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곳입니다.
황제와 치우의 싸움은 중국 서적에서도 널리 인정하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치우가 황제를 패퇴시켰다는 것은 한단고기에 나와있는 것입니다.
아직 사학계에서는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요.
(과연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있을까?ㅡㅡ;)
황제는 헌원황제라고도 부르며, 삼황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지만,
보통 오제에 포함시킵니다.
중국의 삼황에는 농경기술을 전해주었다는 신농씨와 문자를 전해주었다는 복희씨가 꼭 들어가고
나머지 한 자리에는 복희의 부인인 여와나, 수인씨, 혹은 황제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오제에는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의 다섯 사람을 꼽습니다.
요와 순은 \'요순시대\'라고 해서 태평성대를 가리킬 때 많이 써먹죠.
순임금의 다음대가 하왕조를 세운 우임금입니다. 아버지인 곤이 하지 못했던
치수작업을 13년에 걸쳐 했다고 하죠.
한단고기에는 우가 치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조에게서 배워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진짜인지는 알 수 없죠.^^
한단고기를 비롯해서 현재 사학계에서 인정 못 받는 여러 사서에 이르면 치우 천왕은 우리 한민족의 고대국가이던 배닥국(단군조선의 이전이었다고 합니다)의 제 14대 군주이던 자오지 한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 헌원은 삼황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시조로 생각하고 가장 중시하고 있는데 그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황제 헌원부터 시작할 정도이죠.
치우는 원래 우뢰와 비를 크게 만들어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동두철액 즉,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될 정도로 철기를 사용하여 그 세력이 굉장했기에 사람들이 놀라 치우 천왕이라 부른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 헌원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왜곡 기록의 대명사인 <사기>에서도 연전연패하여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황제의 형편이 기록되어 있는 걸로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중원 대륙에서는 후세까지 치우 천왕을 전신으로 숭배할 정도였죠. 한단고기에서는 치우 천왕이 황제를 물리치고 중원까지 진출하여 산동성을 중심으로 요녕, 하북, 산서, 섬서, 강소, 안휘, 절강, 호북성 등 당시의 중국 거의를 점령하고 청구국이라는 나라까지 세웠다고 합니다.
고대의 역사는 기록에 의존하며, 여러사서의 공통점을 찾아
비교추론을 하는 것이지요. 한단고기가 왜곡된 부분이 많고
증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하면, 다른 사서도 크게 덜하진
않다고 봅니다. 고대동북아의 치우를 전쟁의 신으로
표현할 정도라면 그가 전쟁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는지는
어느정도까지는 예측할 수 있는 부분 입니다.
일제시대동안 일본에서 우리의 사서와 기록들을 훼손하고
자기들 멋대로 위조한 부분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가 고대의 역사기록들을 유실한 것은 중국대륙쪽의
한족과의 수많은 대결을 예상해 볼때 충분히 많은 유실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요. 중국이나 유럽의 유구한
왕국들은 아시아유목민족과 같은 기마전투단에 의한 패퇴나
복속당했던 것을 커다란 수치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축소은폐
하기위한 흔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선조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지요.
중국은 국명 자체도 천하의 중심이라고 자처했던
나라 입니다. 증명 그 자체의 단어에 철두철미하게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고대사는 증명된게 별로 없습니다.
일본서기의 내용은 거의 허구의 극단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결코 허구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자랑스런 역사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면서 숭상합니다.
중국의 역사서도 중국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극구 부정하면서 최대한 그들의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기록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공통적인 시각입니다.
물론 그들도 그들의 민족에 대한 전설과 설화를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자부심으로 연결시켜
적극 권장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만
역사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에겐 수많은 전설과 설화, 건국신화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군이후의 전설들입니다.
단군이전은 그저 \'허구\'라고만 말하지요.
치우천황의 전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치우천황은 단군왕검 이전의 고조선 왕으로 보는 의견이 중국에서도
상당히 우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우리 조상의 신화의 한 조각인데도
그것을 좀더 캐보려 하기 보다 먼저 부정하려 한다면
도대체 우리의 참된 역사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특히나,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역사의 참혹한 왜곡,
그리고 일제하에서 친일로 광분하며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던 자들이 해방후 이땅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폐혜를 남겨, 여전히 우리 역사의 올곧은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한조각 전설일지라도 그것을 솢우히 여기는 마음이
진실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저 국수주의에나 빠지자는 말은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역사의 본모습-특히 고대사-은
정말 많은 노력속에서 되찾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Commen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