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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작성자
Lv.1 칼도
작성
06.08.06 04:45
조회
1,990

작가명 : 마이크 레스닉

작품명 : 키리냐가

출판사 : 열린책들

<키리냐가>는 연작집입니다. 아래 평문은 에피소우드 '그대 하늘을 맛보았으므로'만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써둔 것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립니다.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한 내러티브상의 설정들이나 장치면에서도 탁월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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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위험한 것이죠. 일단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그것이 주는 충족을 경험하게 되면 자유롭지 않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은 것이 되니까요. 이상이 큰 것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라는 얘기지요. 하늘을 마음껏 날아본 새가 새장 속의 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주인공에게는 자신이 사는 곳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인식, 컴퓨터로 대변되는 고도의 물질문명에 대한 매혹이 그 세계와 문명을 경험하여 자신의 삶과 세계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충동, 자유롭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지지요. 도회지의 세계에 눈뜬 맹랑하고 순진한 시골소녀라고나 할까요.

자유는 또한 잘못 행사되어 오히려 인간을 자연과의 조화를 잃어버린 물질문화의 노예로 되게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위험한 것이지요. 서구인들이 '자유롭게' 당장의 물질적인 편의만을 중심에 둔 오직 하나의 문화만을 독식하며 그  배설물로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동안 제 삼세계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서구를 거울삼아 앞으로 전진했고 전진하고 있지요. 기를 쓰고 가봤자 서구와의 경제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 반면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와 환경과 전통에  뿌리박은 '좋은' 문화는 황폐해지고 대중문화의 수입이라는 형태로 서구의  못된  점들은 쉽사리 뿌리를 내리지요.

우리의 주술사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인식하고 체득한 사람이지요. 말하자면 그는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과학기술의 편의를 거부하면서라도 자신의  부족이 뭔가 고유한, 가치있는 삶의 방식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고 또  지도자로서 자신의 부족을 그렇게 끌어나 가고 있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즉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는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같이 현명할 수 는 없겠기에, 그는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교육'시키기보다는 그들을 일정한 울타리에 묶어두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만을 경험하게 하지요. 선의에 가득 찬, 플라톤의 그 완벽한 철인 독재자이지요.

그토록 현명하기에 차츰 그는 그 울타리 너머의 세계를 어렴풋이 보고는, 그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으로 이미 마음에 날개가 돋아버린 어린 영혼이, 선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에덴 동산에 갇혀지내면서 갇혀지내는 줄도 모르는 순진한 바보보다는 인식과 경험이 확장되는 데서 오는 쾌락과 편의에 몸을 내던지는 타락한 탐험가이기를 택한 인간의 바로 그 원형적 성격(운명?)을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지요. 그러나 그랬으면서도 그의 대응이란 그  날개짓을 멈추게하려는 노력이 다였지요. 아주 지독한 딜레마였던 것이지요. 해결책이 없거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대가 그 주술사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소녀의 호기심이 뻔히 가리키는 길이 나름의 존재 가치가 충분한 한 공동체의 몰락과  붕괴라면,  서구에서 이미 실패했고 '미개인들의 땅'에 수입되어 다시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고 하는) 서구적 문명의 재탕이라면? 억만분이 일의 가능성으로도 재탕이 아닐 수도 있고 설사 그 귀결이 '비자유'라 하더라도 널리 알고 배우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본성을 억눌러서는 안된다라고 하시겠어요? 하긴 그런 두가지 가능성  혹은 대안 밖에 없다면 후자를 택하는 도리 밖에는 없겠지요? 작가도  주인공의 자살로 자신의 그런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요.

그러나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 메시지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은근히 자본주의적 과학기술 문화에 비판적인 이 소설의 포인트는 우리 모두가 완벽하게 인간의 본성에 맞게 자유를 행사하는 동시에 그 자유를 행사한 결과 또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런 사회는 가능하지 않은 걸까라고 자문하는 데 있지요. 신비롭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대단히 성찰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대에게 보내드린 거지요. 한 번쯤 다시 읽고 친구들한테도 권해주기도 하세요.


Comment ' 4

  • 작성자
    Lv.1 Cyrano
    작성일
    06.08.06 11:51
    No. 1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좋은 글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조금 불편하더군요. 아마도 글을 쓴 이가 서구인인 탓이려니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06 12:47
    No. 2

    질소는 공기중 80프로를 차지하는 기체인데요, 산소와 습기로 인한 제품의 변형을 막기위해서 희석제와 제습제로 사용됩니다. 흔히 과자를 포장할 때 질소를 주입하면 제품의 변형이 적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질소를 풍선에 넣은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풍선 속 질소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입니다. 산소와 습기를 고무풍선이 원천차단해주고 풍선 속의 산소와 습기는 질소가 막아줍니다. 이러한 고무풍선 속의 세계는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 될 수도 있고 한국의 근대사인 조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풍선 속에서 가끔 햇살이 환하게 비추면 밖의 세상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 자유롭고 싶은 본능을 느낄 터이지요. 풍선을 뚫고 풍선을 터트리고 밖으로 나가면 고무풍선은 사라집니다. 두려운 일이지요.그래서 자유는 두렵기도 합니다. 책임감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보존이 뒤따를 때 자유는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장 속의 새가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나는 것은 좋지만 새로운 세상에 적응못하고 포수의 총에 맞아버린다면 허망할 테지요. 새장의 존재가치와 풍선의 파괴를 감수하는 자유의 획득 이것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그대 하늘을 맛보았으므로"의 주술사는 이러한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잘 이해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풍선을 터트리고 싶지도 새장속의 새를 놓아주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또한 그는 본문중에 언급된 "인간의 원형적 성격" 그 기저에 자리잡은 호기심이라는 원죄적 요소를 두려워합니다.속된 말로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 여기에 해당될 듯합니다.
    제가 만약 주술사라면 인간의 이러한 원죄적 요소인 호기심의 고약한 취미를 고려해보건데, 소녀는 분명히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며 풍선속을 뛰쳐나갈 것이며 자유롭게 하늘을 비상하고야 말것이며 꾹꾹 억눌러진 욕망은 고무풍선이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갈 때마다 부풀려져서 언젠가는 풍선이 터져버릴 것이라 예상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고귀한 자가 아니라 용기가 있는 자라 생각합니다. 죽음으로써 도피하는 자가 아니라 질기게 붙들어매서 진흙탕에서 뒹굴것을 감수하는 자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의 상실을 슬퍼하고 이상향을 동경하기보다, 파괴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감수하는 자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 같으면 교육을 시켜서라도, 비록 완벽하게 철학자의 의중을 가르칠 수 없더라도, 그 지혜를 대중이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비판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적어도 꾹꾹 억눌러진 욕망이 일방적으로 폭발하기보다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의견개진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는 고무풍선의 매듭을 풀어서 질소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질소 산소 아르곤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북풍마황
    작성일
    06.08.06 14:37
    No. 3

    추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라이락스
    작성일
    09.02.18 15:58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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