 부장이 놀람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널뛰듯이 이야기했다
"그럼, 부장님이 직접 본촬영을 맡아주실 수 있나요? 지금 상황에서 부장님 말고는 대안이 없는것같은데요"
나는 표부장이 진정할수있도록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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