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재림사심
작품명 : ironside
출판사 : 없음
흥미롭습니다.
그저 댓글로 [감상나눔]을 받은 것이었는데, 받고보니, 제가 감상할 소설은 제 소설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소설이더군요. ironside 라는 책 제목에서 미리 짐작을 했어야 하는 걸까요.
‘세상 모든 것들이 공격할지라도, 서로 지켜주는 전우애.’
저는 여성이니만큼 남성들의 로망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지합니다만. 여자 입장에서도 저러한 환상은 꽤나 매력적입니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래서 외롭고, 또 힘들고,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허나,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이는 그런 괴로움을 겪지 않을 듯 합니다. 매번 위험한 전투에 파견되는 백병대의 대원이지만, 백병대는 대장부터 일개 졸개까지, 모두들 전우애에 충실한 사람들이니까요.
이 글은 현재 31화까지 연재가 되었습니다만. 소설 진행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오크에게 쫓기기 시작해서, 요새로 가기까지.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 때로 주인공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에, 저는 사실 로이가 주인공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도리어 로이와 함께 있는 소비코가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라, 소비코가 주인공인줄 알았지요.
본대로부터 떨어져서, 낙오된 두 사람. 로이와 소비코.
굉장한 긴장감, 혹은 광기같은 격렬한 감정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소비코라는 인물이 원체 느긋하고, 조금 코믹한 인물이라, 무거운 소설 분위기를 한결 밝게 해 주지요. 소설 초반부에 나오는 소비코와 오크와의 공방전은 꽤 유쾌했습니다. 치열한 전장보다는 나 잡아봐라, 에 가깝기는 했지만요.
허나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앞서 말했다시피 <소비코>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앞 부분을 잘 읽어보니 주인공은 정말 로이가 맞는 것 같은데. 모든 주인공이 존재감이 넘쳐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주인공과 다른 인물이 헷갈릴 정도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코가 나오다가 로이가 나왔을 때, ‘어라, 왜 소비코가 갑자기 이러지. 내용은 여기에 이어지는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차분히 읽으니 그게 소비코가 아니라 로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로이와 소비코.
둘은 물론 차이가 있는 캐릭터입니다. 소비코가 좀더 단순하고 활발하다면 로이는 더 과묵하고 신중하지만 욕을 잘한다 정도? 그렇지만 로이에게는 별로 개성은 없네요. 소설 속에서 분량이 적은 탓일까요. 아마 그건 소설 진행이 <전투>-<짧은대화>-<전투> 순으로 가서 그런 듯도 합니다. 전쟁 소설이니만큼 전투 장면이 많은 건 이해하지만,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고, 그 캐릭터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드러내는 장면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장장 32화로 이어지는 내용 중에, 대부분이 전쟁하는 장면이었고, 후반부로 가서는 약간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용이 늘어지는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싸움이라던가 전쟁이라던가, 그런 쪽 묘사에 극도로 취약한 저로서는, 생동감 있게 서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들더군요. 칼 한 번 휘두르고 얍얍 넌 죽었어 끝이야, 가 아니라 실제 싸움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적당한 긴장감 조성과,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소비코의 재치. 허나 눈에 들어올만큼 어색한 대화가 보였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대화를 쓸 때, 강조하는 의미로 “뭐.라.고.”라고 쓰면 강조가 되는 게 아니라 손발이 오골거립니다. ‘대화 자체’로, 이 사람이 화났다, 라는 언질을 주실게 아니라 서술로 표현을 하시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못난 예문입니다만.
*
로이의 저 눈빛 좀 보게. 꽉 쥔 주먹도 보라지. 어쩐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 이야기를 하는 듯 싶었다.
“뭐라고.”
소비코가 중얼거렸다.
“자식, 되게 폼잡고 말하네.”
“뭐라고 그러는거냐.”
목소리를 듣자하니, 더 이상 뭐라고 궁시렁 거리면 곤란할 것 같고. 소비코는 루이의 손을 슬쩍 보다가, 웃음으로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
이따금 보면 소설 속 예문에 하트나, 위와 같은(뭐.냐.) 표현을 쓰시는 분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은 서술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글 솜씨는 있으신 분 같습니다만, 가끔 지나치게 서술에 멋을 부리는 경우가 보이네요.
예를 들면 ‘머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곧 눈 앞에서는 형상화 되었다’ 와 같은 문장입니다. 꼭 머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형상화’되어야 했을까요? 형상화라는 단어는 선뜻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아닙니다. 물론 저 단어를 모르는 독자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쉽게 머리에 들어오는 단어는 아니라는 거지요. 차라리 떠오른다던가, 보였다던가, 하는 단어를 쓰는 것이 독자의 눈에 더 잘 들어오고 쉽게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잘 저지르는 실수입니다만. 소설에서 단어를 선택하는 기준은 이 단어가 멋져보인다던가 이걸 쓰면 작가가 어휘력이 좋아보일 것 같다거나가 아닙니다. ‘독자’가 읽었을 때 눈 앞에서 생생하게 떠오를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단어로 글을 쓰는 것이죠.
검을 뽑았다는 게 검을 발검했다는 것보다 멋이 없는 문장이 아니니까요.
저도 잘 저지르는 실수 두 번째. “하기 때문에”, “함에 있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쓰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자주 쓰면 문장이 상당히 딱딱해 집니다. 소설이 아니라 연설문 같은 글이 된달까요. 그런데 또 이 말들이 무슨 잡초마냥 글을 쓰면 쓸 수록 자꾸 달라 붙습니다. 힘들죠. 이 녀석 떼어내기. 그렇지만 신경을 조금 더 써 주면 한결 부드러운 문장을 쓰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쓰는 문장도 딱딱하네요. 흑흑.
재림사심님의 글을 읽다보면 수동태가 종종 보입니다. 네. 저도 그럽니다. 수동태도 잡초니까요. 안 쓰려고 하는데도 자꾸 달라붙는 귀찮은 잡초 말예요. 스티븐 킹이 쓴 작법서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미국은 ‘수동태’가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과는 다르죠. 그런데도 글을 쓸 때는 ‘수동태’를 최대한 피하라고 합니다. 있는 나라에서도 피해야할 글 스타일로 지적하는데, ‘아예 문법에 없는’ 한국에서 요 수동태를 쓰는 건 더 조심해야죠. 제가 생각하는 수동태를 피해야 하는 근거는, 앞서 했던 말과 같습니다.
내가 문을 엽니다.
문이 열어졌어요.
어느 쪽이 의미가 확 와닿나요?
아름다운 묘사는 좋습니다. 장대하게 서술하는 것도 능력이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모든 글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글’ 입니다. 전달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지요.
서로에게 도움이 쓰고자 쓰는 글이니만큼 이 것 저 것 지적이 많았습니다만. 재림사심님의 ironside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미리니름이라 말씀은 안드리지만, 마음이 찡하기도 했고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그리고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지치셨다면.
재림사신님의 ironside를 읽어 보십시오.
사랑이야기, 미소녀 들에게 둘러싸여 사랑받는 이야기와는 다른,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3월 하고도 18일.
흰새가 재림사심님의 창가에
모자란 글을 두고 날아갑니다.
-건필하시길.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함께하는 감상나눔 이벤트란?
흰새가 시작한, 초보 글쟁이끼리 서로 실력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입니다. 참가 자격은 연재글 10회 이상,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 자기에게 들어온 이야기를 포용력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흰새에게 쪽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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