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html도 올라가지 않아 자료실에 그림이 포함된 hwp2007판과 doc판을 올려두었습니다.)
작가명 : 묵호
작품명 : 견왕지로
출판사 : 로크미디어
“수소의 성기를 잘라 음지에 말려 만든 이 쇠좆매는 일단 한 방 맞으면 관병들 육모방망이보다도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머리를 맞으면 며칠 앓다가 황천 유람 가는 것이고, 어깨나 팔다리를 맞아도 제대로 치료를 안 하면 불구가 되곤 하는 무서운 흉기였다.“ 묵호의 견왕지로(犬王之路) 1권 p. 213 (주)로크미디어
(꽤나 전부터 ‘쇠좆매’에 대한 글을 써야 되겠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이게 무협에 나올만한 무기도 아닌지라 자료실에도 못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견왕지로’에 이렇게 실어주니 묵작가가 만주지도도 없이 요, 금, 송을 섞어 요녕성에서 헤매는 것조차 다 용서할 만큼 고마움을 느낍니다.)
1. 거짓말은 새끼를 친다.
앞의 글에서 다른 작가들도 오류가 많은데 왜 하필 권용찬 작가만 찍어 비난하는가라는 지적에 대한 답으로 최근에 읽은 작품 중 명대에 ‘호북성 무한’을 쓴 두 작가를 더 신고한다. 이문혁의 ‘무림해결사 고봉팔’은 아예 ‘호북성 무한.’으로 시작하며, 5월의 별의 ‘교사 범충‘ 3권의 ’호북성 무한‘ 설명은 권작가와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마치 권작가의 무한 설명을 읽고 나서 쓴 듯 설명의 구성이나 이후의 설정이 거의 동일하다.
그러면 이작가나 5작가도 권작가에 대한 비난을 나눠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배작가가 그렇게 썼으니 당연히 맞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게 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작품의 발간시기나 작품수로 선후배를 판단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르더라도 책임지지 못함.)
나름 작품의 배경을 설정하며 어느 정도 자료조사를 거쳤을 작가도 그럴진대 일반 독자야 그냥 그렇다고 하면 그게 맞거니 하는 게 당연하니, 권작가는 선배된 작가로서 더욱 모질게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된 정보나 거짓말은 이렇게 새끼를 치므로...
2. ‘쇠좆‘으로 ‘쇠좆매’를 만들 수 있을까?
그냥 새끼만 치면 그나마 괜찮은데, 잘못된 정보나 거짓말은 태생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하여 마침내 전혀 엉뚱한 형태로 완성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 글의 주제인 ‘쇠좆매’인데, 야후, 다음 국어사전이나 토박이말사전에는 ‘예전에, 황소의 생식기를 말려 형구(刑具)로 쓰던 매. 죄인을 때릴 때에 썼다.“라고 되어 있다.
동물에 대해서는 ‘대가리’나 ‘좆’을 써도 비어가 아니므로 그냥 ‘쇠좆’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을 굳이 ‘황소의 생식기’라고 풀어쓰는 것은 이 정보가 정확한 경우에는 그냥 정중한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쇠좆매’를 ‘쇠좆’으로 만들었다는 건 거의 상식처럼 되어있어서, 2007년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간행한 ‘소설어사전‘에도 위와 같은 정의를 내려놓고 “옛날에 범인을 다스리는 형구(刑具) 가운데 쇠좆매라는 것이 있었다. 소의 생식기를 잘라내어 그걸로 채찍을 만든 형구인데 질기고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라는 오탁번 작가의 ’종우(種牛)‘라는 작품을 예시해놓았다.
