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된건 한국에 다행인 일임.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공산주의 이념에 빠져 허우적대는 좌파성향이 대다수였습니다.
그외 김구를 비롯한 우파계열도 자주독림과 민족주의를 대두로 했을 뿐이지 지금의 우파적 성향을 가진 분들은 이승만이 유일했죠.
더군다나 그땐 일본이란 승냥이를 내쫓았더니 미국이란 거대한 호랑이가 들어왔다며 외세의 간섭 자체를 반대하기 바빴습니다.
이승만, 김일성 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소련과 미국은 이미 합의 할 생각이 없었던 국가들이었고 그걸 간파한 김일성이 소련을 충동질한 시점에 아직도 현실을 자각 못하고 분단은 절대 안된다던 일부 독립운동가분들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김일성과 소련에 의한 공산통일밖에 답이 없었습니다.
설마 미국의 도움 없이 소련과 김일성의 남침을 막을 수 있다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친미주의자인 이승만이 낙동강으로 연명하며 미국에 살려달라 읍소하니 미국이 달려온거죠.
그 이후 한국은 확실히 한미상호방위를 맺으며 일본 다음의 친미국가로 거듭났고 그게 지금의 경제발전한 한국의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승만이 독재자인 것도 맞고 실질적으로 독립운동 하는 것에 공이 큰 것이냐 말이 많은 것도 맞지만 다른 이상주의자인 독립운동가분들 보단 친미주의에 올배팅 때린 감각이 이 한국이란 나라를 성장시킨 가장 큰 도움이 된건 팩트라 생각합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을 해방시키기 전에 이미 예전부터 식민지들이 열강들로부터 독립 했을 때 국가행정이 마비될 정도로 민족반역자들을 무분별하게 집단학살 하던 것을 보아왔기에 소련의 총부리가 생생하게 겨눠진 상황에서 남한에 남아있던 친일파들을 무작정 다 죽이는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민특위처럼 친일파 처벌에 있어 이승만의 묵인도 있지만 가장 큰 건 미국이 법적으로 친일파들을 없애는걸 막아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의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기 위해 민족반역자건 아니건 얼마 안되는 배운 놈들을 죽이는건 아무짝에 쓸모 없는 짓기 때문이죠.
배신자들을 죽여야 한다는건 한국인들만의 문제니까요.
아 그리고 일단 한번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빌어먹을 세도정치와 왕정을 없앤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거 아시나요? 정조 이후 순헌철 3명의 조선왕이 통치하는 삶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 하던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는거???
오히려 일본이 발전된 지식으로 식민지에서 더 뽑아먹기 위해 조선인들의 영양상태를 생각하는 등 덜 수탈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는데 왜 식민지 되기 직전의 100년 때보다 훨씬 인구가 급증할까요??
분명 우리가 배운대로 일본은 자국의 공업화를 위해 부족해질 식량생산을 위해서 조선을 전부 일본의 농업대채화 만들며 수탈해간건 팩트지만 사실 일본이 수탈했던 것보다 조선 양반들이 수탈했던게 더 가혹했고 백성들이 훨씬 죽어나갔단 뜻입니다.
일본의 군부가 쿠데타 일으키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더 돌아버려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기전까지 일본의 수탈보다 조선의 수탈이 더 가혹했고 살기 힘들었습니다.
위안부라느니 녹그룻 공출 같은 것도 결국 일본의 군부가 돌아버렸던 1941년 이후의 일들을 모두 모아 일본강점기 전체가 다 그랬다는 식의 반일주의자들의 선동이 크죠.
또한 어느나라든지 건강해지려면 나라의 근간이 되는 "토지"를 개혁해야 하는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양반과 왕정을 초기화 시키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시켜서 기존의 신분제를 개판시켜놓으니 한국이 독립 이후 농지개혁을 하며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다른 개발도상국이 한국처럼 성장하지 못한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이 이 농지개혁으로 인한 토지개혁을 하지 못했단 것입니다.
