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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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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란 탐사기 1 <가면사>

작성자
좌백
작성
03.02.25 05:23
조회
6,165

한 달에 하나쯤은 여기 무협 논단에 글을 올리기로 했었지요. 금강 선배님과 약속한 것을 잊은 것은 아닌데, 대체 무슨 글을 올려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 보니 벌써 한 달이 다 돼 가는 군요.

옛 무협들을 많이 구하게 돼서 그 중 재밌는 거나 한 번 소개해볼까도 해봤습니다만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개해봤자 구하기도 힘들고, 읽기도 힘들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차라리 여기 고무림 자유연재란에 연재되는 글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을 소개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비평이 아니라 소개고, 추천입니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분석이나 조언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같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정도로 쓰는 것이니 그 정도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꼭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 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 잡상들을 늘어놓는 게 주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이야기해보려고 하는 것은 丫님의 <가면사>를 읽고 생각해본 몇 가지입니다.

(근데 丫님께 개인적으로 질문. 丫자는 영어의 Y입니까, 아니면 가장귀 아丫?)

<가면사>는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읽으면서 온갖 생각을 하게되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정리하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무협과 타 장르의 접목이 갖는 장점과 단점, 무협이라는 장르가 갖는 통속성의 요구에 대한 거부로 읽히는 부분에 대한 생각, 잘쓴 문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궁극적으로는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등등입니다.

<가면사>는 시작 부분에서부터 환타지 냄새가 짙게 풍겨납니다. 보라색 눈빛을 가진 소년 아요와 인면수가 등장하는 이계(異界)에서부터 출발하니까요. 사람 얼굴에 표범의 몸을 하고 있다는 인면수의 모습은 산해경에 나오는 마복(馬腹)과도 비슷하지만 마복은 호랑이 몸이라고 되어 있으니 같은 건 아닌 듯합니다. 어쨌든 이계이기는 한데 서양 환타지의 이계는 아니고, 동양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이계인 모양입니다.

<가면사>에서는 작가가 동양 고전에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적어도 상당한 공부를 하고 쓰는 글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자료, 혹은 지식의 사용은 잘못하면 아주 흉하게도 보이는 것이라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 흔히 아는 것의 2할만 사용하고 나머지 8할은 그렇게 드러낸 2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한다고들 하지요. 그래야 자료가 글 속에,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가 자연스럽게 읽혀지기 때문이라고. <가면사>에서 사용된 정보, 혹은 지식은 이런 원칙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어디 책에서 보고 바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알고있는 이야기들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백아’를 만난 이후 주인공 아요는 이계를 벗어나게 되는데, 벗어난 곳 역시 일반적인 무협의 범주에서는 약간 벗어난 공간입니다. ‘본계(本界)’라 불리는 곳인데, 굳이 비슷한 것을 찾으면 80년대 무협에서 특정 시기에 자주 사용되었던 ‘전사 양성소’ 같은 곳이더군요. 야설록의 <검대 검>이나 서효원의 <실명대협>에 등장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곳을 동양고전의 천문학을 응용한 선계 비슷한 곳으로 묘사해서 그런 색깔을 상당히 지우고, 이계에 비하면 한결 무협적이지만 아직은 환타지에 가까운 공간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것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기존 무협은 허술한 것 같지만 알고보면 상당히 끈질기고 견고한 틀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제약으로 작용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긴다고들 말하지요. 소재와 스토리의 제약, 중국땅을 못 벗어나는 국적성의 문제 등등.

환타지적 요소의 결합은 무협의 이런 제약을 벗어나는 좋은 수단으로 사용될 여지가 있습니다. 백야가 <수라의 귀환>에서 그런 것을 시도하는 듯한데(저는 소문만 들었지 읽어보진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이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얽매이지 않아서 자유롭다. 대신 익숙한 것이 아니라 배척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2천년대에 들어와서 장르문학의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지요. 환타지로 소설 읽기를 시작한 독자들에게 한 소설은 그 자체에서 구축한 세계설정만 납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그 이전의 소설들이 만들어온 세계설정을 충실히 이어받고 못 받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런 개방성이 2천년대의 무협에도 상당한 자유를 열어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제약에 얽매이지 않은 상상력이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러나 낯익은 이야기가 주는 아늑한 만족감이라는 것도 적지 않고, 특히 무협에서는 이게 많이 작용을 합니다. 중고독자(^^)들에게는 이런 저항력이 심하지요. <수라의 귀환>이, 그리고 이 <가면사>가 그런 독자분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저도 궁금하군요.