과연 쇠좆을 말려 ‘쇠좆매’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알아보려면 일단 쇠좆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할 것이므로 19금 사진을 올리는데,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이라는 속담처럼 축 쳐진 우랑(쇠불알) 앞으로 멋없이 길기만 하고 머리도 작은 게 우신(쇠좆)의 형태다. 소를 잡으면 우신(쇠좆), 우랑(쇠불알)까지 보양식으로 먹어치우고 개좆, 돼지좆까지 만년필, 특수부위라고 먹는 우리 식문화에서 날 쇠좆이야 맘만 먹으면 볼 수 있지만 말린 쇠좆을 볼 수 없으니, 기껏 참조한대야 한약방에 걸린 해구신(물개좆)밖에 없는데 이 해구신이라는 게 그저 뻣뻣하기 짝이 없으니 과연 쇠좆을 말리면 질기고 단단한 채찍이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야후 영어사전은 ‘쇠좆매’를 pizzle이라고 하고 있어 다시 pizzle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니 “1. 동물(특히 황소)의 음경(陰莖). 2. 황소의 음경으로 만든 채찍.”이라고 하고 있다. ‘좆=생식기=음경’이므로 ‘쇠좆’으로도 채찍을 만드는구나 하고 납득하려다가 그 뻣뻣한 해구신이 생각나 ‘pizzle'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그림이 ‘pizzle'인데, ’쇠좆‘을 소금을 쳐서 비비꼬며 건조시켜 가축을 모는데 쓴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뻣뻣한 회초리지 채찍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데, 현재 서구에서 ’pizzle'의 용도는 거의 전적으로 ‘개껌’을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개가 씹어도 씹어도 버티는 걸 보면 질긴 건 확실한 것 같지만 개껌을 만져본 이라면 누구라도 알겠지만 그 뻣뻣함은 채찍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캐나다의 모 사이트에는 쇠좆으로 만든 지팡이를 ‘pizzle cane'이라고 팔고 있어 말린 쇠좆의 뻣뻣함, 아니 더 나아가 꿋꿋함을 확실히 하고 있다. 쇠좆은 낭창대는 채찍이 아니라 회초리나 몽둥이가 제 격이며, 그나마 대가리도 작고 멋대가리 없이 길기만 하여 맞는 이를 펄쩍 뛰게 만들 임팩트를 줄만 한 웨이트(weight)도 없는 것이다.
3. 거짓말은 진실을 피할 방도를 찾으려 애를 쓴다.
쇠좆을 말려 채찍을 만들 수 없다는 건 아무리 사전에 뭐라고 되어 있건 머릿속에서도 잘 상상이 안 가고 실제로도 그러하니,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쇠좆매’는 ‘쇠좆’이 아니라 좀더 그럴 듯한 걸로 만들어진 것을 그리 부르는 것이라고 해야 합리화될 듯하다.
앞의 책 ‘소설어사전’에는 현기영의 ‘목마른 산들’이라는 다른 인용문에서 ‘쇠꼬리 말린 쇠좆매’라고 하고 있고, 2006년 가람기획에서 출간된 ‘조선의 무기와 갑옷’에서는 ‘쇠좆매는 조선시대의 포졸들이 휴대하여 사용했던 무기로서,’라는 정확한 설명 뒤에 ‘원래는 황소의 고환을 짧은 자루에 묶어서 상대를 큰 부상없이 제압하거나 고문을 가하는데 사용하던 것이다.“라고 황당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우신이나 우랑탕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식당 앞 좌판이나 냉장고에서 본 그 쇠불알을 뭔 재주로 자루에 묶을 것인지 고민해보고, 그걸 맞는다고 사람이 뻗을 것인지 의심을 해볼 일이다.
물론 쇠꼬리라면 알맹이를 빼낸 뒤 쇠나 납을 채워 채찍을 만들 수 있겠지만, ‘쇠좆’같은 음란부위를 ‘쇠꼬리’로 표현하는 경우는 있어도 ‘쇠꼬리’같은 건전부위를 ‘쇠좆’으로 표현하는 반대 경우는 나타나기 어렵다. ‘쇠좆매’보다는 ‘우미편(牛尾鞭)’이 훨씬 어감도 좋고 그럴 듯하지 않은가 말이다. 쇠불알을 어찌어찌 자루에 매단다고 해도 그게 ‘시계불알’처럼 쇠덩이가 아닌 바에야 철퍼덕대기만 할 것이고...
4. 거짓말은 스스로 진화한다.
