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지화풍
작품명 : 천지무흔
출판사 : 조은세상
'요녕성 동부...'로 시작하는 '천지무흔'의 첫줄을 읽다가 덮고 이 글을 쓰기는 하지만, 재수가 없어 걸려든 거지 이는 지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베스트에 올라와 있는 강호풍님의 신작, '적운의 별'도 시작부터 요녕으로 도배하고 있군요.)
지리적 스코프를 넓혀야 작품의 스케일이 커진다고 생각하는지 일부 작가들이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며칠만에 주파하는 판타지를 써대는 반면, 또다른 부류의 작가들은 왠만한 중국지도로는 찾을 수도 없는 고개너머 마을 이름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해대기도 한다.
고구려 유민이나 고려유민이 튀어나와야 한국적 무협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장백파니 백두산이니 만몽 벌판을 등장시키고 삼국시대(후한)까지 산동반도 이북의 바다, 발해를 지칭하던 북해를 영구동토의 빙국으로 등장시키는 것도 요즘 작가들이 곧잘 하는 짓인데...
아무리 무협이 동양적 판타지이긴 하지만 '요녕성'이라는 명칭이 튀어나오는 무협만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요녕성'은 1954년에 기존의 요동성, 요서성, 안동성의 세 성을 이리저리 쪼개고 붙여 만든 성이며, 그 이름도 '요동 + 녕하" 같은 의미가 아니라 '요동이 평안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요녕성'이라는 명칭은 1924년에 처음 등장했지만 만주국이 서는 바람에 실제 행정단위가 된 것은 30년이 지나서였다.
'동북지방'이라는 명칭도 만주를 중국의 영토로 생각하기 시작한 2차대전 후의 인식에 의한 것이며 '요녕성'이 생기기 전에는 '동북3성'도 아니고 '동북9성'이었다.
굳이 명나라를 시대적 배경으로 만주를 그리고자 했다면 '요녕성'이 아니라 '요동도사(요동도지휘사사)'여야 할 것이지만 이는 25위의 군사 거점과 여진 위소를 거느리는 군사단위일 뿐 '성'같이 중국인이 들어가 사는 영토가 아니었다.
더구나 영원까지는 산해관에서 육로로 연결이 되지만 금주나 요하 이동의 요양 등은 주로 산동반도의 등주에서 해로로 교통했으므로, 요동도사는 산동포정사사 관할이었다. (고려사를 읽어보면 요양에서 압록강까지의 요동8참도 명 초기까지는 고려가 관할했음)
요동도사에 대한 보급은 등주로부터의 해로로 이뤄졌으므로 자급자족을 위해 둔전을 일구고 산동 등에서 강제로 주민을 이주시키기도 했지만 명 초기 이후에는 유명무실해져 요동도사 및 위소의 현지화가 이뤄졌으며, 이는 조선 유민 출신의 이성량이 요동총병이 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누르하치가 일어나던 시절 정도에는 산동과 해로로 연결이 가능한 금주, 복주, 해주, 개주 등 해안도시에만 민간인이 거주할 뿐 내륙에는 군인 아니면 이들과 여진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 이외에 민간인이라고는 조선과 명의 둔전에서 도망간 이들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명나라 시절에는 이 해안도시 주변으로 변장을 둘러쌓았고 청나라 시절에는 이 변장을 더 연장하여 중국인이 나오지 못하게하는 유조구를 쌓았으므로 몇몇 해안도시와 일부 내륙 요새도시를 제외하고는 명청 어느 시대에도 중국인의 무대나 무협의 배경이 될 수 없음이 당연하다.
중원에서 백두산을 드나들려면 만주를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산동성 등주에서 배를 타고 요동반도의 해주나 개주에서 배를 내려 요동반도를 가로지른 뒤 압록강을 타고 올라야 하는 것이다. 수천리 중간중간에 명나라 위와 여진 위소, 조선영 등에 일일히 통행허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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