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읽었습니다. 비꼬거나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사실 반감이 생기는 부분도 있고, 극단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모두 개인적인 부분이고, 전체적으로는 모두 수긍하고 있습니다.
전 사실 단어 하나에도 유래를 알고, 아는 것만 쓰고, 모르는 것은 공부하면서 쓰길 바라지 않습니다. 사실은 정말 그렇게 바라지만, 현 무협시장에선 극히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천천히 나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 글이란 일종의 설득의 작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을 때, 제가 납득하고 이해해서, 제가 설득 하게끔만 써줘도 충분히 만족할 듯 합니다.
이홍장은 배추김치의 연원에도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 초에도 백채(白菜)라는 기록이 있지만 당시의 배추는 지금처럼 한 덩어리의 결구(結球)배추가 아니라 '하루나'처럼 벌어지는 불(不)결구 내지 반(半)결구 배추였습니다. 지금의 결구배추는 18세기경 만주에서 품종개량된 것으로 북경을 오가던 연행사들이 국내에 들여왔지만 재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홍장이 청군을 파견하여 대원군의 하야시키면서 주로 산동에서 왕서방들이 따라 들어왔는데, 비단이장사도 있었겠지만 당시 이들의 주업은 채소농사로 서울, 인천 근처에서 결구배추를 재배했습니다. 한자로 쓰면 같은 백채(白菜)지만 조선배추는 불결구 내지 반결구 배추고, 왕서방이 파는 결구 배추는 '빠이차이'였으므로 결국 이 이름이 지금의 '배추'로 굳어진 것입니다. 김치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배추김치의 역사는 이홍장잡회와 별 차이가 없는 거지요.
왕서방이 팔던 다른 채소로는 "시금치"가 있는데, 이는 줄기가 보라색인 풀이라는 뜻의 자경초(紫經草)의 중국음 "시껑추'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요즘 슈퍼에서 파는 시퍼런 개량종 시금치는 절대 시금치가 아닙니다.
(괜히 사족을 달아 사족에 발톱까지 붙이게 됐군요.)
시금치의 자경초 유래설은 이훈종 선생의 학설이고, 16세기 훈몽자회에 나오는 적근채(赤根菜)의 만주식 발음이 시금치의 유래라고 설명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북경어로 읽으면 '치긴챠이' 정도가 될 텐데 북경어란 것 자체가 만주식 중국어이므로 이와 별도로 만주식 발음이 존재한다고 하는 건 시금치의 국내 재배역사를 늘려잡기 위한 억지라고 보입니다.
물론 훈몽자회의 적근채가 지금의 시금치일 가능성은 높지만 '시금치'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훈종 선생이 맞다고 보입니다.
이홍장은 청말 태평천국의 난에 공을 세워 북양대신으로 잠시 실권을 잡았다가 청일전쟁의 패배로 북양군 자체가 아예 몰락했으므로 한중일의 근대사에 잠시 등장할 뿐 세계사에 비중을 가지는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교과서가 계속 바뀌므로 님이 배운 국사 교과서에 실제 이름이 안 나올 수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이홍장은 대원군을 납치하여 임오군란을 진압함으로써 민비 정권을 재집권시키고, 갑신정변을 진압하고 이어 청일전쟁을 치른 주체입니다. 이 사이 조선에 관련된 청일간의 제물포조약, 시모노세키조약, 텐진조약의 청나라 측 당사자이므로 이홍장 이름을 한번도 거명하지 않고 이들 사건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 선생이 정말 대단한 능력일 겁니다.
실제 조선에 출병한 건 이홍장의 참모 오장경이고 그 휘하에서 중화민국 초대 총통이자 마지막 황제인 원세개가 출세했는데, 구한말의 역사를 배우고 이홍장과 원세개를 모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리플이 석달이나 늦어 누가 읽어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민비를 명성황후로 부르는 이를 볼 때마다 역사앞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쪽팔리는 줄 모르고 명성황후라니... 나라가 힘이 있어 칭제건원을 한 것이 아니라 청일전쟁의 빌미가 되었던 청나라의 간섭을 공식적으로 배제하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을... 칭제건원을 처음제안한 것은 갑신정변에서 친일정권이며,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은 1년 동안 러시아 공사관에 피난가 있던 소위 아관파천에서 덕수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였습니다. 그게 1897년의 일인데 그 2년 전인 1895년에 일본 낭인들에게 참살당한 민비에게 명성황후란 시호를 내린 것이고...
그러니 명성황후란 명칭을 들출 때마다 역사 앞에 의분을 금할 수 없는데 그걸 마치 자랑스런 칭호인듯 사용해대는 이들은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칭제건원이란 미명하에 외부지원세력조차 차단당한 대한제국이 일본에 치안권을 뺏긴건 1904년의 일이고 을사늑약이 체결된 건 1906년, 국권을 완전히 강탈당한 건 1910년의 일인데, 일본에 참살당한 민비를 명성황후로 부른다고 민족의 자존심이 살아납니까?
초기 독립군의 대다수는 망해버린 '대한'이란 이름이 부끄러워 조선독립군이라고 자처했으며, 1919년 임시정부가 설 때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때문에 조선혁명군 등의 이름으로 등을 돌린 이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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