‘쇠좆’으로 ‘쇠좆매’를 만들었다는 거짓말로 초지일관하려면 말린 쇠좆이 뻣뻣꿋꿋하고 임팩트를 줄 만큼 웨이트가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웨이트가 없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TV 드라마 ‘일지매’에서는 ‘말린 소 음경에 납덩어리를 박아 넣어’ 해결하고 이걸로 몇 대면 납덩이가 네 년 살 속을 파고 들어가 살점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야.‘라며 협박하고 있고, 영화 ’음란서생‘에서는 거시기에 ’다마‘를 박듯 ’쇠좆 안에 철구슬을 넣어” 해결하고 있다.“
특히 문병란 시인의 장편 서사시 ‘동소산의 머슴새’에서는
“쇠좆매라는 것
소의 신(腎)을 뽑아 음건한 다음
신 끝에 납을 달아 만든 특수한 고문 도구
사람을 때릴 때 먼저 물에 넣어 적시면
다시 낭창낭창 휘이며
살갗에 찰싹찰싹 달라붙어 휘감기고
휘감길 때, 메 끝에 매단 납이 살 속을 파고들어
다시 세게 나꿔채면
매끝에 피범벅이 된 살점이 마구 묻어났다.“
라 하여 제조방법과 사용방법, 효과까지 친절히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사용 전에 “물에 넣어 적시면” 뻣뻣꿋꿋함이 “다시 낭창낭창‘해진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음건(陰乾)이란 응달에서 말린다는 뜻인데, 양달에서 말리면 뭔일이 생기는지 모르지만 마치 직접 만들어본 것처럼 썰을 풀고 있다. 이런 흉측한 글을 시로 부르는 게 합당한지는 논외로 하고 ’쇠좆매‘의 제작과 사용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앞의 글, 현기영의 ‘목마른 산들’에서는 살점이 묻어나는 효과보다는 못한 “온몸이 구렁이 수십 마리가 휘감긴 듯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정도의 실망스러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5. 거짓말은 스스로 방어한다.
‘음란서생’의 영화소개에서는 ‘쇠좆매’가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이 애지중지하는 무기라고 하면서 “문헌에 등장하는 쇠좆매는 쇠좆 안에 철구슬을 넣어 휘두르는 잔인무도한 무기로 그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문헌대로 만들면 배우가 다칠 것이므로 동물의 피부 느낌을 살려 재현한 모양새가 이 쇠좆매다.”라고 하고 있다. (쇠좆이 무슨 속이 빈 주머니인가? 철구슬을 넣게?)
영미경찰의 빌리클럽(billy club)과 거의 같은 가죽곤봉을 만들어놓고 ‘쇠좆 안에 철구슬을 넣어 휘두르는’ 문헌이 있다는 개뻥과 함께 ‘그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는’ 새뻥을 치고 있다. ‘쇠좆매’는 전쟁기념관이나 육사박물관, 고대박물관 등에 엄연히 전시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쇠좆매는 위 설명과 전혀 틀리니 당연히 그런 문헌이 있을 리 없다. (제작비 몇십 억짜리 영화의 시나리오를 몇 천만 원 받고 쓰면서도 아예 고증은 시도도 안 하고 거짓말로 채웠으니 겨우 몇백도 안 될 고료로 작품을 쓰는 무협작가를 비난하는 내가 아주 나쁜 놈이다.)
형태도 남아있지 않은 신비의 무기로 보이기 위해 시퍼렇게 멍이 드는 정도가 아니라 피가 튀고 살점이 나는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극악무도한 효과가 나는 채찍은 역사상 최초로 이를 사용한 페르시아도 이미 그 시대에 사용금지한 것이다.
6. ‘쇠좆매’는 과연 어떤 놈인가?
이런 고문 전문가들의 설명이 다 개뻥이면 도대체 ‘쇠좆매’는 어떻게 생긴 놈인가?
