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다른건 다모르겠고 성직자에 대한 부분만 예기하자면 글쓴분은 대단이 자기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나머지는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시는 분 같군요. ㅋㅋㅋㅋㅋ
다른게 아니고 드래곤 라자의 성직자는 근본적으로 신앙을 통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즉 성직자의 힘 자체가 신의 의지이므로 성직자는 신의 의지를 현실에 반영하면 반영할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수 있죠. 즉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물리법칙이나 과학으로는 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드래곤 라자나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신은 물질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면 과학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직자가 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성직자는 신성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결과 성직자는 신의 의지를 따르기 위해서 끊임없는 수련과 자아세뇌를 해야 되는 것이죠.
확실히 요즘에는 자아도취에 빠져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려 ㅋㅋㅋㅋ
글을 적으면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 할애할 것인가. 이 주제를 위해 어떤 부분을 잘라낼 것인가. 그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이런 감상은 좀 비현실 적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주제의식'을 고려 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위에 언급하신 예에서 보듯 그 난잡하고 혼란스러움 자체를 '주제' 풀어내는 소설도 있겠죠. 저런 세기말적 이야기라면 오히려 그런 식으로 풀어내야 적당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영도씨 같은 경우엔 특출날 정도로 주제의식이 뚜렸하시거든요. 이 분 소설에서 저런걸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봅니다. 심지어 자신의 이야기의 주제를 위해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소설 내의 입지를 표현하는 의미의 양이 좀 과하다 싶게 여겨질 정도니까요 (장단점은 있겠지만 때론 과포화란 느낌이 들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갈수록 호오가 갈린다고 봅니다. 이영도씨의 글을 풀어내는 방식을 납득할 수 있다면 즐겁게 읽겠지만, 아니라면 꽤나 괴상하게 여겨지겠죠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이영도씨 같은 경우에는 그 끈질긴 타자에 대한 담론과 캐릭터 각각의 개성을 위해 등장인물의 입체적 표현을 포기하거나, 아주 제거해버린 케이스니까요. (사람은 대부분 입체적이죠. 다른 말로 하면, 모두 다각적인 관점을 보이기 때문에 특정 예외는 접고서 바라본다면 보편적 '인간'으로서 비슷합니다. 다른 말로 '범주'라고 하죠. 그래서 소설에서 외모로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진부한 경우가 많은데, 이영도씨 같은 경우엔 반대로 외모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죠. 때문에 다른 쪽으로 부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시 됩니다.)
위에 예시에 대한 언급을 조금 하자면, 레티의 프리스트 같은 경우엔 정치와 타협을 하고 길시언을 죽입니다. 이 한마디면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여왕이 아이를 그렇게 대접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루릴, 드래곤 레이디, 왕지네, 그리고 예언자 입니다.
'그림자 자국'에서의 이루릴은 어찌보면 '모든 종족의 라자'입니다. 타자와 닮아가는 엘프의 특성과, 1000년이 넘는 시대의 개입이 그녀를 이런 입지에 있게 끔 만들었죠. 신과 비슷합니다. 방관적인 것이 그다지 이상하다고 여겨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제 삼자로 분리시킨 것에서 '그렇게 변화된 그녀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드래곤 레이디는 드래곤이니 언급할 필요도 없으니 넘기겠습니다. 예언자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분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닙니다. 상대적으로 개입자이기 때문에 입장 표명은 넘기도록 하죠. 그렇다면 남은건 '인간 왕지네' 입니다. 왕지네는 아이도 불쌍하게 여기고, 예언자도 불쌍하게 여깁니다. 마음의 더듬이가 기니까요. 그래서 여왕을 없애려고 하죠. 말씀하신 '다른' 관점은 이미 왕지네를 통해 나온것 같습니다만.
이영도씨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이영도씨 소설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라엘~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써 봅니다.
처음에는 '완전한 성직자'에 대해 이야기 하셨죠. 이제는 오래되어 기억에서 희미해진 DR의 성직자를 떠올려 보죠. 제레인트, 여오크(이름이 기억이...), 복수의 신의 사제들... 또 누가 있더라;
나오는 성직자 마다 모두 신을 잘 따른다라... 이건 위에 여러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넘어가고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만 추가하겠습니다.
DR의 세계 속에는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겠죠. 말씀하신대로 나태한 사제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 나태한 사제는 DR의 주된 사건이 진행되는 이야기 표면으로 등장해야 할까요?
