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조진행
작품명 : 향공열전
출판사 : 드림북스
-비평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글이 평어체로 쓰여진 점 우선 사과드립니다.
이 비평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의해 시작되었다. ‘향공’이라는 생소한 명칭에 대한 필자의 궁금증과 의혹이 비평의 시작을 열었다.
향공 - 지방 향시에 합격한 생도.
책에 나와 있는 설명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향시에 합격한 사람은 ‘거인’이라 지칭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런 부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고 나는 관련 서적을 뒤져 정확한 진위를 알아보려 했다.
과연 ‘거인’이란 칭호는 명나라 대에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향시는 존재 했었고 당연히 향시에 합격한 자를 지칭하는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 말이 향공이 맞았는가? 안타깝게도 2시간에 걸쳐 소장 서적과 대학도서관을 살펴보았지만 이 부분을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동양사 교수님을 찾아 가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정확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_-;;;)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본 결과 ‘명락손산’의 고사에서 송대 향시 합격자를 ‘해명解名’이라 지칭했다는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진행작가가 틀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부족한 사료만으로는 필자의 주장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디에서 접근해야 할 것인가?
나는 향공이라는 어휘 자체에 주목 했다. 그리고 검색을 해 보았다. 그 결과 향공은 과거 조선시대 향시에 합격한 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조선시대라면 역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향시 합격자를 거인 이전에 향공이라 지칭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서문영을 향공으로 지칭하는 것은 맞지만 틀렸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이 작품의 배경이 ‘당’이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분명 향공이라는 어휘가 존재 했고 조선에서 쓰인 것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조진행 작가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왜냐면 당대에는 향시가 없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향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수나라 시절에 시작되었고 당대에도 존재 했지만 당대의 과거는 상과와 제과로 구분 되었다. 이것도 1,2차를 나누는 말이 아니고 상시시험과 임시시험을 나누는 말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향시와 성시, 진시로 구분되는 3차 시험제도는 송 태조 개보 6년에 완성 되었고 향시와 성시는 송초에 완성 되었다.
당대에서 향공은 향시를 합격한 자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 당대는 상과를 응시하기위해 주현학관이라는 학교에 소속되어 공부를 해야 했는데, 이 주현학원에 소속되지 않고 주현시험을 거쳐 바로 상과(상서성)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결국 책속의 성시를 준비하고 있는 향시 합격자 서문영은 완전한 오류다.
물론 이 주장은 작품의 시대가 당대라는 전제하에서 시작한다. 당대가 아니라면 필자의 주장은 틀린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배경이 당대가 아닐 확률은 극히 적다.
첫째로 신책군은 당대에 있었던 실제 군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
둘째로 보국왕의 성이 이씨라는 점
마지막으로 작품내에 고구려의 후예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제나라는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나라이며 이정기가 작품 내에 이름으로 나마 살아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정기는 730-780의 인물이다. 다시 말해 제나라와 이정기라는 실존했던 나라와 인물을 등장시킨 시점에서 이 작품의 시대는 730-780사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정기가 제나라는 세운 시점이 760년 대였으니 그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결국 이시대는 당대다.
향공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문영이 성시를 치르지 못하는 이유로 구품중정에서 하하를 받고 예부의 성시를 치르지 않게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 역시 오류가 있다. 왜냐면 구품중정은 수대에 폐지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관품제도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있지만 이 관품제도는 구품중정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수대에 이르러 추천이 중시되던 구품중정이 폐지되고 과거가 실시된다. 과거 구품중정의 수많은 폐단을 치유하기위한 조취였다. 물론 제도가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당대에 관리가 되는 방법은 과거뿐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당대에는 추천도 가능한데. 공권, 행권 등의 절차로 추천제가 여전히 존재 하고 있다. 관품제도는 이 추천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취다. 안타깝게도 관품제도는 과거제와 연관되지 않았다. 작품내의 설정은 분명 오류가 있다.
또한 구마선사와 유마경이라는 작품내의 가장 중요한 설정에도 오류가 있다. 서문영은 성가장에서 구마선사가 직접 필사한 유마경을 얻는다. 문제는 이 유마경이 권좌본(서책)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다. 권좌본형태의 서책은 8세기에 이르러서 보급되었다. 그 이전에는 종이로 만들기는 했으나 두루마리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성가장의 책들에는 죽간과 권좌본의 설명만이 있을 뿐이지 두루마리 형태의 서책은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서문영이 책을 얻은 것은 760-780년대 사이이고 서책은 700년 정도부터 권좌본이 배포되었다고 생각할 때, 수많은 권좌본은 (일개 무관에서) 당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억지라고 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권에서 대림사를 찾아간 부분을 보면 구마선사는 수백년 전의 인물로 표현된다. 이건 명백한 오류다.