앞의 책 ‘조선의 무기와 갑옷’에서는 ‘쇠도리깨’ 항목에
“조선시대의 유물 중에서 편곤과 형태는 유사하지만 길이가 매우 짧고 자편(子鞭) 혹은 모편(母鞭) 모두를 쇠로 만든 것이 있는데, 이를 쇠도리깨, 쇠좆매라고 부른다. 쇠좆매는 조선시대의 포졸들이 휴대하여 사용했던 무기로서, 원래는 황소의 고환을 짧은 자루에 묶어서 상대를 큰 부상없이 제압하거나 고문을 가하는데 사용하던 것이다. 이는 과거 영국이나 미국의 경찰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피의자를 구타하기 위하여 작은 가죽 주머니 안에 돌이나 납추를 넣어서 타격한 것과 유사하다. 무쇠로 만든 쇠좆매는 황소의 고환 대신 쇠로 만든 다이어몬드형의 추 1개나 혹은 2개의 가는 철봉을 달아 범인을 타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쇠좆매 자루의 길이는 50cm 내외로 짧은 편이며 그 끝에는 끈을 달아서 팔목에 묶어 사용했다. ‘
라고 하고 있어 ‘황소의 고환’ 얘기만 제외하면 거의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다만 도리깨의 길이가 거의 사람 키에 가까워 ‘쇠도리깨’라는 이름은 편곤(鞭棍)에 더욱 어울리지만 이 역시 통일된 견해는 없는 듯하다. 예를 들어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에서 ‘오주’가 휘두르는 쇠도리깨는 편곤이지만,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포졸과 건달패 양측 모두의 기본 무기인 쇠도리깨는 쇠좆매이다. 한편 김주영의 ‘객주’에는 소매나 행전 틈에 숨길 수 있는 ‘쇠좆매’가 몇 번 나오는데, 단어 해설에서 역시 ‘쇠좆으로 만든 매채‘로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옆 사진의 것들이 ‘쇠좆매’인데, 위의 것은 공식적으로는 기찰포교나 다모(茶母)들, 비공식적으로는 시중 무뢰배나 대갓댁 하인들이 휴대하던 ‘쇠(鐵) + 좆매’이고, 아래의 것은 조선 초기부터 제식무기로 사용되던 ‘쇠좆(牛腎) + 매’이다. 이 이름의 연유를 이해하려면 60, 70년대까지 흔들리는 것 중 짧은 것은 ‘불알’, 긴 것은 ‘좆’, ‘자지’로 부르곤 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계추는 ‘시계불알’, 방아의 공이는 ‘방아좆’으로 부르곤 했는데, 위의 짧은 ‘쇠+좆매’는 손잡이 끝에 ‘쇠’로 된 길쭉한 ‘좆’매가 달려있으므로 ‘쇠+좆매‘인 것이다. 아래의 긴 ’쇠좆+매’에는 ‘불알’이 하나 또는 두 개 달려있는데, 이를 손에 들면 영락없이 위에 올린 19금 ‘쇠좆’ 사진에서 ‘불알’이 쳐져있는 가늘고 긴 ‘쇠좆’의 머리쪽을 붙잡고 있는 형태가 되므로 ‘쇠좆 + 매’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둘 모두 ‘쇠좆매’로 불리지만 이름의 연원은 다른 것이며, 이는 우리 선조들이 곧잘 하고 놀던 중의(重意)에 의한 말장난에도 해당된다. 나는 이렇게 알고 있지만 출전을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쇠좆매’는 ‘쇠(로 만든)좆매’건 ‘쇠좆(처럼 생긴) 매’이건 ‘쇠’로 만들었으므로 적어도 ‘쇠좆’으로 만든 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7. ‘쇠좆매’의 위력
먼저 ‘쇠좆+매’는 철퇴의 일종인데, 이란의 그림에서 거의 같은 무기가 몽골군의 무기로 그려져 있으므로 고려시대에 몽골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철퇴유물로는 이 이외에도 보통의 철퇴나 서양식과 같은 유성추도 남아 있고 자루 끝에 칠절편 같은 것을 붙인 것도 보이지만, 위력이나 사용, 제조에 있어서 ‘쇠좆+매’가 가장 우수한 것으로 보여 가장 널리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때려죽인 무기나 연산군이 엄귀인을 때려죽인 무기는 그냥 철퇴로 기록되어 있지만 ‘쇠좆+매’일 가능성도 높다고 보이며 일반적인 철퇴(mace)는 오히려 ‘몽치’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철퇴는 도검을 방호하는 갑옷을 입은 적에게 사용하는 타격무기이므로 ‘쇠좆+매’ 역시 갑옷을 입지 않은 적에게는 당연히 뼈를 부수고 살점을 튀게 하는 위력을 가져야 하며, 실제 그런 위력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쇠+좆매’는 기찰포졸이나 다모가 휴대하는 제압용 병기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집행자(law enforcement)들이 사용하는 병기는 외상을 남기지 않고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 바람직하며, ‘쇠+좆매’로도 머리나 관절을 때리면 뼈가 부서지겠지만 어깨나 허벅지, 등짝 등을 때리면 한방으로 상대를 주저앉힐 수 있을 것이다.
