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 전후에 태어난 세대다.
조선의 유교적 사상과 문화에서 가장 배제된 세대라고 볼 수도 있죠..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근대화를 접했고 신식 교육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댕기머리 대신에 단정하게 다듬은 머리를 동백기름으로 넘겼고 비단 한복 대신 양장을 걸쳤다.
물론 이러한 근대식 혜택을 받은 것은 금수저 자제들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늘어진 팔자인지는 신세대 신혼 부부라는 제목으로 나온 당시 대중잡지에 실렸습니다.
신혼 초기에는 양식집에서 식사를 했지만 늘 그럴 수는 없다. 아침 열시에서 열한시에 일어나, 침대 기지개를 킨다. 막 잠에서 깨어나 찬물에 손담그기가 싫어 전화(이 시대에 젊은 부부의 집에 전화를 건다.
(자전차가 지금의 경차 한대 값인 그시절에 침대도 있었고 집에 전화기가 있었네요.)
젊은 부부는 설렁탕을 시키고 아침겸 새참을 먹는다.
(요즘으로 치면 아점이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찬물에 손대기 귀찮다고 그 비싼 당시 13전이나 하는 설렁탕을 배달시켜 묵었다.
김첨지는 마누라에게 먹일 설렁탕 한그릇 값을 벌기 위해 허벌나게 하루종일 뛰어다녔는데요. ㅜ..ㅜ
그렇게 밥을 다 먹고 소화를 시키다가(침대에서 빈둥거렸다는 말) 데빈 물로 씻고 몸단장을 하고, 양장을 꺼내 입고 젊은 부부는 오후 세시가 넘어서 외출을 한다. 구경터나공원으로 놀러감. 도중에 간식도 사먹고 코오피도 드시고.
그렇게 설렁설렁 놀다보면 저녁때를 놓쳐서 어둑어둑 해져서야 집에 돌아옴. 또 설렁탕을 시켜서 먹음.
시상에, 세상에. 하루 두끼를 설렁탕을 시켜 묵다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역시 돈이 좋긴 좋네요.
하루종일 부지런을 떨어도 하루 두끼 먹기도 힘든 시절에. 설렁탕으로 하루 두끼를 먹다니 ㅜ.ㅜ
김첨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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