DR의 주제와 이야기 흐름상, 나태한 사제의 등장이 필요하다면, 한 사람의 등장인물로서 분명히 활약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극의 진행상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이런 인물을 등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라엘~님이 '성인군자 같은 사제가 나오면 마땅히 그에 반하는 사제도 꼭 나와야 한다'라고 주장하시는거라면,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물론 라엘~님이 그런 생각으로 이 글을 쓴 게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여기까지 읽어 보면 마치 '왜 내가 생각하는 인물 형태는 안 나오는거야!'라고 우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림자 자국은 아직 못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먼저 그 시대가 '현대'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우리나라'니까 친권박탈에 대한 조항이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200년 전에는 '인간(노비)'은 사고, 팔고, 자식들에게 상속해도 아무 문제없는 '재산'이었습니다.
좀 다른 말이지만, 세계적으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이후로 아직 100년도 지나지 않았죠. 또, 중국에서는 흉년이 들면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고사(?)가 전해 내려오지요?
다른 부분은 이미 煙雨님이 잘 설명해 주셨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모든 인간이 A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이건 당연한 것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B도 있고 C도 있고 D도 있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고, 그들의 생각도 제각각 일겁니다. 이영도씨도 잘 알고 있겠죠.
하지만, 그럼 이영도씨는 자신의 소설에서 모든 인간군상과 모든 사고방식을 총망라해서 표현해야 하느냐?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확연히 존재한다면, 그에 맞는 이야기 전개를 하는 건 작가로서 당연한 것이고, 또 표현의 자유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의 사고방식이 다르듯이, 이영도씨도 자신만의 사고방식이 있고, 표현방식이 있을겁니다. 또, 그런 표현이 거슬리는 분도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도 있겠죠.
라엘~님은 설마 'A'라는 자신의 주장을 이영도씨에게 강요해서, '이렇게 써야 맞는거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라엘~님의 글에서는 이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혹여나 다른 분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또, 굳이 제 의견을 말하자면, 한 소설을 논하는 와중에 다른 소설을 가져와서 비교하는 건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두 소설을 비교해서,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시는 건 아니겠죠?
결론적으로, 이영도씨의 소설에 대한 라엘~님의 생각을 밝히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는, 아무 문제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라엘~님의 생각을 이영도씨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옳다'는 듯이 보일 수 있는 표현을 쓰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글을 쓰면서 '저도 모르게' 이런 느낌이 묻어났는지, 제가 쓴 글에서 집중포화를 맞아본 경험이 있어서... ^^;)
등장인물문제를 집고 넘어가자면, 이영도님 글의 등장인물들은 나름 산전수전을 격고 어느정도 인성이랄까 하는것이 완성된 인물입니다. 신념이 굳센 사람들이죠. 그런사람들에게 과도한 양면성 같은것의 등장은 있을 수가 없죠. 그리고 인간들이 좀 정형화 되었다라...제가 볼때는 아주 개성적이던데요. 인간의 특성화라고 보기에는 좀 취향차이인것 같은데요. 그리고 종족이 다르면 사고방식도 다릅니다. 기존의 소설들이 이름만 다른 종족이고 행동은 똑같은 초딩인게 오히려 말이 안 됩니다.이영도님은 다른사고방식에서의 개인별 사고의 차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큰것만 보려하지말고 작은것에도 신경써 보세요.
이영도님의 글은 독자의 노력이 필요한 글입니다. 애초에 기존의 다른글들이 너무 쉽게 써지는 것들이 많아서 익숙해지기 힘들기는 하지만요.
성직자에 관한 이야기에서 만약 "드래곤 라자"에 대해 말씀 하신 거라면 저도 동의 하겠지만 "이영도 월드"에서의 성직자라면 전 아니라고 하고 싶군요. 혹시 폴라리스 랩소디라는 이영도씨의 소설을 읽어 보셨나요?
거기에 보면 파킨슨 신부님이 나오는데 계속 교회와의 갈등과 신앙에 대한 흔들림, 자기 성찰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성직자에대한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또한 그림자자국에 대한 말씀이 있었는데 이루릴과 아일페사스(음, 기억이 잘..)는 인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고 왕자가 예언자의 아들인 것을 아는 자들은 왕지네와 예언자, 왕비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읽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 군요. 그러니 그림자 자국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아, 이영도씨의 캐릭은 정말 다양하구나! 하고 느꼈었는데.. 음,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셨군요.
가끔 보면 성직자의 의무에서 일탈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인간일진데 번뇌하고 고뇌할 수밖에없겠죠. 그런 과정을 거쳐 신앙심이 더 커지는 것일 수도 있을거라 봅니다.
라엘님의 말은 그것을 지적하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점에 관해서는 드/라의 세계관이 신성을 발현할수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보지않고도 믿는자는 행복하다."