8. ‘쇠좆매’에 대한 오해
‘쇠좆매’는 영미경찰의 빌리클럽과 그 용도와 효과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인데, 고문도구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외상을 남기지 않고 골병을 들게 하는 효과가 있음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에 일단 체포된 피의자를 골병들게 하는 데는 ‘쇠+좆매’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 많으므로 ‘쇠좆매’로 맞았다는 이들은 주로 일제시대에서 반공투쟁기에 집중된다. (외상을 남기지 않고 골병을 들게 하는 방법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멍석말이’인데 이는 멍석으로 말아놓은 ‘구타유발자’를 여럿이 둘러싸고 장대로 짓찧는 것이다. ‘멍석말이’도 말아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유포하는 이들이 많지만 몽둥이를 휘두르려면 서너 명 이상의 ‘구타행위자’들은 근접할 수 없지만 짓찧는 방식은 십여 명이 동시에 근접할 수 있으므로 더욱 효율적인 집단테러가 가능하다.)
일제시대에 일본 경찰과 헌병이 ‘쇠좆매’를 휘두른 건 확실하지만 이는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쇠좆매’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유신 이전의 일본의 심문방법은 오히려 외상이 생기는 게 당연했으므로 일본 오리지널이 아니라 구미경찰에서 배워왔을 것이 확실하다. 유신기의 일본은 육군은 프랑스에서, 해군은 영국에서, 경찰은 독일에서 배워왔다고 하는데, 근대까지 독일 경찰은 일본처럼 칼을 휘두르는 게 당연했으므로 아마도 영미경찰에서 배워온 것으로 보인다.
영국경찰에서 유래되어 지금은 미국경찰에서만 쓰인다고 알려진 블랙잭(blackjack)에는 쌥(sap), 빌리클럽(billy club), 슬래퍼(slapper) 등이 있는데, 형태는 다르지만 용도나 효과는 같으므로 명칭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섞여 쓰이고 있다.
군대를 갔다 온 시기에 따라 배워 나온 것도 다르겠지만 나의 군대시절에는 양말에 물로 적신 모래를 채워 무성무기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양말 또 한 켤레는 ‘라이언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대전차병기와 유사한 ‘독수리 화염주머니’를 만드는데 써야 했으니 지급받은 양말 세 켤레 중 신을 건 한 켤레밖에 남지 않는다.)
그림 맨 위의 쌥은 이 양말무기와 유사하게 모래나 쇠구슬을 채운 가죽주머니로, 끈을 손목에 걸고 후려치는 무기이다. 만들기도 쉽고 버리기도 쉬워 지금도 강호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림 두 번째의 빌리클럽은 작은 곤봉(club)을 가죽으로 싸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한 것인데, 위력을 높이기 위해 머리 부분에 쇳덩이나 납덩이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 언터처블스(Unterchables)에서 숀 코넬리가 앤디 가르시아에게 들이대는 무기로 나온다.
