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내각 수보가 실질적으로 재상역할을 하긴 했지만 알고보면 황제의 비서실장정도 였습니다. 송대에는 한림원이면 국정을 좌지우지 했지만 명대에서는 서계, 장거정 정도 빼고는 내각 수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재상취급을 받는 것과 제도적으로 보장된 재상은 차이가 크거든요. 물론 명대에서도 한림원이면 엘리트중 엘리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장원급제를 해야 한림원 수찬이 될 수 있고 한림원 편수 이상이어야 태자의 스승이 될 수 있으니 권력에 매우 가깝습니다만은 뛰어난 능력이 필요한가는 의문이 드는게 명, 청대는 과거의 기준이 팔고문이거든요. 송대의 과거는 진짜로 이 사람의 문학적 능력이 어떠한가를 봤고(글 잘 쓰는 사람이 행정및 정치능력도 좋은가는 차지해두고) 합격한 사람도 굉장한 문학적 소양을 가진 이들이었는데, 명, 청대의 팔고문은 시험보는 경전의 숫자를 줄이고 쓸 수 있는 문자와 양식도 정해놓아서, 특출나게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매우 줄었습니다. 다들 거기서 거기인 셈이 되어 필연적으로 다들 열심히 모범답안을 외우는 공부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우스개소리로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공자, 맹자를 모른다는 말도 나오곤 했으며, 청나라가 망한 것이 팔고문 때문이라는 소리마저 있을 정도죠. 소식의 과거 답안을 읽어보면 아 굉장하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팔고문의 답안을 보면 이게 왜 같은 말을 계속 하는지 정말 재미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지요.
소설의 시대 배경은 '명'이겠네요.
[명심보감] 그것 명에서 나온 책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의 것 아닙니다.
학교 교육에서 불충분하고 불명확하게 가르친 잘못된 정보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브리태니커 - 다음 백과사전 : 명심보감
「원본은 1393년 명(明)나라의 범립본(范立本)이 편찬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1454년(단종 2) 청주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그러나 원본보다는 이를 초록(抄錄)한 초략본(抄略本)이 널리 유포되었고, 이것이 원본으로 간주되어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지낸 추적(秋適)이 편찬한 것이라고 와전되었다.」
(전문)
<a h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7m328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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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같은 예로, [두문불출]을 고려말 칠십이현의 두문동 칩거에서 나온 성어로 아는 분들도 많으신데, 이것도 중국 역사책 '국어'와 '사기'에서 두루 나오는 아주 오래된 사자성어입니다.
학사검전에서 주인공이 공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웃기는 일이죠.... ^ ^ 서울대 다니는 학생이 공부를 하는 장면이 없다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10여년 주야장천 공부만 했을 사람들인데, 공부하는 버릇이 안 들어 있겠냔 말입니다.
또 학사이면서 신분제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는 신분제 사회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 상상하는 게 참 힘들지만, 당시에는 관리와 백성이 천양지차였고, 관리들 중에서도 학사는 대단한 학문을 자랑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제가 알기로는)여서 그 자존심이 막강했죠. 게다가 과거시험 동기들이 있기 때문에 연줄이 이리저리 닿아 있어서 무인 따위가 깔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뭔가 지식을 아는 사람이 보면, 헛점 투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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