라고 성서에 있을정도로 증거란것은 아무데도 없는 우리 세상에선 종교외적으로 빠지기도 쉬울수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건 광신도라 합니다. 그들을 사제라고 하지 않죠. 사제라면 고뇌할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안에서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케릭터는 퇴마록의 박신부님이시죠.
라엘님의 말은 그런쪽으로 생각하면 왜 저렇게 말하셨는지 이해는 갑니다. 반대하시는 분들 생각도 이해하지만 라엘님에게 생각이 짧다라고 말하거나 경험부족이라고 하시는 분은 오히려 경험을 쌓으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끔 보면 성직자의 의무에서 일탈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인간일진데 번뇌하고 고뇌할 수밖에없겠죠. 그런 과정을 거쳐 신앙심이 더 커지는 것일 수도 있을거라 봅니다.
라엘님의 말은 그것을 지적하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점에 관해서는 드/라의 세계관이 신성을 발현할수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실중심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보지않고도 믿는자는 행복하다."
라고 성서에 있을정도로 증거란것은 아무데도 없는 우리 세상에선 종교외적으로 빠지기도 쉬울수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건 광신도라 합니다. 그들을 사제라고 하지 않죠. 사제라면 고뇌할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안에서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케릭터는 퇴마록의 박신부님이시죠.
라엘님의 말은 그런쪽으로 생각하면 왜 저렇게 말하셨는지 이해는 갑니다. 반대하시는 분들 생각도 이해하지만 라엘님에게 생각이 짧다라고 말하거나 경험부족이라고 하시는 분은 오히려 경험을 쌓으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 생각해볼때 일반인들이 보기엔 광신도라는분들은 종교적으로봤을땐 엄청 대단하신분들입니다..물론 무신론자들이 보기엔 허무맹랑한 신도없는데 뭘믿고 저렇게 맛이갔을까 하시겠지만요
소설속의 박신부는 현실성에서 아주 현실적으로 보기엔 부합합니다.
그러나 이영도님의 소설은 판타지소설입니다..판타지소설은 판타지적인게 옳다고 봅니다..아니면 판타지 말고 다른쪽으로 써서 표현하면돼겠지요.
물론 퇴마록또한 판타지이긴하지만 그 판타지라는 세계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는 작가의 마음입니다.
판타지를 판타지라고생각못하고 다큐멘터리로 보시는 시선이 옳바르지않습니다..
그리고 위에분들이 말한것처럼 세상 경험을 좀더 하셔야할듯합니다..아자씨님도
판타지는 판타지로보고 무협은 무협으로보고 대하소설은 대하소설로 보고 다큐 는 다큐로 보시는 시선을 배우시는것이 젤중요할듯하군요.물론 인생경험또한 조금더 필요하신듯합니다.^^
조금더 아는사람으로써 충고를 해주는것을 아니곱게 생각하시지말기바랍니다. 어떻게 당신이 나보다 더잘아?라고 하시면 글보다는 만나서 직접대화를 해보시면 왜 자신이 모자잔지 아닌지는 파악이될겁니다 물론 인정하지는 않겠지만요
줄여서 말하면 판타지소설을 판타지로 못보는듯한 시선이 경험부족이고
현실에서도 그렇게 신을 믿고 일반인들이보기엔 광적인 종교인들이 많습니다..종교적으로볼때는 그분들이 대단한 사람이라는것은 종교인들이 백이면백인정하구요.그런 종교인들을 못만나보고 보지를 못했으니 대인경험이 부족한것또한 맞구요.^^
나이들고 세상을 살아보다보면 서서히 알게될것입니다..지금이해할필요는 없습니다^^
글쓴분의 이야기는 현재 세상의 성직자를 생각하면 타당하지만, 드래곤라자에서의 세상은 현실과 다른 세상이라는점을 간과하신듯 합니다.
현실에선 신의 힘이 (객관적인 증거로) 실존하지 않으므로, 성직자들도 의심하고 스스로 고뇌하는게 당연하다 할수 있겠지만. 드/라의 세상에선 신성력이란 객관적인 사실로서 신의 존재와 능력이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는 물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듯이, 계속 해서 그 힘과 존재를 느낄수 밖에 없는 성직자가 자기가 모시는 신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성직자가 아니겠죠.
그리고, 테페리의 지팡이라던가 트롤 사제라던가.. 드라에 나오는 일행 성직자들은 당대 후기지수 중에(갑자기 무협 비유가;;) 손꼽히는 인재들 아니였던가요. 그런점도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듯 합니다.