물론 이건 작가의 선택입니다. <가면사>에서 작가는 이질적인 배경으로부터 익숙한 배경으로의 전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걸로 읽힙니다. 이게 과연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모르겠군요.

배경과 함께 <가면사>가 특이한 점 또 하나는 문장의 낯설음입니다. 사실 <가면사>의 문장은 제도권 문학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문장입니다. 서술과 묘사가 내면의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과 혼재되어 있고, 굳이 구분하려 들지도 않는 그런 문장 말입니다. 이게 무협에서는 꽤나 낯선 문장이 되지요.

무협처럼 이야기가 중시되는 소설에서는 스토리의 흐름을 단순명료하게 보여주는 문장들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꼭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주도적인 경향’이라는 것 뿐이지요.

사실 이것 역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데, 스토리 전개를 잘 보여주는 단순명료한 문장들은 깊이를 만드는 데에는 그다지 적당치 않은 도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문장은 어떠한 이야기를 하느냐.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느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어떤 소설이든 그것의 단점을 따지면서 읽게 되진 않습니다. 그러니 장단점을 따진다는 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은 그게 발하는 장점에 유혹되어 읽게 되는 것이고, 그걸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큰 단점이 보이면 접게 되는 게 정상이니까요. <가면사>의 장점은 어떤 것일까요? 그건 독자들이 찾아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취미로’ 하는 것이고, 쓰고싶어 쓴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쪽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니 취미가 남아있는 동안은, 글 쓰기가 재미있는 동안은 재미있게 쓸 수 있겠지요.

물론 저는 전업작가로서 독자에게 읽히는 글을 써야한다는 의식을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면사>의 작가분은 좀더 자유스럽게 글을 쓰시는 것 같더군요. 좋은 일입니다. 부디 완결하시기를 바랍니다. 완결되지 않은 글은 작가에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작용한다는 경험을 겪은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겠지만...-_-)


Comment ' 9

  • 작성자
    해혈심도
    작성일
    03.02.25 11:47
    No. 1

    음......한번일구나서....
    글올려야지,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단애(斷哀)
    작성일
    03.02.25 15:30
    No. 2

    읽지 마십시오.
    중독 됩니다.
    4시간동안 아무일도 못했어요. ㅡ.ㅡ;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안개
    작성일
    03.02.25 17:00
    No. 3

    헉-_- 단애님도 ㅡㅡ?? 전 아까 찜질방가따왔는데 잠을 많이 못자서
    자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좌백님의 이 추천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가면사로 가서 서장을 클릭 ㅠ.ㅠ 그렇게 치과갈 때까지 계속 읽었었다는
    ㅠ.ㅠ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작성일
    03.02.25 21:23
    No. 4

    -_-;; 헉.. 무서워지는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20 흑저사랑
    작성일
    03.02.26 00:07
    No. 5

    대박이다.. 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유리
    작성일
    03.02.26 10:40
    No. 6

    감상란에 올려주시지.....쩌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3 none99
    작성일
    03.03.08 13:34
    No. 7

    한 번 가 봐야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고양이정령
    작성일
    03.03.19 09:52
    No. 8

    독특한 문체를 가지신 분이죠. Y님께서는요. ^^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하늘아래푸름
    작성일
    03.03.19 14:35
    No. 9

    헛... 첫문장부터 끌어들이는 맛이 있네요....^^
    저는 보통 글을 읽을때, 첫부분에서 얼마만큼 흡입력이 있나
    여부로 계속 읽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곤 하거든요....^^
    계속 읽어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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