개발도상국들의 엘리트들이 아무리 해외에서 배워와 제도를 만들고 기술을 도입해도 그걸 따라갈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받쳐주지 않으니 국가의 성장이 빠르게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했던 것이죠.
거기서 한국은 국가수립과 더불어 바로 농지개혁을 함으로써 농민들에게 적어도 우리집의 "장남"만큼은 교육시킬 수 토지를 나눠주게 됩니다.
가족이 배를 주려도 어떻게든 우리집의 대들보 가장, 장남들은 교육시키겠다는 당시 한국의 교육문화와 농지개혁이 맞물려 해외에서 배워온 엘리트들의 국가계발과 그에 따른 교육 받은 인력들의 시너지로 한국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또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만들지 않고 단순히 조선이 스스로 으쌰으쌰 갑오개혁 하면서 잘해보자!!! 하면 일어나기 희박합니다.
누구나 공교육에서 배웠듯이 나라가 촛불 앞의 등불인 상황에서도 조선의 윗대가리들은 "토지개혁"만큼은 절대로 손대지 않았으니까요.
오죽하면 동학농민운동의 농민들도 토지개혁 해달라고 외치는데 그걸 무시할까???
사람들이 마냥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잊고있는게 조선은 그만큼 병들고 살기 힘들고 미래가 없는 국가였습니다.
자기 생일잔치에 국가예산의 30%를 써먹는 명성황후가 실권자인 나라가 뭘 바뀜???
차라리 식민지 시대가 조선인들한테는 나았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식민지로 지내자는건 아니지만
지배 계층의 수탈은 계급이 있는 사회라면 어디든 있어 왔습니다. 그걸 정당화 할 생각은 없지만, 과거 양반의 수탈이 심했으니 일제 시대가 더 살기 나았다? 그건 말이 안되죠. 양반들이라고 해서 신분제가 있던 그 시절 내내 수탈만 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일제 강점기 전체가 다 그랬다는 식의 반일주의자들의 선동] 이라고 하셨죠? 일제 강점기의 수탈에는 이리도 관대하신분이 왜 양반들은 항상 수탈만을 행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사회 구조, 정치적인 상황, 혹은 당시 경제의 순환 구조등 여러 이유가 있는 맥락 자체를 배제한 생각일 뿐이죠.
그리고 일본이 신분제를 철폐 시켜 한국이 발전했다?
그럼 한가지 묻고 싶은게 일본은 신분제를 철폐 시켜 놓고 조선의 기득권들에게 귀족 작위는 왜 줬습니까?
신분제 철폐로 인해 한국이 발전했다? 애초에 모순적인 말이죠.
때문에 일제강점기때도 양반 의식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제 시기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 바로 그 기득권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본 역시 신분제가 있던 나라였는데 일본이 우리나라 신분제를 철폐 시켜준 덕분에 한국이 발전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죠.
심지어 노비제도 한국 전쟁 이후에나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볼때마다 참 답답한데, 일제 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된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닙니다. 어느시대건 수탈이 있었다는 말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정조 이후의 한국양반의 수탈에 대한 광기는 타이푼님의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숙종 때부터 시작되었던 환국과 이후 영조 정조를 거치며 이어져온 시대에 뒤쳐진 "절대왕권"을 향한 조선왕들의 양반의 거세화는 이전 조선에서 있었던 양반들의 수탈을 뛰어넘는 광기를 불러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공교육에서 배우는 산림철폐, 이조전랑 철폐, 각 당파의 몰살은
이전에 조선이 500년이란 긴 역사를 이어져 오게 했던 당파 즉 토론정치가 아닌 "너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라는 극단적인 대립과 적대심, 광기를 가져왔고
이게 절정에 달하게 만든게 정조입니다.