동천지설님//
그림자 자국은 제가 읽지 않아 모르겟으나. 드,라를 대표적으로 이영도님의 글은 나와 타자 혹은 나와 사회에 관계에 대한 이야기,성찰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설에서 인물이 고뇌하지 않고 단순화 되어있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어딘가 일그러져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속의 이야기니까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이다. 맞는 말이죠. 그러나 자기가 써놓은걸 독자가 의심하거나 납득이 가지 않게 설정한다면 작가의 재량으로 해결이 안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이유로 라엘님이 이야기하신것은 언급할만한 소재가 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실의 옳고 그름은 사람에 따라서 받아드리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글쓴이의 글에대한 반대도 할 수있겠지만 스스로 받아들일수 없다고해도 인격적인 것을 건드릴 수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또한 똑같이 받아쳤으니 똥묻은개와 진배 없지만. 여튼 기분이 나쁘셨을지 모르니 일단 사과드리구요.
경험이야기는 그런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보고 그냥 넘기겠습니다.
리하이트님//
퇴마록에서도 보면 박신부 또한 신성력을 씁니다. 그러나 끝까지 이것이 신성력인지 아닌지 의심을 하죠. 자신이 바로 가고 있는것인지 이 힘을 쓰는것이 옳은 것인지에대한 고뇌를 합니다.
제가 이야기 하고싶었던 것은 이런 성찰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다는 것이구요. 글에 그렇게 적어 놧습니다. 리하이트님이 말씀하시는 점은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제가 글을 남들이 이해 못하게 마구잡이로 썼나보네요.
아자씨님 퇴마록이란 판타지세계에서의 신은 여러명입니다. 개신교 처럼 유일신이 아니지요..퇴마록에서는 하나님을 믿는사람도있고 안믿는사람도있는 현실에 기반어느정도두고 쓴소설이기에 현실성을 어느정도 반영한것입니다.
그러나 이영도님의 판타지에서는 모든신들의 존재가 명확합니다. 그차이가 큽니다. 이영도님의 소설에서는 믿는다는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신이 존재함을 안다 입니다.. 그리고 성직자는 그신의 대리인으로써 신의 의지를 현실에서 표출하는 위치의 존재이구요.
위에분들이 다설명해놓았기 때문에 또다시 설명해드리기가 귀찮군요..흠냐
판타지는 판타지로보고 설정은 설정으로 이해를하세요
이영도님판타지에서는 퇴마록에서의 박신부같은존재는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신은 확실하게 존재하고 그신의 대리인이 신을 의심을한다는 자체가 말도안돼는 설정이지요. 다만 신의 뜻에 부합하지못하고 자신의 능력이 떨어짐에대해 고뇌하는것은 개연성이 맞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모든독자들이 이해하게끔 쓰는것은 불가능입니다.
독자들도 독자나름이지요 초등학생도있고 대학생도있을거고
머리나쁜사람 좋은사람 생각없는사람 생각있는사람 종교를 믿는사람 안믿는사람 별별사람들이 다있는데 거기에 다부합되게쓴다는것은 현실에서 불가능입니다.
소설을 이해하는것은 독자의몫입니다.경험을 쌓으시고 더많이 읽으시고 공부하시면 됩니다.
퇴마록의 세계에선 여러 악마의 활약(?)이 빈번하게 나옵니다. 끊임없이 유혹하고, 또 유혹하죠. 반면에, '신의 역사 하심'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지요~
그래서 박신부는 고뇌하고, 끝까지 자신에게 의문을 품고 신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에선 거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완성의 단계에 들긴 하지만...)
하지만 D/R의 세계 속에서는 신성력은 사제의 기본소양이죠? 말하자면 모든 사제가 박신부인 세계라고 생각되네요. 이런 세계에선 혼자 고뇌하고 성찰할 필요가 없죠. 필요가 없다기 보다는... 그런 것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또 주위의 다른 사제들과도 서로 공감하고 논의할 수 있는 세계이니...
'신의 역사 하심'이 없는 세계에서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사제인 박신부와,
다치면 신전에 가는 D/R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제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애초에 비교할 필요와 방법이 잘 못 된 것 같네요.
퇴마록의 박신부가 고뇌하는 이유는, 퇴마록의 주된 이야기가 선과 악의 대립과 그 속에서의 개인의 성찰과 자기완성이기 때문입니다.(제 생각으로는.. ^^;)
그 이야기 속에서 박신부는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구도의 길을 가는 사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캐릭터이죠.
D/R은 퇴마록과 이야기 자체가 다르고, 주제의식 또한 다릅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사제의 역할은 퇴마록의 박신부와는 전혀 다르죠.
