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소전을 읽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축약될 수 있다.
---담담하다.
전체가 물흐르듯이 자연스럽다.
편안하게 글을 써내려간 것이 진가소전이다.
물론, 그 안에 잘못된 점이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내가 가
르치던 제자라면 그 글에서 조금쯤 수정분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미 글로 되었을 때는 읽어갈 때 속도감이 있어서 미미한 잘못은 그냥 넘어
가게 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작품을 쓴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
로 잘 쓴 글이 바로 이 진가소전이다.
누구의 가르침 없이 혼자 쓴 글이라면 칭찬받아 마땅한 글이라 할 수 있
다.
이 진가소전은 평범하게 한 인간의 일대기를 서술한 성장형 무협이다. 여
타의 무협처럼 긴박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고 오버액션도 없다. 그냥 튀
는 부분없이 살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 형식은 다분히 고답적이라, 굳이 말하자면 중국무협의 형태이다.
중국무협의 특장은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은근함이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것을 일러 유장(悠長)이라고 부른다.
글을 씀에 있어서 이 유장함이라는 것은 대단히 큰 재산이 된다.
현재 신무협을 쓰는 후배들에게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유장함
이다. 흐르는 물은 끊임이 없다. 하지만 그 흐르는 물이 모여서 커다란 흐
름을 형성하게 되면 시내의 그 졸졸거리는 촐랑거림보다는 대하(大河)의 도
도함으로 바뀌게 되어 그 자체로 힘을 지니게 되는 까닭이다.
글이 힘을 지니게 된다함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독자를 잡아당길 수 있는 흡입력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그 보다 큰 재산은 없다.
(여기서 굳이 한마디를 한다면, 현재의 신인작가들은 대단히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후배들의 글이 한번 읽으면 두 번 읽혀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글 속에 도도하게 흐르는 흐름이 없는 까닭이다. 실전무협이고 인간무협
이고간에 무엇을 쓰건 도도한 내면의 흐름을 가지지 못한다면 생명력을 가
질 수 없다.)
임준욱의 진가소전은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글을 인물들을 살려내고 그들
사이의 정과 천박하지 않은 유머를 잘 버무려 넣음으로서, 본래의 유장함을
잃지 않고 글을 끝낼 수 있었다.
더구나 그 인물들에게 흡인력을 부여하여, 생명력을 일구어냈다.
그것은 단순히 그려내기 보다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독자에게 이입시키
는데 성공했다는 것에 바로 이 진가소전의 장점이 있다.
작년에 나는 두 사람의 기대되는 신인을 지목한 적이 있었다.
하나는 내 제자인 고명윤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무림동에서 인기를 한몸
에 받고 있는 백야이다.
그들 둘의 글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유장함을 가졌다는 것이다.
둘 사이에 다른 점은 고명윤의 글에는 아직 다듬어지지는 못했지만 힘이
있고, 백야에게는 힘이 모자라지만 그 유장함이 살아있다.
그리고 이제 진가소전의 임준욱을 그 대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인이 알던 모르던 간에 유장함을 가졌다는 것이다.
무림동의 독자들은 한 작가에 대해서 가끔 평을 달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글 하나만을 가지고 평을 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글 전체를 흘러가는 그 사람의 능력을 보고 평을 하게 된다면, 그
평가는 엇갈리지 않게 된다.
그 기준은 앞으로 5년, 10년 뒤도 기대할 수 있는 작가이다.
글에서 유장함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한 두 개의 글을 써낼 수는 있으되,
그것은 어쩌다가 잘못(?)해서 쓴 것일 뿐. 그 사람의 본령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날 무림동에서 한참 인구에 회자되었던 2권짜리 무협도 그런 범주에
든다. 말초적인 말장난은 그저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글
들은 한번 쓰고 나면 그 다음에는 식상하게 된다. 당연히 한 질을 내고 나
면 그 작가는 끝이다.
천재라서가 아니라, 더 쓸 능력이 없는 까닭이다.
유장이란 그런 것과 길을 달리한다.
임준욱은 그 점을 유의하여 자신의 길을 가주면 좋겠다.
단기 4333년 3월 끝자락 연화정사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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