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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1 선물개미
작성
09.08.25 15:07
조회
3,299

작가명 : 별도

작품명 : 낭왕

출판사 : 청어람

한글전용시대가 이제 거의 30년에 가까워 업무나 전공에 관련이 없다면 특별한 관심이 없고서야 구분하려 애쓸 필요도 없고 구분할 능력도 없는 것이 현실인데...

조계사, 충렬사, 상무사... 이렇게 써놓으면 절이름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조계사는 寺(절)이고 충렬사는 祠(사당)이며 상무사는 社(단체)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시대에 연유하는 ‘사’는 대개 절이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의 ‘사’는 대개 사당이며, 계의 전국구 또는 길드(guild)라 할 만한 ‘社“는 한말에 반짝하지만 현대의 사단법인 등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한말 보부상을 통괄하던 상무사는 친일단체 황국협회 등으로 분열해나가 단명하지만, 제법 유명한 ‘社’로는 국민당의 정보국 남의사(藍衣社)가 있다. 남의사의 영문 명칭은 가리발디나 나치를 연상하게 하는 푸른 샤쓰당(Blue Shirts Society, 약칭 BSS)인데, 여기서 Society하니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난다. 이는 ‘Dead Poet's Society'의 ’Society‘를 ’사회‘라고 번역한 것으로 번역자의 충무로틱한 무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에서 학생들이 조직한 모임, ‘Dead Poet's Society'는 ’죽은 시인 협회‘나 ’죽은 시인 회‘ 정도에 해당하므로 ’Society‘는 황국협회의 ’협회‘ 등 ’결사’를 의미하지 ‘사회’ 따위로 번역해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마침 ‘죽음’이 들어가므로 여기서 ‘결사’를 혹시 ‘決死隊’로 오해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임을 결성한다는 의미의 ‘結社’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만큼이나 무식한 오역의 다른 예로 맥아더의 퇴임사에서 나온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소위 명언을 들 수 있다. 이는 미군 군가에서 유래한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구절인데, 이 군가가 20세기 초기에 존재했던 것은 확실하지만 명확한 가사나 곡은 전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fade away'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fade away'는 ’시든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사람으로 치면 늙어죽는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효과 ‘fade out'처럼 서서히 흐려진다는 것으로 이는 서서히 잊혀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첫 번째의 의미는 노병은 전쟁터에서 총맞아 죽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집에 돌아가 늙어 죽는다는 적극적인 의미이고, 두 번째는 노병이 총맞아 죽더라도 쉽게 잊히지 않을 거라는 소극적인 의미로 어느 의미로도 노병이 바람과 함께 블링크한다는 뜻은 나오지 않는다.

서론이 주저리주저리 너무 길었지만 본론으로 돌아가, 듣보잡의 무덤이 아닌 이상 남의 무덤을 대놓고 묘(墓)라고 부르는 것은 유교적 전통으로 실례이므로 ‘묘‘가 붙은 문화재는 대개 ’廟‘(사당)이다. ’사(祠)‘는 원래 토지신과 곡식신(사직) 등의 민간신, ‘묘(廟)’는 왕실의 조상을 모시던 사당이지만 송대 이후 엄격한 구분은 모호해져 그냥 ‘묘(廟)’가 ’사(祠)‘보다 더 높은 계급의 사당이라는 의미로 그 아래 계급으로는 장충단 등의 단(壇)이 있다. 무덤도 묘-총-원-릉의 계급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릉 위에 공자와 관우의 무덤에 한해 림(林)이라는 계급을 한 층 더 추가하고 있다.

각설하고 별작가는 낭왕 1권의 45페이지에서

“관제묘는 무덤 묘(墓) 자를 쓰지만 진짜 묘가 아니다. 삼국시대의 영웅 운장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진짜 묘는 관림(關林), 또는 관우총(關羽塚)이라 하여 한중(漢中)과 산서(山西), 낙양(洛陽) 등지에 따로 모셔져 있다.”

라는 황당한 조크를 던지고 있다.

아, 이 찬란한 무식의 극치여! 이런 설명을 안 넣으면 작품의 진행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가만이나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참으로 어이없는 설명이다. 무묘(武廟)나 관묘(關廟)라고도 하는 관제묘(關帝廟)는 ‘사당 묘(廟)’ 자를 쓰지 ‘무덤 묘(墓) 자’를 쓰는 것이 아니며 당연히 사당이지 무덤이 아니다.

