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함을 질문하고 답변하는 곳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룡팔부는 비추입니다.
우선, 제가 그리 재미 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재미가 없더군요. (제 걔인적인 취향 때문에 ...)
그리고 재미와 상관 없이 거슬리는 부분도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이야기 첫부분에 단예라는 주인공이 두 명의 자기 누이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부분이 나옵니다. (여자들이 좋아한 거지만) 근친상간이라는 굉장히 민감한 주제를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가서는 "그게 아니었더라"라는 식으로 처리해 버리고 맙니다. 이 부분에서 김용의 안이한 처리가 못마땅하더군요. 애초에 그 주제를 건드리지 말든지 ... 그냥 호사적 에피소드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봉의 이야기도 맘에 안 들더군요. 김용의 중화주의에 대해서는 다 잘 아실 테지만, 이곳에서는 중화-오랑캐의 "대결"이 아니라, 오랑캐 자신의 "자괴감"이 나오더군요. 즉, 오랑캐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 스스로 죽어 버려라 ... 라는 식의 (좀 극단적인 표현이죠?)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지더군요.
영웅문 시리즈에서 라마승이 왜 사악하게 그려졌는지 몰랐는데(녹정기에서도) ...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이 티벳을 침공해서, 살육을 벌이고,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을 했더군요. 지금도 티벳을 점령하고 중국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비약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라마교란 티벳의 정통성에 흠집내기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일관되고 꾸준하게 라마승이 사악하게 그려졌을까요?)
외재/ 김용은 유불선에 대한 이해가 굉장하다고 들었습니다. 문사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저런 작품이 나올 수가 없지요. 그런 김용이 라마승을 전문적으로 음해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그런 악역 등장인물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오해하시겠다면, 역지사지로 생각해 봐서, 만약 다른 사람이 외재 님의 의도에 대해서 그렇게 오해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둔저/ 이야기 줄거리에 대해서 안다고 해서 소설을 읽을 가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빠지는 부분이 꽤 많고, 심지어는 왜곡되는 부분도 다수 발생합니다. 줄거리를 뻔히 알면서도 읽는 맛이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실런지.... 만리독행은 '쥬라기공원'을 소설로 먼저 읽고 나중에 비디오를 봤는데요, 원작 소설이 갖고 있는 깊은 맛이 영화에는 없더군요. 영화로 봤으니 소설은 읽지 않겠다면, ^ ^ 정말 좋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설악산 단풍을 텔레비전뉴스로 봤으니 다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 읽지 않으면 읽지 않은 사람만 손해입니다. 그 풍부한 맛을 놓치시다니요... 김용의 어느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보산寶山에 올랐으나 한 가지도 얻지 못한 채로 그냥 내려오는 격입니다.
만리독행/ 김용이 문사철에 조예가 깊은 것과 라마승을 깍아 내린 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문사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정치적"이지 않을까요? 김용보다 훨씬 뛰어난 하이데거도 나치에 협력했다고 해서, 전후 비판을 받았지요? 김용이 문사철에 조예가 깊어도 수 많은 석학 중에 한 사람일 뿐이죠. 신성불가침은 아닙니다.
그리고 악역이 필요했더라도, 한 편에서도 아니고 그렇게 꾸준히 라마승을 악당으로 설정한 이유는 뭘까요? 만약 미국에서 김용 정도로 꾸준히 흑인을 악역으로 설정했다면, 당장 인종차별주의자란 딱지가 붙었을 겁니다. 그리고 라마승에 대한 김용의 입장은 그의 중화-오랑캐의 이분법과 함께 이해했을 때, 더 의심스럽죠.
대가가 무슨 일은 하면, "대가니까 다 이유가 있을 거다"란 주장은 설득력이 없죠.
외재 님을 보고 김용 깍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제가 주장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외재님이 김용에 대해서 비판하는 걸 몇번 본 것 가지고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옳은 일일까요? 마찬가지로 외재님이 김용에 대해서 중화사상 등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충분하지 못한 근거를 가진 것으로 보이네요. 꾸준히라고는 하지만 총 20편도 안되는 작품이고, 마지막 녹정기의 경우에는 중화사상이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고, 천룡팔부 역시 소봉이라는 오랑캐(?)의 당당한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할지요? 더구나 중국인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소설에서 외세의 침입이 있는 경우 과연 어떻게 스토리를 이끌어나가야 중화사상이 아닌 것 처럼 위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중화사상의 실체는 뭡니까? 원은 중화사상에 해당되지 않고, 청은 중화사상에 해당됩니까? 대리 단씨는 중국인일까요?
저는 과테말라님이 라마교와 김용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티벳의 불교가 들어간 것은 당나라 때입니다. 당나라 공주가 티벳에 불교를 가지고 들어 간 이후죠. 그리고 라마교가 성립된 것은 원나라에서 티벳의 고승을 달라이 라마로 인정함으로써 1대 달라이 라마가 탄생하고 테벳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 부상한 후죠. 즉 (그냥 불교가 아닌) 라마교는 원 이후에 비로소 성립했죠.
그런데 김용의 작품을 보면, 송, 원이 등장하는 무협은, 영웅문 3부작과 소오강호, 그리고 녹정기 정도죠. (단편을 제외하고... 단편은 또 왕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죠.) 그 중에서 영웅문 2부, 3부, 녹정기에 라마승이 악역으로 그려지죠. 소오강호는 역사적 색채가 적다는 점에서(왕조사가 전혀 나오지 않죠.) 역사 소설에서 제외하면, 라마교 성립 이후를 배경으로 한 김용의 역사소설에서는 쭉 라마승이 악역으로 나온 겁니다.
이런데도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부족하다고 한다면, 과연 과테말라님 등은 어떤 근거가 있어야 라마교를 깍아 내렸다고 인정할 수 있나요? 대 놓고 "라마교는 나쁘다"라고 말해야 할까요? 문학 작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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