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위험한 밤이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혼자 술에 잔뜩 취해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돈을 흥청망청 쓰려고 해도 막상 혼자 갈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카페를 전전하다 호텔 근처의 바에서 딱 한 잔만 더 하고 들어가려고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그녀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녀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는 유난히 검었다. 그녀의 눈동자처럼. 혼자 오셨냐고 물었던 용기는 술기운을 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별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허풍쟁이가 되어 카라바조처럼 떠들어댔다. 그녀는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비행소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감기약을 잔뜩 먹고 잔 날처럼 그녀와 호텔에서 함께 보낸 밤의 기억은 몽롱하다. 밤새 하늘을 날았던 것 같다. 숙취를 느끼며 일어난 침대위에는 나 혼자였다. 그녀는 아이라이너 펜슬로 거울 위에 메모를 남겼다. 인연이 되면 또 보자는 메모 아래에는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3년이 지난 오늘 그녀에게 전화를 해보려 한다. 술기운에 용기를 내어.
위험한 시도였다. 용기가 아니라 그건 객기였다. 전화를 받은 그녀는 깊은 산속 골짜기로 불렀다. 계곡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붉은 양탄자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위에는 그녀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었다. 그녀는 진짜 비행소녀였다.
화려한 궁장을 입은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양탄자가 바닥에 내려섰다. 나는 밤새 하늘을 날았던 기억이 떠올라 멍청하게도 잠시 양탄자에서 그날 밤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늘 당신의 연락을 기다렸어요. 오늘에야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는 군요."
감동이었다. 3년 동안 나를 기다리다니. 덥썩 그녀를 껴안아 달콤한 입술을 탐했다. 그녀는 나를 양탄자에 태웠다. 양탄자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가요. 어비스로. 그곳에서 영영토록 나와 함께 해요." 그때 알았챘어야 했다. 어비스 그 어두운 이름을.
위성tv의 채널을 돌리며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침 24번채널 어비스의 가족드라마에서 김치로 싸대기를 맞는 데릴사위가 바닥에 구겨진채 흐느껴울고 있었다.
화가 뿔까지 치밀어오른 장모님의 표정이 정말 리얼하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객기의 끝은 항상 후회로 점칠될 뿐, 그것이 인생을 송두리채 지옥으로 떨어뜨릴정도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감싸주던 와이프도 못본지 오래됬다. 그녀가 지금 내 밥그릇를 본다면 틀림없이 괴로워 하겠지.. 갑자기 어머니가 해주던 집밥이 떠오른다. 나는 명절을 핑계로 이 곳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