더더구나 진짜 묘가 한중, 산서, 낙양도 모자라 등지라고 하면 관우를 오체분시하여 찢어 나눠 묻었다는 얘기인가? 관우의 목과 몸을 따로 묻었다는 것은 정설이지만, 열렬한 관우의 민간신앙에 부응하기 위해 송원명청을 내려오며 순차적으로 관우에게 작위를 내리고 여기저기 소문난 곳을 관제 관광지로 찍어 조성한 것이지 어느 곳도 관우의 진짜 무덤은 아니다.

또 겨우 한 문단의 내용에 시비를 거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분들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이를 지적하는 이유는 이 내용이 낭왕에 처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별작가가 관림을 직접 다녀온 뒤 여행기에 올려져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별작가는 네이버에 ‘별도의 다반사’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블로그(http://blog.naver.com/byuldo)의 ‘별도의 사(事)’ 항목에 용대운 작가와 함께 2008년 7월에 하남여행을 한 여행기가 실려 있는데, 문제의 관림 방문기는 ‘중국 하남(河南) 여행 둘째 날’이라는 글에 실려 있다.

이는 중국 관광가이드의 설명과 안내문을 그대로 충실히 옮겨 적은 것으로 아직도 안 고치고 1년 전의 블로그 내용과 똑같은데, 이 내용을 다시 작품 속에 옮겨 적은 것은 중국 현지여행을 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고, 아마도 자신의 글이 현지답사까지 마친 충실한 글이고 싶어서였으리라고 생각해주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하나는 현지답사까지 마친 작가의 글도 이렇게 부정확할진대, 컴퓨터 앞에만 틀어박혀 쓰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무슨 고증이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있으랴?하는 탄식이다. 다른 하나는 별작가의 중국여행에 동행한 이가 용대운 작가라는 점이다. 함께 갔던 여행기를 실었으니 용작가가 별작가의 블로그를 안 봤을 턱이 없는데, 용작가도 이 틀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용대운이 누구인가? 인터넷을 통한 무협 작가들의 데뷔 연령이나 평균 연령을 고려할 때, 용대운 작가는 이미 중견작가가 아니라 원로작가이다.

그러니 현지답사를 해도 틀리고 원로작가도 발견하지 못하는 잘못을 찝어내는 한 독자의 돈 안 되는 고증은 이 숨 막히는 여름을 더욱 짜증나게 하지 않겠는가? ‘사’가 다 ‘절’이면 어떻고 ‘묘’가 다 ‘무덤’이면 또 어떠랴? 어차피 ‘대중소설’인 것을... 나무아미타멘!


Comment ' 14

  • 작성자
    Lv.21 광인자
    작성일
    09.08.25 15:29
    No. 1

    아무아미타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래피즈
    작성일
    09.08.25 16:45
    No. 2

    이 내용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찬성표도 찍었지만, 글의 마지막 문단에 나온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엔띠
    작성일
    09.08.25 17:26
    No. 3

    나무아미타멘!
    나무아미타불 + 아멘 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09.08.25 18:04
    No. 4

    중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울 종로에서도 문화재로 지정된 관제묘인 동묘(東廟)를 볼 수 있을 텐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독행(獨行)
    작성일
    09.08.25 22:24
    No. 5

    대단한 비평입니다. 나무아까타불!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65 OtsukaAi
    작성일
    09.08.25 22:30
    No. 6

    찬성하나 찍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고추장국
    작성일
    09.08.25 22:44
    No. 7

    전작에서 쎔쎔(Same Same) 이라는 말을 사용했죠.
    이미 중견작가에 들어선 별도님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실수 하는 모습 종종 보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심재열
    작성일
    09.08.25 23:08
    No. 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무영무종
    작성일
    09.08.26 01:36
    No. 9

    선물개미님의 식견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요...쉽게 생각하고 넘어가기 쉬운 부분인데 추상과도 같은 지적이십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박성철
    작성일
    09.08.26 22:43
    No. 10

    그냥 확실하지 않으면 거론하지 않으면 될텐데... 왜 확실하지 않은걸 굳이 적으시려고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3 천년늑대
    작성일
    09.08.31 03:42
    No. 11

    확실한줄 알았겠죠...ㄷ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aimens
    작성일
    09.09.01 16:37
    No. 12

    무식하면서 무모하고 거기다 잘난척까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Allegret..
    작성일
    09.10.10 01:23
    No. 13

    선물개미님의 식견이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소설이니 그냥 보면어때?"라며 태클걸 여지마저 완전히 막는 마지막 문단이 인상깊네요. 반론의 여지도 없는 옳은 말만 콕콕 짚어서 하는 글이란 느낌이 든달까요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일환o
    작성일
    09.11.05 16:44
    No. 14

    멋진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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