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글쎄요.
다른 시각에서 보여줌으로서 노리는 효과가 있을 수 있고(나타내고자 하는 거라거나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한다거나 등등)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그것 자체를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장면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고자 할 수도 있고
나중에 이야기 진행에 어떤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거나,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있을 수도 있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세심한 묘사도,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있을 수도 있고, 이건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결론은.
재미있게 풀어내지 못했다는 걸 지적할 수는 있어도 그러한 구성이나 묘사 자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산산님께서 예를 드신 것처럼 군림천하가 진산월 이야기만 주욱 나오면 솔직히 지금처럼 많은 칭찬을 들을까 의문입니다.
진산월이 검정중원을 터득하고 산을 내려와서 바로 객잔으로 가서 거기서 사제, 사매를 만나고 사제, 사매들이 '고생 했습니다. 끝.'이러면 좀...
물론 확실히 '굳이 이걸 넣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장면들이 있는 소설들이 있기도 하지요.
결국 뻔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잘 쓰면 장땡인..[먼산]
그나저나.... 유한자님...
ㅠ.ㅠ
저 아직 혼혈왕자 안 읽었어요....ㅠ.ㅠ
아직 불사조 기사단도 1권 밖에 안 읽은 상태인데...
크윽, 물론 덤블도어 사망은 들었지만 그래도...흑...
시점이 바뀌던 바뀌지 않던, 친절한 소설은 사양입니다. 중복 설명이 필요없는 것을 굳이 설명하거나, 심지어 외전까지 만들어 이야기를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에 독으로 작용한다 생각합니다.
장르가 다르지만, 동백꽃이란 소설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소설로 다가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김유정이란 메이커가 한 몫했을 것이고, 맛깔나는 대사와 필체도 한 몫 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운 때문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동백꽃에서도 같은 상황에 대해 시점이 바뀌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구태의연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 아이들의 시점으로 한정한 소소한 상황과 심리적 상태만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엔딩마저 독자에게 맡기고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김유정이란 작가가 친절하여, 세세한 친절한 상황 설명이 있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신선하고 풋내나는 청순한 사랑의 동백꽃은 없었을 겁니다. 그저 지주의 딸과 소작농의 아들의 힘겨운 사랑으로부터 오는 씁쓸한 현실인식과 비애만이 전해 졌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작가의 역량이지요.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근래의 무협이나, 판타지를 보면 시점의 변화를 통한 세세한 상황 설명에 의존하는 것이 많습니다. 물론 전부가 아닙니다. 게중에서도 훌륭한 작품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갈수록 그런 작품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일 듯 합니다.
세세한 설명은 소설에서 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현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리얼리티를 원하고 개연성을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작가들 또한 많은 것 같습니다. 리얼리티와 개연성을 원한다고 해서, 현실과도 같은 그러한 묘사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소한 설정과 대사를 통해 우리가 현실과 유사하며, 내가 그 소설속에 빠져 들 수 있는 상상의 기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친절은 그러한 상상의 기회를 차단해 버립니다.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이지, 인문학 도서나 자연과학서를 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더 재미있는 작품을 원합니다. 재미란 말에, 그저 즉흥의 쾌락만 포함될 수도 있고, 지속적인 감동을 주는 여운(생각한 용어를 까먹었음...ㅡㅡ)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 모두의 공통은 상상을 통한 재미입니다. 그런데 과연 상상을 저해하는 소설에서 큰 재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Commen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