먼저 이야기의 주제와 전체 줄거리가 완성되고, 그에 맞는 캐릭터가 설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 소설이 아닌 한에는, 이야기의 주제에 맞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할 이유가 없지요.
'왜 고뇌하고 번민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면, '왜 그런 캐릭터가 나와야 하는가?'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네요.
동천지설님//
애초에 처음 제가 이야기할 때부터 현실에서의 이야기는 "라엘님의 이야기는 이런식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갈수있다."의 말이었고 그것이 무조건 맞다 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글 솜씨가 부족해서 계속 오해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라엘님의 의견이 누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듯이 가르치는듯한 태도로 지적할 정도로 잘못된 의견이 아니다 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것 입니다.
또한 신의 존재함을 증명함과 인간의 갈등은 별개라고 봅니다. 성서에도 유다란 인물이 있듯이 갈등과 고뇌는 인간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이에대한 생각은 서로 다른듯하니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라리님//
라엘님 본문을 보면 이런 문장이있습니다.
[정형화된 인간들. 실제 인간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들. 이영도 씨의 이상(?)이랄까 주제의식에 맞게 일그러진 듯... 그런 이상화된 세계....]
저도 그렇고 글쓴이도 그렇고 얼라리님이 언급하신 '왜 그런 캐릭터가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또한 왜 그런 케릭터가 나왔는지는 이해하지만 그것이 어색하고 일그러진 느낌이 난다는 것이 라엘님의 의견인것이고 저는 그걸 이런저런 면을 보면 그 주장이 이해가 간다 라는 말을했습니다.
정담에 썼다가 다시 이리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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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실존하는 세상에서 성직자가 신앙심이 깊은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양판소에서 나오는 타락한 신관이 전형적이고 이상하다"
당현한 말 같지만, 전 이러한 사고가 더 전형적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신이 실존하는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판타지에서 적어도 제가 이제껏 읽은 글중에서는 신의 존재에대해서 정의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심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신성력을 주기에 타락이나 신에 대한 불신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데, 신에 대한 믿음과 타락의 연관성은 무엇인가요? 흔히 상상하듯이 신은 전지 전능하고 절대선이어서 신심깊고 도덕적 성자같아야만 신은 신성력을 부여하는 건가요?
물론 그런 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의지를 절대 배반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를 설파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능력을 줄 수도 있겠죠. 헌데 그러면 그게 악마지 우리가 상상하는 절대선의 신인 겁니까? 절대선의 신이 아닐라고 할지라도 신의 의지를 따르는 것과 인간 세계의 도덕률을 지키는 것과 무슨 연관성이 잇는 겁니까? 충분히 세속적이고 권력욕 넘치고, 잔인한 성격을 지녔어도 그 신의 의지를 배반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신실한 신도 아닙니까? 그렇다면 인세의 타락과 신앙과는 무관하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러한 신의 의지와 인간의 도덕률 혹은 개인의 도덕률 및 가치관과 충돌한다면 충분히 고뇌하고 번민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러한 것조차 강제하는 신이라면, 왜 신은 굳이 어렵게 인간의 신도를 두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전능의 상징인 신이라는 존재가 천사와 같은 별도의 피조물을 만들어 신관을 대체하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인간 신관을 둔다는 것은 인간 속성의 인정과 필요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렵지 않게 그렇게 인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애초에 신관이란게 필요없는 직업일거란 생각도 들긴 합니다.
물론 현실이 신이 실존하지 않기는 하지만, 성경의 악마가 대표적으로 그러한 부류라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악마가 인간의 입장에서 악마이지 신의 입장에서도 악마인지는 정말 신만이 알겠죠.
그러니 소설에 나오는 신이 어떠한 능력과 특성을 지녔는지 정의 내리지 않았는데 신을 하나의 이미지로 전형화 시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네 자유로운시점에대해서 자기의 주관적인생각을 말하는것은 좋으나 강호정담에서 이런글을 올렸으면 자기생각이니 넘어가겠으나 비평란은 비평을 하기위해 만들어진만큼 어느정도 비평을 할만큼 공부가 되어진분들이 하시는게 옳다고봅니다.
올바른 비평문화를 만들어야한다고봅니다. 판타지에서 현실을 적용하는 시선을 이해못하는바는 아니나 판타지를 판타지를 보고 거기에서 개연성과 설정 필력등등 에 대해 비평을 하셔야 올바르다고생각이드네요.
물론 저도 드.자 소설을 읽을때 중학교때였던가? 그땐 제가 개신교를 다니던 입장이라서..솔직히 사제들의 행동이 당연하게 생각되더군요. 지금은 개신교를 나와 천주교를 다닙니다 성실한 신자도아니고 신에대해의심도 많이가구요
라엘님의 생각은 이해는합니다만 비평거리는 아닌듯합니다.