사실 한국역사학계는 제가 말씀드린 정조 이후의 순헌철 세조정치 시기를 덮어버리기 위해 우리가 그래도 근현대 돌입하는 정조 때까지는 훌륭했다고 변명하기 위해 누가보면 세종대왕급으로 격상시키는 감이 있는데 정조는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하는건 기본 본인이 최고라는 나르시즘에 빠진 애새끼같은 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신하들의 입장이겠지만 정조가 등신인데 자기 나르시즘에 빠져 사는 등신으로 묘사될 정도니까요.
그런 정조가 본인의 나르시즘과 영조 때부터 이어져온 양반 사대부 죽여버려 왕권강화하기에 진심을 보이니 양반들은 서로 당파가 다르면 죽여버리려고 하고 서로 어떠한 타협도 없으며 양반사회 내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한다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자정작용을 못하고 뿌리부터 썩어버렸던 것이죠.
그렇게 사실상 영조 이후 당파균형, 견제는 사라진 상황에 정조라는 절대왕권이 40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마자 정조는 뭘 믿고 외가에 자기 어린 아들을 맡긴다고 했는지 몰라도 그 외가가 왕을 주무르며 이전 한국사에서 보기 힘든 극심한 수탈의 조선이 완성되게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정조 이후의 조선은 아주 끔찍한 상황이었고
한국사학계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그냥 3정이 문란했고 홍경래 같은 난이 있었다고 아주 짤막하게 가르치고 넘어갈까요? 마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만들었던 부분은 가르치지 않고 원폭에 대한 희생자 코스프레하는 교육만 열심히 가르치는 것처럼??
그 당시의 처절함을 제대로 가르치면 일본이 식민지 시킨게 더 낫다는 말을 정당화 시키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그 정약용이 애절양이란 시를 지으며 한탄을 했을까요?
오죽하면 3.1운동 당시 독립만세 시위와 반대로 독립반대 시위까지 있을정도일까요??
여러 백성들은 차라리 일본이 지배하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정조 이후 순헌철 시대 세도정치의 조선수탈을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습니다.
궁금하시면 조선왕조실록이라도 찾아보세요.
서울대 사학과에서도 3.1운동 조선백성 모두가 만세운동 외친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많은 백성들이 조선의 수탈로 돌아갈까 두려워 독립반대 시위도 있었다고 가르치죠.
그리고 말씀해주신대로 실질적으로 완전히 노비제나 토지기득권의 힘이 사라진건 625한국전쟁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적어도 일본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광무개혁이니 뭐니하면서 황제를 칭하며 지랄하는 고종의 500년 조선왕조를 무너뜨린 것 자체가 이미 조선인들이 자력으로 무너뜨리기 힘든 큰 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의 당파성론에 반대합니다.
너네는 언제든 말로 싸우기만 하니 우리가 지배하는게 낫다는게 일본의 당파성론인데
저는 조선이 500년이나 이어진건 각 신하들이 서로 자신들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며 "견제"와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무엇이든 경쟁과 균형이 깨지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조선은 오히려 당파의 논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의 자랑으로 여겨도 될 정도로 선진정치의 모범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당파논쟁이 깨지는 것 또한 숙종의 환국과 그 이후의 불안정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정통성 부족한 영조의 절대왕권 강화, 그리고 나르시즘에 빠져 이미 숙종과 영조 때 박살난 신하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걸 막아줄 가장 기본적인 지방 이권들 마저 다 부숴버렸기 때문에 정조 이후 신하들이 자신들을 견제할 다른 당파도 없어지고 왕도 약하고 지방권력도 없으니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하여 나라 전제를 어떠한 견제도 없이 마음대로 주무르며 수탈하던게
정조 이후 순헌철 시대의 세도정치입니다.
지금도 전 위기감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은 현재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을 일군 1차 베이비붐 세대가 돌아가시며 우파의 지지기반이 사라지고
전두환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2차 베이비붐 4050세대가 한국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게 바로 국회에도 투영되어
지금 한국은 박근혜 이전까지와 다르게 완전히 민주당만의 독주체재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파든 좌파든 어느 한쪽이 균형을 깨고 독점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면 조선 후기처럼 독선적이고 위험한 상황이 한국에 오게 되리라 봅니다.