그림 세 번째의 것이 슬래퍼인데, 이는 스프링 끝에 납덩이를 달아 두 장의 가죽으로 쌈으로써 납작한 쓰레빠 짝처럼 만든 것으로 이걸로 때리면 쓰레빠로 맞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겠지만 효과는 펄쩍 뛸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다. 불법무기인 쌥이나 빌리클럽과는 달리 쓰레빠는 꽤 여러 주에서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경찰장비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범인을 체포하는데 사용하는 제압무기로 일단 잡아들이고 나면 더 효과적인 고문도구가 많은데 굳이 이런 것들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일제가 사용했던 ‘쇠좆매’로 가장 혐의가 짙은 것은 고무호스인데, 안에다 모래나 쇠구슬을 채우고 양끝을 막은 고무호스는 맞는 이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골병 등 확실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으면서도 외상을 남기지 않는 고문도구로, 미영불, 네덜란드 등이 식민통치에 효과적으로 사용해왔으며 지금도 관타나모 기지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도 4.3 사건이나 빨치산 토벌 등 소위 반공투쟁이란 야전 상황에서는 쌥이나 양말 등 급조된 ‘쇠좆매’도 고문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찌르고 베고 쑤시는 등 인간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많으므로 더 무식하고 효율적인 고문도구도 많고 좀더 문명화된 듯 보이는 전기고문조차 전선을 댄 자리에 화상이 남는다고 하지만 ‘쇠좆매’의 무엇보다 중요한 장점은 외상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민통치건 폭동 제압이건 근현대 국가는 법치(法治)의 탈을 써야 하므로 고문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고통과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쇠좆매’는 가장 효율적인 고문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쇠좆매’를 맞아 골병이 들거나 허리가 내려앉았다는 얘기는 사실일 것이나, ‘쇠좆매’를 맞아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튀기는커녕 멍이 들었다는 얘기는 다 뻥이고 과장임이 확실하다.
참조될만한 고문도구로 쇠망치가 있는데, 뒷감당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스탈린시대의 러시아 비밀경찰은 쇠망치로 머리나 입을 직접 때렸지만, 역시 쇠망치를 애용하기는 하지만 민주경찰을 표방하는 홍콩 경찰은 전화번호부를 대고 때린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영화속 장면이기는 하지만 ‘구타유발자’의 주소를 물어 해당 지역 전화번호부를 대고 때리는데, 가장 지역전화번호부가 얇은 지역이 어디라던가?
9. 결론
여기까지 살펴보면, 옛날에 어떤 ‘좆’도 모르는 시러배 잡놈이 하나 있어 ‘쇠좆매’는 ‘쇠좆’으로 만들었다는 개뻥을 처음 유포했고, 이를 들은 합리적인 후대인은 아무래도 이 거짓말은 그럴듯하지 않은 것 같아 다른 합리화를 시도했고, 역시 ‘좆’도 모르는 비합리적인 후대들은 선대의 거짓말에 살을 붙여 극악무도한 고문무기로 완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쇠좆매’의 실물들이 남아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쇠좆매’가 ‘쇠좆으로 만든 매‘라고 하는데 나만 홀로 ‘쇠(로 만든) 좆매’ 또는 ‘쇠좆(을 닮은) 매’라고 주장하다가 다수결 원칙에 의해 뺨을 맞고 진실은 영영 묻혀버릴 뻔 한 것 아닌가?
문뜩 초등학교 때 낱말뜻 적어오기 숙제가 생각난다. 표준전과에는 낱말뜻이 20개밖에 없었는데, 선생(놈)은 동아전과에서 돈을 먹었는지 30개를 적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0개를 순수한 창작력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 ‘수영비행장’을 ‘물 위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비행장’이라고 썼다. (당시에는 부산 비행장이 김해가 아니라 수영에 있었다.) 다음날 낱말뜻을 20개씩밖에 못 적어온 표준전과 파(派)들은 동아전과 파들 또는 내 숙제에서 10개를 베낄 수밖에 없었는데, 내 걸 베낀 몇 명은 몇 년 후에도 부산이 항구라서 비행기도 수상으로 뜨고 내리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장르 문학이 돈이 되건 안 되건 생업으로 쓰건 취미로 쓰건 그걸 읽는 독자가 불특정 다수인 한 작가는 이미 공인(公人)이다. 적어도, 별 듣보잡 딴따라들이 툭하면 사고를 치고나와 ‘공인으로서...’ 운운하며 나발을 부는 것보다는 훨씬 떳떳한 공인이다. 한 작가가 무책임하게 ‘쇠좆’으로 매를 만들면 후배작가는 한술 더 떠 ‘쇠좆’에 ‘다마’까지 박아댈 것이므로 어느 작가건 독자나 후배 작가들에게 책임을 느끼며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다시 봐도 ‘교사 범충’의 ‘무한’ 설명은 권작가의 설명을 읽고 쓴 것 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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