자유로운시점에대해 이해는합니다.사람마다 보는 시선들이 다르니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판자지소설에서 이영도님의 드.자 눈마새 등 몇작품을 뛰어넘는작품은 한국에 몇없다고생각합니다..그만큼 한국에서만큼은 아주높은수준이라고 저는생각합니다.설정또한 기가막히구요
눈마새읽어보면 전율이...............흠냐
요즘 비평란보면 참....문피아가 언제 이렇게 까지 다운그레이드돼었지?하는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저야 제자신이 비평할 그릇이 아직안돼어서 비평글을 작성해본적이없군요..ㅠㅠ
수준높은글이라 비평하면안된다가 아니라..비평할때는 제대로 비평을 해야한다고봅니다..
비평을 할려면 그만큼 공부를 하고 그만큼알고 어느정도의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분들이 해주셨으면한다는것이지요.
현재 문피아 비평란글을 보면... 예전에는 체계적으로 왜그런지 왜이렇게 느꼇는지 비교분석까지하면서 비평을 하셨는데..
요즘은..뭐라해야하나?...그냥 소설읽고 맘에안드는것 그부분만 피력한다는것이지요.
그리고 찬양과 비평은 확실히 틀립니다. 저는 찬양이아니라 비평을할려면 제대로 비평을해야한다고보는 입장인지라.. 비평답지않은 비평이 조금 거슬렸을뿐입니다.왜 이글이 비평로우에 와있는지 부터 곰곰히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이영도님 찬양!찬양! 이렇게 외치는분들만있겠습니까?.
참고로 저는 휘긴경님의 시민입니다 ㅡ.ㅡ..
어쨋든 제가 볼때는 이영도님의 드.자의 설정은 상당히 괜찮다고생각드네요.물론 아쉬운부분도 많습니다.. 처녀작이다보니 이해는갑니다.
글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지만 비평으로서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엇이 부족한가(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고정된 인물상들) 그 이유는 무엇인가(글중의 성직자라든가 타작품과 비교..)
비평인가 아닌가를 까다롭게 따진다면 이글보다 못한 글들이 태반입니다. 본인은 이영도씨의 팬이 아니라고 했지만 굳이 이글에다 대고 비평글로서의 요건이 안됐다고 공격하는건 이해가 안되네요.
그리고 비평로우로 온건 비평내용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던거 뿐입니다. 아무래도 이영도씨에 대해서 호의를 가지는 팬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네요.
제가 생각하는 바를 예를 들어서 써 보겠습니다.
어느날, 일본 애니 '마징가'를 본 어떤 분께서 비평글을 쓰셨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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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마징가를 처음 봤을 때는 대단히 재미있었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렸다. 등장인물들이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예를 들면, 과학자.
현실세계의 과학자들은 실험하다 실패도 하고, 특수 합금을 발명했지만 기업체에 빼았기기도 하고, 논문 쓰다가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한다. 나태해져서 연구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는 과학자도 많다.
(마징가의) 세계관 자체가 과학이 발전한 그런 세계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렇지 어쩜 그렇게 나오는 과학자마다 조금의 실패도 갈등도 없는 천재라서, 그리도 (엄청난) 로봇을 잘~~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중략
백보 양보해서, 그런 대단한 과학자가 있다고 치자. 근데 마징가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다 그런 타입이다.;;;;
마징가 시리즈 중 최근에 본 그레이트 마징가만 해도 역시 그런 문제가 있었다.
정형화된 인간들. 실제 인간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들. 나가이 고씨의 이상(?)이랄까 주제의식에 맞게 일그러진 듯... 그런 이상화된 세계....
후략
--- (이 비평문은 글쓴이가 쓰신 표현을 참고해서 썼습니다.)
위의 비평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틀린말은 아닙니다. 마징가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초합금도 만들고, 광자력도 개발하고, 무적의 로봇도 만들죠. 실패작도 없고, 로봇이 고장지도 않습니다. (이건 마징가를 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나긴 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생각합시다 ^^;)
현실적으로 저런 천재적 과학자들은 거의 없죠. 마징가에서는 천재적인 과학자들만 나온다니, 이상합니다.
(아자씨님의 댓글을 포함시키면, 저 마징가 비평을 쓰신분은, 왜 그런 과학자가 나와야 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어색하고 일그러진 느낌이 나서 비평글을 쓰셨네요.)
비평글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징가가 현실성이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과연 저 마징가 비평은 핵심을 제대로 짚은 비평일까요?
