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시황제는 노생을 통해서 도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교의 영생이론에 따라 영생의 연단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서 3000명의 동남동녀를 배를 태워 동쪽으로 가게 했습니다.
진시황제 영정(瀛政)은 서복(徐福),서불범(徐不凡)을 불로초 탐색
단장으로 임명하엿습니다.
이 탐색단이 먼저 제주도에 도착하여 불로초 탐색을 시작했고
한라산을 샅샅이 탐색했습니다.
그 때부터 한라산은 영주산(瀛州山)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탐색단은 불로초를 발견 못하고 경상도로 옮겨 갑니다.
거제도를 통해서 해안을 따라 경주 즉 서라벌(徐羅伐)을 탐색하게
되어습니다.
거제도에 그 방문 기념 비석이 옛날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서라벌이라는 것은 당시에 경상도 주민들에게는 서복 서불범의
탐색과도 관련있지 않나도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는 순수 한국말을 한자로 음사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마을이라는 뜻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후에 신라는 제주도와 관련을 맺게 됩니다.
한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자 제주의 영주산은 한라산(漢拏산)
으로 개칭됩니다.
즉 한나라가 나포 내지는 포획한 산이라고 명칭을 바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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