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눈물을 마시는새
출판사 : 황금가지
판타지 소설계에서 이만한 유명인사도 없죠. 하지만 퓨쳐워커의 악몽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찬양에도 불구하고 이영도님의 소설에는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맘 잡고 재대로 읽어보자 해서 정독했지요.
뭐랄까……. 우와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대리만족을 위한 공장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르더군요.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가장 감탄한 부분은 역시나 세계관이겠죠. 동양환타지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알 것 같더군요.
그중 가장 뛰어난 부분은 아무래도 사대종족의 관한 치밀한 설정! 독특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정말 잘 그려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종족을 지닌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잘 그려내었죠.
특히 두개의 칼날을 지닌 검을 든 우리의 주인공의 대사중 ;모든 인간이 전부 말을 잘 타는 건 아니야; 하는 식의 작은 오해까지 세밀하게 짜 논듯 했습니다. 서로의 종족에 대해서 막연한 생각을 가진 주인공들이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요.
특히 심장도 안 빼신 여자 같은 뱀 주인공께서 알몸을 보이시기 부끄러워한다는 말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세계관은 뱀 종족입니다. 그 마을 속에서 일어나는 다수의 사건들은 주된 스토리만큼이나 자주 나오죠. 그것을 읽으면서, 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죠. 그리곤 사모께서 추격에 나서는 순간, "아! 다크엘프 트롤로지!" 하는 생각이 번쩍.
다크엘프 트롤로지의 드로우 엘프의 세계관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만큼 사악하고 어둡지는 않았지만 여성우월이라는 것이나 가문간의 세력다툼 같은 건 동일했죠. 그리고 다크엘프 트롤로지에서 도망간 주인공을 죽이려고 보내진 주인공의 아버지와 눈마새에서 도망간 뱀 주인공을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모의 모습은 어딘가 비스무리 했습니다. 이영도 작가님께서 모티브를 여기서 한 것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어째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종족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다시 처음부터 소설을 읽어야만 했던……. 불쌍한 저는 드래곤 라자의 친절한 설명을 너무 바랬나 봅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조금 설명조라도 어느 정도 설정에 대해서 말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처음 나오는 뱀 주인공과 뱀 주인공의 친구 분의 대화는 정말이지 이해 불능이었습니다…….
그렇게 초반에 있던 감탄의 감탄이 이어지다가 점점 지치게 되었습니다. 원인은 바로 제 끈기가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아마 퓨쳐워커의 악몽 때문이 아닌가 했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와 그 새의 형제들이 소설 속에 등장할 쯤에, '아, 영도작가님 또 시작이시군요.'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팍.
인과율과 완전성, 그리고 시간이라는 엄청난 철학적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쓴 이영도 작가님은 분명 대단하시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머릿속은 부셔집니다.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남는 게 없더군요. 이럴꺼면 차라리 건전한 철학책 나를 사서 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편이 확실하게 이해도 되고 기억에도 남겠지요.
흔히들 사람들은 개똥철학이라고 말합니다. 전 이영도님의 철학이 개똥 취급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소설을 빙자한 철학강의에 질리신 여러 독자 분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삶에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가치 없는 철학이라고. 맞습니다. 이영도님의 철학은 사실 삶에 적용할 가치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풀이 생각놀이로 알맞죠.
물론 제가 작가님의 철학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기에 그런 말을 한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전 유해의 폭포와 다섯 번째 종족이 의미하는 바는 완전성이라는 것과 그것에 대가에 대한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는 수준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그 철학을 숨기고 숨긴 장본인은 바로 작가 자신입니다. 부처나 공자처럼, 진리의 오묘함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반론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만약 그것이 독자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라면 굳이 이렇게 꼬고 꼬아야 했을까요?
각설하고, 제가 비판하는 점이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삶의 교훈을 가져다주는……. 쉽게 말해서 삶에 쓸모 있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삶의 교훈을 가져다주는 책들은 분명 진부하지만 소설의 목적이 그것에 있다는 점을 전 확신하는 터라 눈마새에 대해서 그리 좋은 평가를 줄 순 없었습니다.
왜 삶의 교훈을 주는가 마는가가 책의 목적이며 평가기준이냐 라고 하시는 분들은 아마 두 번째 이유로 재미를 꼽으실 겁니다. 저도 소설에서 재미가 차지하는 부분은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오로지 재미만 추구하는 소설이라도 충분히 소설로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눈마새가 재밌냐? 글쌔요가 대답입니다.
무협지가 내세우는 대리만족은 우선 절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뱀고기를 사랑하는 우리 식인 주인공을 보며 희열을 느끼시는 분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렇다면 독자가 눈마새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나, 서글픈 노랫말에 섞인 아름다움 등이 있겠죠.
눈마새에는 분명 그런 점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계관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에 심취할 수 있고, 인간 주인공의 식인습관의 비하인드 스토리에서는 찌릿한 감정들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사막을 넘나드는 통쾌한 모험과 서로의 유대감에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영도 작가님의 철학에 가려지기 일수입니다.
가려진다는 표현이 좀 맞지 않는군요. 다시 말하면 철학을 강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집니다. 차라리 철학에 관한 부분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여타 판타지 소설과 같이 쉽게 읽게 된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독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 하는 순간 재미는 커녕 그 그림자도 보기 힘듭니다. 굳이 제가 느꼈던 재미를 손꼽자면,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재미정도? 그럴꺼면 차라리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 낮겠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눈마새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점입니다. 소설 속에 담겨야 할 철학이 소설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아예 그 철학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속독으로 줄거리만 훑고 전쟁부분만 즐겼다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많은 분들은 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합니다. 살을 입히지 못할 정도로 너무 거대한 뼈대는 과감히 깎으시고, 그 위에 새살을 돋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이영도 작가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되시는 것 같은데 말이죠.
뭐도 없는 실력으로 비판이라고 써재낀 저는 그래도 이영도님의 "피를 마시는 새"까지 읽으려 합니다. 우리나라에 흔치않는 수작임에는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네요. 리플 많이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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