노파심에 혹여나 하고 사족을 달자면, 저는 비꼬거나 누구를 비난하거나 혹은 누구를 광신하고 찬양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게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점을 전달하기 위해서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제 생각은 위에서 두 번 댓글을 통해 썼는데,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서요.
그리고 사제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글쓴이께서 말하고자 한 바는 사제문제가 아니라 '이영도 세계관의 캐릭터들이 평면적이다, 전형적이다, 비현실적이다, 이상적이다...'가 아닌가 합니다.
다른 말들은 넘어가고, '이상적이다'는 표현은 그나마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 보다는 차라리 위쪽 댓글에서 나온 말 처럼 '전 캐릭터의 후치화' 쪽이 더 공감이 갑니다.('후치화'라는 말 자체도 눈마새는 커녕, 폴라리스만 읽어 봐도 그런말 하기 쉽지 않을것 같긴 하지만...)
즉, '이영도씨 소설속 캐릭터들은 비현실적이고, 전반적으로 나오는 인간들이 비슷비슷하다'라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모든 캐릭터가 후치스럽기'때문인 것 같네요.
물론 저는 '후치화'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후치스럽다'는 말 보다는 이영도씨의 소설속 주인공들이 조금씩 비슷하다, 혹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쪽이 더 맞는것 같습니다.
그럼 이영도씨 소설 속 주인공들의 유사성은 어떤 점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 잘하고(말장난도 잘하고), 유쾌하고, 똑똑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후치도, 율리아나 공주도, 케이건도, 기타 등등(^^;)도 저런 공통점이 있죠. 그럼 이런 주인공들을 한마디로 '후치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요?
후치스러우려면, 소설 속 어떤 상황에서 모든 캐릭터들은 후치처럼 말하고, 후치처럼 생각하고, 후치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 캐릭터의 후치화죠. 하지만, 위에 예를 든 인물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단지 각각의 캐릭터들은 제각각의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항상 유쾌하고, 말장난도 잘하고, 나름의 철학적 태도를 보입니다.
저런 유사한 속성 때문에 '비슷비슷하게' 보이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런 유사한 속성을 가진 인물들의 등장을 이영도씨의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영도씨의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게 이영도씨의 단점이라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발 이런 단점을 가진 작가분들께서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만...
드래곤 라자의 특징중 하나는 케릭터들이 서로 갈등하고 그것을 대화함으로서 이해하고 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후치는 그런 상황에서 시골 초장이에서 스스로 나아갈 바를 아는 현자와도 같이 발전하죠.
서로를 후치화란 말이 나온것은 작중 네리아 및 제체인트등의 동료들이 그 후치가 할 법한 대사를 읊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후반으로 가면 후치대사를 아무나에게 붙여줘도 어색하지 않죠. 물론 모두가 성장함으로서 가능한 일일 수도있죠.
피마새까지 이르면 이러한 것이 작가님의 특색이 됩니다. 극중 클라이막스를 향해가면 케릭터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외쳐댑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모습만 다른 스피커 여러개로 작가님이 하고싶은 말을 외치는 느낌이죠.
이 점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드래곤라자 마지막권에 있는 비평글에 언급이 되어 잇을겁니다. (오래전에 읽어 있는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드래곤 라자의 이런점을 작가의 이야기를 하기쉽게 해놓은 장치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위에 댓글 중에 연우님이 하신것과 같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지 않고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어느쪽도 틀리진 않은것이라 봅니다.
얼라리님이 잘 이야기 해주셨는데, 제가 말한 '가지치기'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라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불륜드라마에 왜 첫사랑 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느냐, 사랑이 불륜 같은 것만 있진 않을 텐데..너무 편협한 것이 아니냐' 하는 소리와 비슷하죠. 이런 식의 비판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성 자체가 이율배반적 성향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주제의식은 어떠하겠습니까.
어느 정도 아저씨님의 관점이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모두가 성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후치의 현자화는 일단 후치가 칼 (거의 현자와 같은 인물이죠)에게 물들어 싹수가 있던 것도 있지만, 그 '마법의 가을'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이죠. 후치가 이야기 초반부터 핸드레이크와 대담할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후치가 그렇게 되기 위해 12권이 소요됐습니다. 간단히 모든 사람의 후치화를 말한다면 그건 결말만을 언급한 적절치 못한 관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모험이 결말에 이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작가가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이영도씨 소설에서 인물들이 지나치게 개성적입니다. 모두 완연히 다릅니다. 공통점이 없습니다. 어느 한 쪽 사상으로 완벽히 성장한 인물입니다. (정우와 대장군의 차이로 예를 들 수 있겠지요) 현실에 이렇게 편협하게 발전한 인물은 드물죠. 그리고 모든 인물들이 각자에 맞는 배역이 필연적으로 있습니다. 요컨대 쓸모없는 캐릭터가 없습니다. 이영도씨의 방대한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한계의 끝까지 표출해내야 합니다.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호오는 이런 부분에서 갈린다고 봅니다. 모든 인물의 후치화라 단정 짓기는 좀 어렵습니다.
