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구제도(Theme System):
7세기 들어 소아시아 지역에서 등장한 제도로 아랍의 침략에 대비해 만들어진 제도.
콘스탄스 2세와 콘스탄틴 4세가 제국 동부의 안톨리아 속주에 테마(Thema, 군관구)를 만들어 아랍의 침략에 대비했다. 테마는 국경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속주로, 각 테마에 소속된 둔전병들이 속주의 방어를 담당했다. 10세기 무렵에는 대부분의 테마가 군인 총독인 스트라레고스(Strategos, 군사령관)에 의해 통치됐다. 스트라테고스는 다수의 백인대로 이루어진 친위대를 가지고 있었고,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관(protonotarius), 행정 및 사법을 담당한 법무관(praetor), 세금 및 회계를 담당하는 징수관(chartularius)이 장군을 보좌했다. 군관구제도는 둔전병이 주를 이루는 군제로 국가에서 일정량의 땅을 하사받은 자유민 가족이 1명의 기병을 제공하는 군제였다. 이 때 하사된 땅은 장남이 대를 이어 기병으로 근무하는 한 상속이 가능했다. 이들 지방군 대부분은 하인을 소유하고 있었고, 부유한 지방군은 노예를 소유한 지주였다. 부유한 지방군들이 지방군의 핵심을 이루는 1급 기병(중갑 기병)을 제공했다. 9세기에 이르러 부유하지 못한 둔전병 몇 가구가 기병 1명의 장비와 말을 제공하는 법안이 상정됐다. 기병을 제공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둔전병들은 각 요새의 주둔군으로 배치되거나, 보급품을 운반하는 등의 잡역을 담당했다.
각 테마(Theme)에 소속된 병력은 2~3개의 군단으로 편성됐다. 각 테마의 병력 수는 그 군관구의 넓이나 인구 등에 따라 제각각 이었는데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인 10세기 초 무렵 동부 테마에 등록된 기병의 숫자는,
서기 902년 서기 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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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콘 1,5000명 1,5000명
트레케시온 10,000명 6,000명
칼리다 10,000명 4,000명
아르메니아콘 9,000명 9,000명
부켈라리온 8,000명 8,000명
옵시키콘 6,000명 6,000명
파플라고니아 5,000명 5,000명
셀루케이아 - 5,000명
마케도니아 5,000명 -
트라키아 5,000명 -
카파도니아 4,000명 4,000명
카르시아논 4,000명 4,000명
옵티마톤 4,000명 4,000명
합계: 85,000명 70,000명
이 중 실전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1급 기병의 숫자는 한 테마에 최대 4000명 정도였고, 전쟁에 투입될 수 있는 지방군 기병의 총수는 3만 명 정도였다. 테마에 속한 기병의 수는 이 시기를 고비로 점차 줄어들어 서기 970년경에는 한 테마에 3000명 정도의 기병만을 등록하고 있다. 보병은 주로 징집에 의존을 했는데 한 테마에 최대 2만 4천명의 보병을 소집할 수 있었으나, 이 중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1급 보병의 숫자는 제한돼 있었다. 지방군 보병은 경무장 보병 및 궁병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10~11세기에는 군관구 제도가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속주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한 스트라테고스와 귀족들은 권력을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데 사용했다. 점차 스트라테고스와 귀족들에게 땅을 빼앗기는 소지주들이 늘어났고 소지주 수의 감소는 테마 내 둔전병의 감소로 이어졌다. 중앙정부에서는 군관구제도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점차 스트라테고스의 특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10~11세에 계속된 각 스트라테고스간의 내전과 반란으로 11세기에 이르면 비잔틴 제국 내의 지방군은 병력 수가 현저히 줄고 그 질도 떨어지게 된다. 군관구 제도의 붕괴에 따라 점차 비잔틴 군은 용병이 제국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군제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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