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박정수는 이제 신인이라고 불리기는 조금 애매해지는 위치에 있다.
사람들에게 박정수를 알린 것은 "마법사 무림에 가다.'" 라는 특이한 형태의 퓨전이다.
거기에서 박정수는 무림에서 판타지로 가는 일상적인 상황을 역으로 오히려 중세유럽(사실 판타지의 배경을 중세유럽이라고 보기는 좀 애매하기도...)에서 무림으로 오는, 과연 마법사가 무림에 와서 마법을 쓰면 어떻게 될까? 라는 데서 착안을 한 글이었다.
나쁘지 않았고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그 뒤 박정수의 글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나왔던 글이 "흑마법사무림에가다"라는, 어찌보면 무너지는 로마가 지난날의 로마를 그리워하면서, 그 영광이 돌아오기를 염원하던 모습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글이다.
그 제목을 보면서 조금은 안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글이 잘 안될 때, 곤경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곧잘 선택하는 방법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대로... 라는 불안감이 느껴져 사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책을 보기는 박정수에게 너무 잔인하다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다만, 연재시에 반응이 의외로 좋았던 점이 있어서 과연 어떨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글을 보았다.
흑마법사 카칸은 자신을 배신한 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 금단의 마법으로 그 자리를 탈출한다.
정신을 차린 곳은 전혀 다른 곳, 무림.
마법도 없고 체내에는 마나도 없다.
게다가 그의 몸은 카칸의 것이 아닌 소년의 것.
아무런 배경도 없는 허름한? 유리걸식하는 거지라는 신분.
흑마법사인 카칸은 어둠의 마나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마도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 정파가 아닌 마교를 찾아간다.
그리고 마교에서의 신분상승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뭐 그리 특별해보이지 않는다.
아, 그렇군.
늘 보던 대로 잘 먹고 잘 살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논단에다 이 글을 쓸 이유는 없다.
같은 글을 봐도 글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붕 뜬 느낌의 글과 안정감이 보이는 글의 차이다.
그런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독자라 할지라도 보면서 안정감있게 모든 것이 잘 이해되고 뭐 이래? 이게 왜 이렇게 되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만든다면, 그게 바로 작가의 기본 능력이고 여타의 글과는 차별화 되는 부분이 된다.
사실은 이건 기본이지만, 이 기본이 안되는 글이 요즘 너무 많다.
이 글을 논단에다 쓰려고 한 것이 무려 한 달이나 되었고(이런저런 일들이 너무 많아 마음의 여유가...) 그 사이에 흑마법사에 대한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 온 것도 보았다.
요즘 올라 오는 감상 비평 글들.
그 비평스러운 감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솔직히 너무 많다.
과연 그런 잣대로 본다면 걸리지 않을 글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때때로 든다.
그러한 눈으로 본다면 명작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글이 다 한 순간에 결점투성이의 글로 둔갑할 수가 있다.
외국 우리나라 모두 다... 뒤집어도 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영원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죄와 벌, 하다 못해 토지까지 그러한 눈으로 본다면 한 순간에 열 개 스무 개 결점을 잡아낼 수가 있다.
대체 그 독자는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일까.
박정수의 이 흑마법사는 충분한 퀼리티를 가졌고, 이번의 이 흑마법사를 높이 평가하는 점은 1권을 보고 다음권을 보고 싶게끔 끌고 간 부분이다. 그게 한 두 권이 아니라 5권 6권 7권으로 가면서도 이어짐은 우연히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근래의 전작들이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던 상황에서 이 흑마법사에서 보여 준 부분들은, 아예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달라 보일 정도로, 좀 심하게 표현하면 환골탈태에 가깝도록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 본다면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망가지던 글이 갑자기 좋아질리는 없다.
그렇다면 본인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의미고, 잘나가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으로 보였던 사람이 퇴출이 아닌, 전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그가 이제 어둠의 터널을 지나 자신의 글을 쓸 자리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믿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는 지켜 볼 수 있다.
그가 과연 얼마만큼 자리를 잡고 발전해 나갈런지를.
박정수의 다음 글이 기대된다.
새해 연화정사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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