그리고 이 수백년 전 이라는 부분도 의문을 자아내는 표현이다. 물론 200년 정도부터는 수백년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마선사는 달마 이후의 인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서문영의 시대로부터 달마의 시대는 불과 240년 정도의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서문부분에 이미 소림사가 많이 유명해 졌다고 쓰여져 있는 것을 참조해 보자. 소림의 중흥은 달마조사가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달마조사 이후 육조혜능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선종과 소림이 알려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6세대가 흐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이고 구마선사는 언제적 인물일까?
(안타깝게도 대림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혈비’<단혈비였나? ;ㅁ;>는 구마선사와 관계있는 일 같지만 300년 전에 점창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적혈비가 사라진 시대는 오히려 달마대사보다 이전이며 구마선사와 관계시키기가 정말 어렵겠다. 별 생각 없이 관계 시켜 뒀다면 시대적 오류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만약 이 글을 보고 수정한다면 그것도 글의 앞뒤를 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조진행 작가가 이미 내 머리위에서 놀고 있기에 전혀 문제없이 연관이 되어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300년 전 사건과 구마선사와 있었던 사건이 별 연관이 없다든지 하는.)
십대문파의 문제역시 존재한다. 무림의 십대문파라고 해서 그저 상상속의 문파가 아니다. 실제 많은 문파들이 실제로 존재 했었고 그 연대마저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이미 십대 문파가 나와 있다. 개방이나 녹림등의 경우에는 무척 오래된 문파이지만 화산등의 도가문파는 전진 이후의 문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진이 등장한 것이 1100년 대, 그러나 700년대인 작품 내에서는 이미 화산등의 도교문파가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설정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요소이기에 작가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작품내에서는 어떠한 설명도 되어있지 않아 안타깝다. 장문인이 존재 한다면 계보가 있을 것이고. 700년 대부터 1300년에 이른 역사의 문파라면 한 대를 20년으로 잡더라도 62대의 어마어마한 족보(?)가 만들어져 버린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건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이지 뭘 그렇게 따져 묻느냐고, 허나 그렇지 않다. 무협에 있어서 상상력의 개입은 얼마든지 환영된다. 예를 들어 이 작품 내에서 살펴보자.
흔히 무당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장삼봉의 경우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크게 3시대의 사람이었다고 불린다. 흔히 알고 있는 명초의 장삼봉과 북송 남송 시대의 장삼봉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당대이므로 아직 장삼봉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무당은 스스로 개파를 하려 한다. 이것은 무당의 시조는 장삼봉이 아니라 무당산의 도인들이 스스로 파를 만들고 그 이후에 장삼봉이 태어났을 거라고 말하는 작가의 상상력의 개입이다. 이런 것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을 왜곡하는 현상은 벌어져서는 안 된다. 작품에 황제를 대통령이라고 써 놓고는 ‘설정하기 나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비평란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향공열전이란 화제작을 속된말로 ‘까대는’ 이유는 그만큼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진행 작가는 중견작가라고 지칭해도 손색이 없다. 또한 향공열전도 간만에 만나는 수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중견작가의 화제작 속에 이렇듯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는 역사학도가 아니다. 이 글을 쓰기위해 자료를 수집한 시간도 채 3시간이 되지 못한다. 역사적인 지식이 없는 필자가 3시간의 자료수집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왜 작가는 고려하지 않았나? 물론 조진행 작가를 폄하 할 수는 없다. 명초로 굳어있던 무협의 시대배경을 바꾸어 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작가는 충분히 그 실험성과 도전정신을 평가 받을 수 있다. 다만 조금만 더 배경에 신경을 써 주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쉽다.
다음권을 기다리는 독자로서 향공열전 자체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틀렸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악한 역사적 식견으로 미처 제대로 알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에는 작품 내에서 수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협의 발전을 위해서 비평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평이 있기에 작가는 발전할 수 있고 독자는 더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 필자 역시 연재를 해 볼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비평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평은 작가에게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꿀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떨리는 심장으로 비평을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향공열전이 더 좋은 명작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PS-비평과 다른 의견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비난과 욕설은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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