간단하게 국회에 들어가 검색해봐도
한국이 발전해왔던 시기는 신기하게도 국회가 어느정도 좌와 우가 균형을 이루었었습니다.
지금처럼 한쪽 정당이 "헌법" 개정과 "탄핵"을 제외하고 마음대로 법을 만들정도로 우세한 적이 군부독재 시절을 제외하면 없었죠.
뒷 이야기는 사족이지만 결국 숙종부터 시작된 환국과 영조와 정조를 통한 사대부 죽여버리기는
신권의 균형을 깨버려 조선이란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게 당연할 정도고 식민지 시절이 나았다 생각날 정도의 망국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 조선왕들의 절대왕권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아집은 고종 때도 똑같잖습니까???
순헌철과 다르게 고종 때는 다를거란 말을 하지마십시오.
옆에서 청나라가 줘터지고 일본이 천황 빼고 다 바꿔 하는 상황인데도
본인은 "광무"를 외치며 병신짓을 일삼던게 조선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의 조선보단 일본의 식민지가 조선백성들에겐 더 나았습니다.
지금도 비슷합니다. 저출산의 이유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실적인 제약은 집값의 폭등이죠.
한국은 특정도시에 모든 국가의 역량을 집중한 효율성장으로 이만큼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로인해 좋은 일자리는 전부 주요 대도시에 밀집화되었고 이로인해 집값이 폭등했고 이걸 금리를 올리든 재건축을 하든 손을 봐야하는데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며 자연스레 오르는 부동산 투기 열풍을 "재태크"라는 말바꾸기 사회분위기로 많은 40대 이상~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전 재산이 부동산, 아파트에 꼬라박히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50대 중 70%가 유동성 자산은 거의 없고 전재산이 당신이 살고있는 아파트 한채에 묶여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이런 40~50대는 조선의 토지 기득권과 같은 한국의 부동산 기득권이 되었고 좌파든 우파든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지경에 오게 된 것이고 이 집값은 손도 못대면서 애만 낳아달라고 외치다 그것도 포기하고 국가는 저출산 해결에 있어 그냥 손을 놓은 상황입니다.
조선시대 보단 나아졌지만 결국 한국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열풍은 국가소멸로 이어지게 됐네요.
그나마 일본이 조선은 초기화시켜줘 한국이 이정도까지 발전하게 되었지만
이제 누가 지금의 21세기 한국 부동산 버블을 초기화 시켜줄까요?
이 나라는 조선을 보고서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을 보고서도 반성없이 그놈의 민주화만 외치는 몽상주의자들 등신들의 민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라일 뿐입니다.
흠.. 매국노들이 날뛰는데 뭐라 못하겠네.. 역사를 공부해봐야하나.
일본이 수탈을 더 적게 했다? 그랬다면 3.1운동은 없었겠지.
일본이 한국을 강경통치해서 반발이 심해지니, 대만에겐 유화책을 펴서 대만사람들은 일본을 좋아하잖아.(실패로 교훈을 얻었달까)
한굴을 없애버렸고, 2등시민, 글을 알지못하는 사람의 부동산을 빼앗기도 했고, 한국인은 중학교까지만 배우게 했고(똑똑한 한국인은 필요없으니), 미국과 패전후 30일간의 공백기동안 유동성을 만들어서 각종 비싼 문화재나 보석들을 싸그리 사서 튀었고.. 그 유동성으로 한국금융은 망가졌고..
역사를 알면 좋아할 수 없는 나라지. 그들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었을수도 있는데, 625로 한반도는 황무지가 되었고.. 리셋되었음. 한국은 625이후에 발전한 거지.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은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미국엔 감사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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