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그간 너무 격조했음을 사과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지쳐있어서...
논단에 글을 올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몇 개 쓰고자 했던 글들이 아직 그대로 있는데 시간이
되는 대로 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자연검로와 독문무공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일단 나름대로의
안정감이다.
글을 씀에 있어서 안정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자가 작가를 믿고 그 글을 볼 수가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 정상수는 독자의 시선을 붙드는데 일단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만약 자연검로라는 글 하나만을 놓고 이야기 하라면 그는
실패했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감/비란에서 수차례 이야기가 있었으니 논외로
함이 옳겠지만 일단 주인공의 나이를 너무 낮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 주인공이 거의 신이 되어 버렸다.
위기도 없고 그저 주인공의 행보가 있을 따름이다.
다른 사람은 모두 바보다. 꼭두각시일 뿐인 것이다.
개연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나뉘어질
수밖에 없는 글이 된 이유다.
결국 본인도 그 자연검로는 1권을 넘기면서 거의 포기상태로 뒤를
대강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런 위기도 갈등도 없이 모두가 주인공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주인공이
의도한대로 글이 이어져 나간다면 과연 무슨 의미로 그 글을 볼 것인가?
주인공의 나이를 10살만 올려잡고, 주변 장치만 조금 다르게 배치를 했다면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어이없기조차 했다.
본인이야 첫 글이니 그렇다고 할지라도 연재를 했는데 주변에서 그걸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일까...
잠시 고민 끝에 독문무공을 보기로 했다.
그 글에서도 그렇게 썼을까? 라는 의문이 있었던 까닭이다.
결론은 분명히 나아졌다.
한 가문.
아니 5개의 가문이 어울어진 천하문에서 태어난 바보가 천재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염원과 천하의 어울어짐을 기본으로 해서 써내려간 독문
무공은 나름대로의 흥미를 5권까지 꾸려간다.
과연 무엇이 나아졌을까?
전저 자연검로에서 말했던 바로 그 너무 어린나이의 주인공이 성공하는
것이 이제는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아지고 개연성
부분에서 보완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위의 자연검로에서 지적한 부분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불행히 그것 뿐이다.
더 이상 나아지질 않았다.
여전히 위기는 없고, 주인공은 무적이며 아무도 그를 상대할 수가 없다.
작가는 모든 것을 짜두고 그것을 설명한다.
독자는 인형처럼 그 순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들의 희노애락은 성격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오직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만
웃고 우는 것이 허락된다.
다시 말해서 캐릭터들이 살아나지 않고 설사 그 캐릭터가 모자란다 할지라도
그냥 이렇다. 이해하라...라고 하는 한 마디로 넘어가버린다. 라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개연성이 설명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살아나지 못해서 등장인물
들이 배경 위에 그려진 2D일 뿐, 3D로서 입체적인 인물로 살지를 못한다는 의미다.
결국 자연검로라는 폭주하던 기관차를 조금 느리게 몰아간 것이 독문무공이라는
말이 된다.
그 폭주를 좋아하던 사람은 오히려 독문무공을 답답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바로 그런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제부터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바로 그렇게 그림 위에
세워둔 종이인형들에게, 푸른천사가 피노키오에게 생기를 불어넣듯이 그렇게
숨을 불어넣어서 현실세계로 살려내는 일이다.
지금의 방식대로 쓴다면 글은 빨리 쓸 수 있겠지만 사람의 뇌리에 아, 이 사람은
정말 책이 나오는대로 봐야겠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만의 독특한 색깔이 보이지 않고 꽉 짜여진 인형극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의 느낌일 수 있겠지만 단순한 형식만으로 그걸 자신의 색깔로 말할
수는 없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10년 뒤에도 정상수라는 무협작가를 볼 수 있으려면,
그가 잘쓰는 작가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으려면 바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게 여기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그 외 출판본으로 보기에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타가 자주 눈에 띄고,
요즘 거의 모든 책들이 공통적으로 범하고 있는 한문의 오류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
일단 책이 된다면 작가는 반드시 그 책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런 오류는 잡아내야만 할 것이고 출판사는
정말 제대로 교정을 봐서 잡아주어야 한다.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그를 지켜볼 예정이다. 그저 퍼즐 짜맞추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인형극의 주인공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인형들을 날려버리고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우리들에게 다가올런지는 오직 하나.
그의 생각에 달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인작가중 책으로 본 근래의 작품중 <<대종사>>를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논단에 쓸 마음이 들게 한 것이 그의 글이다. 그만큼 요즘 본 책들은 기본 자체가
되어 있는 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스토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스스로 분노할 줄 알고,
작가에게 불만을 토로할 줄 아는 캐릭터를 그려내는 것이 이제부터 정상수가
해야 할 화두(話頭)라는 말로 이 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단기 4336년 가을즈음 연화정사(蓮花精舍)에서.
Comment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