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장한 캐나다인 젊은이가 침대에 앉아 숨을 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자둣빛이고, 안색은 납빛이다. 염소에 질식되어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 그가 내게로 돌아서서 헐떡이며 말할 때 비쳤던 눈의 표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난 죽을 수 없습니다! 내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2.
"우리 병사들은 영광이라는 망상에 계속 이끌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도 없이 애매하게 죽어갔다. 한때 강인한 팔뚝과 용맹한 심장이 부여했던 확실성 따위는 없었다. 무기가 발달하면서 과거의 용기는 무색해졌다."
3.
나는 생존자가 불과 수십 명으로 감소할 때까지 싸우는 대대들의 다양한 사례가 왜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소대나 중대는 마지막 병사가 쓰러지거나 포탄에 날아가버릴 때까지 합심하여 싸웠다. 병사들이 전부 기관총 세례를 받아 쓰러질 때까지 '돌격 앞으로'가 계속되기도 했다. 이런 위업을 2주 가량 수행하고 나면 육군 원수나 사단장이 대대를 방문해 부대의 무공을 치하한다. 어쩌면 그들은 보충 부대나 영국에서 막 충원된 대규모 신병이 아니라 무훈을 세운 병사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잠시나마 믿어버린다. 그들은 군종 신부의 예배를 요청해야 하고 묘지에 헌화해야 하며, 병원을 방문해 환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4.
전투 중에 롤린스 장군은 휘하 여단장 한 명에게 이렇게 불평했다. "정말 불만족스럽군. 셔우드포레스터 부대는 어디 있나? 지금 이스트랭커셔 부대는 어디 있나?" 옥슬리 여단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부대는 전부 무인지대에서 쓰러져버렸습니다. 대부분이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5.
우리는 그들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에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교들이 앞장을 섰다. 나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지팡이를 들고 침착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사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탄약을 장전하고 재장전하기만 하면 됐다. 그들은 수백 명씩 쓰러졌다. 조준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총알을 빗발처럼 퍼부었을 뿐이다.
6.
공격 당시에 병사들이 어떤 숭고한 정서로 충일해 있었나? 나는 진흙 구덩이에서 발을 빼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못했다. 공격전에서 살아남은 다음에는 무엇을 느꼈던가? 나는 술 없이 며칠을 더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불만이 가득했다. 맨 먼저 무릎을 꿇고 신에게 감사하지 않았겠냐고? 천만에. 병사들은 용변을 보았다.
7.
"휘하의 일부 병사가 포탄 파편에 맞았다.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순식간에 짐과 군장과 라이플을 팽개치고 냉큼 후방으로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나는 탄복하며 지켜보았다."
8.
"처음에 그는 (본국에 송환될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다며 기뻐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이 다시는 고향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외쳐댔던 저주의 말이 아침 하늘에 울려퍼졌습니다. 종달새의 노래를 들으면서 죽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듯합니다."
9.
48시간이 지나면 상처 언저리가 부으면서 뒤집히기 시작한다. 부상 부위가 뻐끔히 벌어지는 것이다. 상처의 표면이 반쯤은 젤리 형태이고, 반쯤은 바짝 마른 기이한 형태를 띤다. 이윽고 부상당한 사지 전체가 붓기 시작하면서, 내부 압력에 의해 기괴한 모양으로 상처가 팽창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 부위의 색깔이 처음에는 회백색이었다가 초록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조직이 가스로 인해 터지면서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환부에 손가락을 대보면 파삭거리는 소리나 미세하게 거품이 나는 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다.
10.
"우리는 당신들이 상상만 할 수 있는 사태를 직접 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그만둔 생각을 통해 강인해집니다. 우리는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1914년 8월부터 11월까지의 경험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원혼입니다."
11.
"우리는 한 스무명 정도였다.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태가 반가웠다. 다른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내가 숨 쉬는 소리가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의 관심을 끌지 않고 숨을 쉴 수 있었다. (수녀들은) 온갖 소란 속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동료들은 광란 상태에서 울부짖었다. 어떤 병사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돌격'이라고 외쳤다."
12.
"인간은 미쳤다! 현 사태를 지속한다는 것은 미친 것임에 틀림없다. 이 지독한 살육전이라니! 이 끔찍한 공포와 즐비한 시체를 보라! 내가 받은 인상을 전달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지옥도 이렇게 끔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미쳤다!"
-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등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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