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곳입니다.
웁스...
등자는 기원전 3세기 이전에 중앙아시아 스탭지역에 출현했다고 하고 전국시대 조나라의 호복기사의 내용에 등자가 포함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전한 무제의 군대가 등자(윤등의 형태)를 썼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확실히 삼국시대에는 동탁군이 등자를 사용했습니다.
동탁은 량주를 기반으로 국경을 지키면서, 유목민족과의 활발한 왕래가 있었습니다. 기마전술과 등자 등을 자신의 군에 적용했죠. 동탁의 양주군이 연합군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도 등자를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우, 장비 등이 실제로 등자를 사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등자를 사용한 군대를 격파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마술에 능했다는 말도 되겠지요.
그리고 장수들이 무적인 것이 허구라고 지적하셨지만, 일견 타당한 부분도 있습니다. 한무제 때 군사력이 강대화된 이후 한의 군사력은 지속적으로 쇠퇴했습니다. 집단기마전술을 도입한 적도 있었지만, 주로 사용하지는 않았죠. 당연히 대기병전술도 전무했을 겁니다.
중장기병(관우, 장비의 차림새를 보면 일부 경량화 되었다고 봐야죠. 하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보건대 중장기병이 틀림없습니다.)을 일반보병이 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적군 사이를 종횡무진 다니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관우, 장비는 등자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손찬이 백마의종을 만들었는데 많은 이가 이 것을 두려워 했죠. 공손찬이 황건적의 난 때 북방의 선비족을 평정하는데 힘썼다는 것을 보면, 그의 부대도 등자를 도입했을 겁니다. 공손찬과 평소 왕래가 활발했던 유비군도 등자의 필요를 느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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