참고로 피마새에서 사람들이 행위로 표출하는 것은 '신'에 대한 거부입니다. 거기다 그 '신'이 사실은 '신'이 아닌 한낱 '용'의 변형태라는 언급 후에는 오히려 집단으로 그 '용'을 낮게 보는 경향까지 보이게 되죠. 대단히 시니컬한 부분입니다. 그 '집단적 현상'을 단순히 한 목소리로 여기는 것도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얼라리님이 잘 이야기 해주셨는데, 제가 말한 '가지치기'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라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불륜드라마에 왜 첫사랑 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느냐, 사랑이 불륜 같은 것만 있진 않을 텐데..너무 편협한 것이 아니냐' 하는 소리와 비슷하죠. 이런 식의 비판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성 자체가 이율배반적 성향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주제의식은 어떠하겠습니까.
어느 정도 아저씨님의 관점이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모두가 성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후치의 현자화는 일단 후치가 칼 (거의 현자와 같은 인물이죠)에게 물들어 싹수가 있던 것도 있지만, 그 '마법의 가을'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이죠. 후치가 이야기 초반부터 핸드레이크와 대담할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후치가 그렇게 되기 위해 12권이 소요됐습니다. 간단히 모든 사람의 후치화를 말한다면 그건 결말만을 언급한 적절치 못한 관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모험이 결말에 이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작가가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이영도씨 소설에서 인물들이 지나치게 개성적입니다. 모두 완연히 다릅니다. 공통점이 없습니다. 어느 한 쪽 사상으로 완벽히 성장한 인물입니다. (정우와 대장군의 차이로 예를 들 수 있겠지요) 현실에 이렇게 편협하게 발전한 인물은 드물죠. 그리고 모든 인물들이 각자에 맞는 배역이 필연적으로 있습니다. 요컨대 쓸모없는 캐릭터가 없습니다. 이영도씨의 방대한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한계의 끝까지 표출해내야 합니다.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죠. 호오는 이런 부분에서 갈린다고 봅니다. 모든 인물의 후치화라 단정 짓기는 좀 어렵습니다.
참고로 피마새에서 사람들이 행위로 표출하는 것은 '신'에 대한 거부입니다. 거기다 그 '신'이 사실은 '신'이 아닌 한낱 '용'의 변형태라는 언급 후에는 오히려 집단으로 그 '용'을 낮게 보는 경향까지 보이게 되죠. 대단히 시니컬한 부분입니다. 그 '집단적 현상'을 단순히 한 목소리로 여기는 것도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글 쓰신분이 지적한 점이 어느정도는 타당하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인물 군상이 평면적이라기보다 인물군상들이 작가의 목소리를 내다 보니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인물들이 같은 주장을 하지 않고 뭐랄까 한가지 사안에 대해 인물각각의 아이콘에 맞춰 주장을 하고 있지요. 토론의 참여자로 인한 공통성만을 보일뿐 각각의 개성은 갖추어져 있다고 봅니다. 이런점이 조금은 평면적이라고 할까 그외에는 글 쓰신분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직자의 개성이 평면적이다라는 부분은 정말 동의불가 하군요. 글쓰신분의 가치관에 따르면 인간의 불완전성과 타락을 진리인양 받아들이고 모든 인물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것이야말로 몰개성입니다.소설내 인물들이 모두 그런 인자를 가지는것이야 말로 평면적인 것이죠.
교리에 푹 빠진 성직자가 불만이라? 오늘도 몸에 폭탄설치하고 자살폭탄 테러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보면서 느끼는게 없나요? 하물며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들을 가르치고 대표하는게 "성직자"입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종교의 광기는 상식으로 설명할수 없답니다. 극단적 교리주의가 비현실적이라면 자살폭탄테러라는건 왜 존재하는겁니까?
또 황후 내쫒으려고 갓 태어난 딸도 직접 죽인 측천무후도 있는데 자기딸 인질로 잡는게 비현실적이라는건 웃기네요. 권력에는 부모자식이 없습니다. 권력을 위해서 딸이 인질로서 가치가 있다면 언제든지 인질로 삼고도 남을만한 것입니다. 이런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면 역사 공부가 부족한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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