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십상시의 난 같은 걸 생각하면, 그래봤자 내시라는 건 공감이 잘 안가네요. 조조는 유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잘 먹도 잘 살았던게 맞습니다. 또한, 제가 댓글을 단 이유는 조조의 학살이 정당했는가, 정당하지 않았어도 황제가 되려면 꼭 필요했는가를 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한, 조조의 서주 대학살 이후 민심이 많이 떠나가고 진궁이 배신하고 서주의 인재가 오나 촉 쪽으로 유출된 걸 보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었다는 것도 공감이 안가요. 황제를 따르는 백성이라고 죽인다면 훨씬 더 많이 죽여야 할테고, 차라리 백성을 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게 낫다고 봅니다.
이런 해석도 있더군요
여포가 연회장에서 한껏 자랑하고 있었는데, 유비가 나타나자 조용해졌다.
[즉 유비가 무서워서!]
장비와 관우가 왜 유비를 따랏을까?
[쳐맞고 강제로 형제 맺어서!]
유비가 패왕인 이유 1.
조조의 대군으로부터 계속 추격 당하면서도 유유자적 도망 다님.
패왕인 이유 2.
유비가 쌍검술을 사용하는 점을 봐서.
보통 검도에서 쌍검술만 해도 어마어마한 근력이 필요한데, 심지어 균형잡기 힘든 말을 타고 쌍검술을 다룸. 어마어마한 허벅지 파워와 근력과 실력의 소유자.
유비가 카리스마가 넘치는 상남자인 근거 [당시 50대 나이로]
말괄량이 손상향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점만 봐도 상남자 중 상남자!
기타 유비가 깡패 같은 모습이 그려지기도 ( ..)
헉, 댓글 두개 쓴 줄 알고 지웠는데, 아니었네요. 짧게 말하자면 정사 삼국지에는 그런 내용 없습니다. 오나라 기록 쪽에는 형주 땅을 빌렸다 이런 구절은 있는데 그게 다에요. 또한 형남 4군은 유비가 스스로의 힘으로 점령한게 맞고, 그 외에도 빌렸습니다. 다른 땅을 돌려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4군 중 3군을 내놓으라고 한 건 잘못입니다. 물론, 유비도 그게 부당하다고 항의했어야지 뜬금없이 옹양주 운운하면 안되었고요. 뭐, 손권도 유비도 형주 땅을 나눠 먹기 싫었던 거겠지만요. 이 분쟁은 익양 대치로 결국 형주 땅 나누기로 함으로써 마무리 됩니다.
장르 소설에 굳이 그런걸 따져야 하나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xxx의 삼국지' 같은 일반 소설이 아닌 이상.
장르 소설로 글을 쓴다면 분명 작가만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고.
그 스토리 내에서 필요에 따라 인물 설정이 되는 것이죠.
즉, 작가 마음이라는 말.
유비를 어떻게 묘사하든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전개하기 위한 장치라면 얼마든지 ok입니다.
주인공이(요샌 삼국지 인물을 안 쓰고 만들어내죠.) 유비 휘하에 있으면서 유비의 유능함을 느끼는 스토리라면 유능한 것이 보는 맛이 있을테고.
조조나 도겸이나 손권이나 유장 밑에 있다면 유비가 통수를 치는 쪽이 스토리에 반전도 줄 수 있고 도움이 되겠죠.
조조는 등장할때부터 확실한 연고와 입지가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유비는 유씨성을 가진 누구를 대려와도 가질수 수준의 명분 뿐이었죠. 그럼에도 돗자리 짜던 평민이 노숙의 제자가 되거나 공손찬 같은 거물 밑에서 활약한걸 보면 아마, 평민 밑바닦부터 기어 올라와 이름 꽤나 날린 토호세력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한 인물로 보입니다.
유비가 어떤식으로 성장했는지 불분명한게 사서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공손찬의 휘하가 되고 조조의 휘하가 되고 도겸한테 서주를 인수받고 유표의 객장이 되는 식이었죠. 이런 과정을 볼때마다 드는게 기록에는 소실되었지만, 당시 유비라는 인물은 제후들 사이에서 제법 이름 높은 객장으로 대우 받았다는 느낌이들죠. 관우만해도 안량킬이라는 비현실적인 업적을 내기 이전에도 제후나 모사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장수라는 식의 거론이 종종 되었으니까요.
즉, 유비가 황실핏줄 어쩌니 하는거야 말로 연의에서나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어디 거지새끼 대려다놓고 유씨라고 해도 그정도 명분은 생겨요. 백성들이 유비를 그렇게 따른건 서주에서 다져놓은 민심과 조조의 중화역사 역대급 병크짓인 서주학살 때문에 생긴 반발감이지 유비가 황제 핏줄이라서가 아닙니다.
