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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답변

궁금함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곳입니다.



Comment ' 8

  • 작성자
    Lv.1 별이달이
    작성일
    04.06.12 14:02
    No. 1

    중국무협 - 무협소설의 문학적 의의(전형준 저)에서 발췌
    사마천의 사기 -> 위진남부조 시대의 지괴소설 -> 당의 전기소설 -> 송대의 전기소설, 필기소설의 검협류나 호협류, 문언소설 등장 -> 명대의 장회 또는 연의 소설(삼국지, 수호지 등등), 공안(포청천류) 소설을 거처 20세기 초에 등장했답니다. 최초 작품이 머냐? 잘 모르겠습니다. 안나와있구만요.
    한국무협 - 역시 위 책에서 발췌
    1961-3, 울지문의 검해고홍이 신문연재로 처음 시작했답니다.
    그 뒤 계속 번역...
    최초의 창작무협소설은 머냐?라고 한다면... 팔만사천검법(을제상인)이라고도 하고, 뇌검이라는 소설이라고도 하고... 아무튼 60년대 말 ~ 70년대 초에 나온 듯 합니다.
    <a href=http://dantal.cafe24.com/bbs/zboard.php?id=5
    target=_blank>http://dantal.cafe24.com/bbs/zboard.php?id=5
    </a>
    를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에... 별로 안비싸니까 위 책 구해서 보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소비자가 5000냥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박람강기
    작성일
    04.06.12 17:15
    No. 2

    첨언해봄니다, 사기의 방대한 부분중에 자객열전 부분이 원조가 되고.
    그외에 위진~송까지의 자료중에 남아잇지는 거의 않을꺼 같습니다,
    실제적인 원류가 삼국지나 수호지로 본다고 생각함니다,
    검해고홍 책이름은 많이 들어본거 같습니다, 작가는 전혀 모르겟네요.
    중국작품에서 을제상인님은 정말 멋찐 작품을 많이 쓰신걸루 기억됨니다, 그런데 그 수준은 최초라고 보기 힘든데;;
    예전에 읽어서 흐릿하지만 혹시 최초 창작무협이 이수민의 촉산전 아닌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박람강기
    작성일
    04.06.12 17:31
    No. 3

    의아해서 검색한 후 첨언함니다,
    1961년의 대만작가 위지문의 검해고홍을 김광주씨가 정협지로 개명하여 연재한것이 시초이구 그 뒤 김광주씨가 비호,협의도등을 연속 연재하엿다고 함니다, 본격 무협붐은 1965년 옥차맹의 군협지 발간부터로 보는 추세임니다,
    중국의 경우 최초작품이 먼지는 검색 못했습니다, 제 생각은 이수민의 촉산전이 아닐까 판단됨니다, 그를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김용의 스승이라고도 함니다, 그 뒤로 1959년의 와룡생의 비연경룡등의 작품이 나온거 같습니다, 중간과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중국도 와룡생으로 인하여 진정 무협의 바람이 불었고 정착되었습니다, 상기된 을제상인의 팔만사천검법은 1979년작임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박람강기
    작성일
    04.06.12 17:48
    No. 4

    성월님이 말씀하신 곳에 가니 좌백님의 글이 있네요.
    근대 무협소설의 비조로 불리는 것은 청나라 광서 5년(1879년)에 출간된 <삼협오의>라고 하는데 저자는 문죽주인(問竹主人)이라는 필명을 쓴 민간의 문인이었다.
    중화민국 초기 무협소설은 이때 형성되기 시작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창작되고, 읽혀졌다. 북경과 천진을 중심으로 한 북파소설과 상해를 중심으로 한 남파소설로 분류되는데 북파의 중심인물은 왕도려, 정증인, 주정목, 환주루주 등의 사람이고 남파에는 평강불초생, 문공직, 고명도 등이 있었다.
    이후 1950년대, 김용의 <서검은구록>과 양우생의 <용호투경화>가 등장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신파(新派) 무협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중화민국 초기라하면 1912년 청왕조말기이후를 말하는 데 그때의 정치상황은 위안스카이의 북경정부와 각지 군벌의 대립이 있엇으며 남방에 쑨원의 중화민국정부가 있어 대립하던 상황임니다, 따라서 근대이후 최초작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록을 찾기가 어려운거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양몽환
    작성일
    04.06.12 23:32
    No. 5

    와~
    무우수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 만득
    작성일
    04.06.13 17:04
    No. 6

    박람강기님 말씀 중에 옥차맹의 군협지라는 언급이 계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와룡생의 군협지의 원제가 옥차맹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야랑
    작성일
    04.06.14 10:10
    No. 7

    을제상인은 중국분이 아니라 한국분이십니다. 그리고 많이 쓰신 것이 아니라 두 작품정도 쓰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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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3 박람강기
    작성일
    04.06.16 09:36
    No. 8

    만득님// 네. 여주인공의 한옥차에 두고한 맹세로 아마 옥차맹이라고 지어졋다고 기억되네요.
    야랑님//네. 성월님이 한국창작시초에 대해 말한건데두 지금껏 전 을제상인님이 중국분인줄 알고 문맥을 유심치 않아서 중국이라고 적었네요.
    많이 썻다는 생각도 과장된거 많습니다, 고작해야 제가 읽은게 팔만~허구 마검자 뿐이었으니 말이죠. 그럼 제가 딱 두 작품 쓴거 다 읽은거네요^^ 흐뭇함니다, 많이란 문맥은 중국작가이니 아직 번역이 안되게찌 하고 생각해서 생각없이 나온 단어네요. 지적을 해주시니 새삼 착각을 고쳐서 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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