전 그 민간인 학살이 그렇게나 이슈가 된게 이해가 안 가요.중국의 경우 원래 군대의 민간인 학살은 이루 말 할것도 없어요.군대가 지나간 자리는 메뚜기떼가 지나 간마냥 주변 민가 마을이 소거 됐죠.단순히 소거가 아니라 군대의 일용한 식량이 되었어요.군대는 거대한 멧돌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 멧돌의 용도는 인간을 갈아 먹기 의한 용도 였고요. 군이 지나 가며 사람을 그냥 잡아다 군식량으로 삼는데 당연시 되던 중국에서 조조의 민간인 학살은 진짜인니 아닌지도 가늠하기 힘들고 진짜 일어 났다 해도 그게 정말 조조에 의해서 인지,조조가 진짜 했다해도 크게 이슈화 된건 언플이나 이후 승자에 의한 과장된 의도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함.
일단, '.군대는 거대한 멧돌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 멧돌의 용도는 인간을 갈아 먹기 의한 용도 였고요. 군이 지나 가며 사람을 그냥 잡아다 군식량으로 삼는데 당연시 되던 중국에서' 이 부분에 대한 증거를 요구합니다. 단순히 인터넷에 떠돌아오는 정보 말고, 논문이나 역사서 등 '공신력 있는 정보'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에는 워낙 많은 루머와 헛소문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섣불리 믿을 수가 없거든요. 세계 역사를 살펴봐도 굶주리면 인간을 먹는 경우가 있지만, 보이드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당연시 되는 경우는 없어요. 그만큼 확실한 자료를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약탈이랑 학살은 다릅니다. 1만명 정도 학살한 거랑 10만명 넘게 학살한 건 분명히 다르죠. 게다가 몇몇 유명인사들도 조조의 손에 의해 죽었으니까요. '태조(조조)가 당도하여 사수(泗水)에서 남녀 수만 명을 갱살(坑殺)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 등 굉장히 강한 어조를 사용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지를 쓴 사람은 진수로 서진의 사람이었고, 서진은 조위를 이었기에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조하려 조조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데도 말이죠.
확실한 근거 없이 여러 정사 삼국지에 나온 기록을 무시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선택입니다. 이 시기 역사서는 기전체로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했죠. 각 인물들의 열전에서는 그 인물들의 과는 스리슬쩍 지워버리고, 공은 극대화 시키는 방식을 취한 겁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려면 여러 자료를 비교분석하는게 필수적인데, 이 서주 대학살은 무제기(조조전)에 까지 기록된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런 확실한 기록까지 믿을 수 없다면 사실 이 세상에 믿을만한 기록이 단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죠. 이건 역사를 기록한 수 많은 사람들과 여러 서적과 유물들을 비교해가며 역사를 검증하는 후대의 역사학자들을 모욕하는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보이드님께서는 서주 대학살이 거짓이라는 공신력 있는 자료를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시는게 맞습니다. 온갖 악행과 학살, 약탈이 일어나는 난세 중국에서도 독보적일 정도로 서주 대학살이 끔찍했다는 것으로요.
서주 대학살에 대한 기록 중 하나,
'태조(조조)가 당도하여 사수(泗水)에서 남녀 수만 명을 갱살(坑殺)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도겸이 그 군사를 이끌고 원무(팽성 원무현)에 주둔하자 태조는 진격할 수 없었다. 군사를 이끌고 사수 남쪽을 따라 취려, 수릉, 하구의 여러 현들을 공격해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삼국지 『조만전』'
정사 삼국지를 쓴 진수는 친조조파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건 정사 삼국지 중 하나인 '무제기(조조전)'을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죠. 이거 하나가 아닙니다. 솔직히 군량을 모으려 약탈이나 학살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 전쟁 중 필요에 따라 몇개 고을 약탈한 정도이고, 악명높은 동탁도 마을주민들 약탈하고 죽인정도지만 조조의 학살은 후한 13개주 서주 하나를 그냥 다 초토시킨 거에요. 제가 알기로 서주 땅은 물산이 무척 풍부해서 수십만명이 사는 도시인데도요. 어린이, 노약자, 심지어 닭이나 개와 같은 가축까지 모두 몰살시켰는데 이게 학살 중에서도 독보적이지 않을리가요.
한낱 돗자리 장수가 촉한의 황제가 된건 본인의 능력 + 인재를 보는 감식안 등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걸로는 불충분한게 맞아요. 유비는 조조의 학살에 대해 반사이익을 누린 대표적인 인사에요. 괜히 유비가 도망칠 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조조를 피해 유비를 따라간게 아니에요. 순수하게 유비의 인덕(혹은 그 관련한 소문) 때문이라고요? 말도 안되는 일이죠.
서주 대학살 등 조조의 학살 관련해서는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라는 서적을 참조해 주세요. 중국의 하문대학교 교수로써 역사학자입니다. 제가 댓글을 길게 쓰는 것보다는 보이드님이 이 책을 읽는게 훨씬 나을 것 같네요. 삼국지 강의는 제목처럼 삼국지 정사 전체에 대해 연구한 내용입니다. 조조의 학살만 쓴게 아니므로 오해는 말아주시기를.
또한, 조조의 학살에는 서주 대학살만 있는게 아니라 원소군 8만명을 말과 함께 파묻어버리는 등 몇개 더 있음을 기억해 주세요. 괜히 조조의 다른 학살과 손권의 산월족 학살 중 서주 대학살만 유달리 이슈화 된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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