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몇편의 게시물을 통해 무협 및 판타지에 대한 비평을 올리곤 했다. 스스로의 불성실함과 다른 일들로 인해 문학 비평처럼 전문성을 띤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문학계에서 통요되는 식의 비평을 하고자 한,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2. 그러나 이 작업은 바로 자가당착의 함정에 빠졌다. 과연 이것을 문학적 위치에 놓고 읽을 수 있는가. 이것은 현재 읽히고 있는 대부분의 무협/판타지 소설을 장르물로 볼 것인가 장르문학이라고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연결됐다. 내 스스로는 '장르문학이라는 전제 하에 무협/판타지 소설을 비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야한다라는 것은 당위성을 띤 술어. 이 문장을 풀이하면 현재 무협/판타지 소설은 문학이 아니므로 문학의 위치로 끌어올려야 된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3. 이러한 전제는 동일한 생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착각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은 무협/판타지 소설을 문학의 위치에 올려놓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이것이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문학이 아니라도 그것은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독자는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문학을 문학이게끔 하는 특성은 누군가 말한 바와 같이 세계와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와 비슷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실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되는 배경을 무대삼아 작가의 세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이 같이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다. 비록 참여문학 쪽에 조금은 가까울지 몰라도.
5. 그렇다면 무협/판타지 소설이 문학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결국 초인(超人)의 문제와 연결된다. 무협/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하는 초인은 니체적 의미에서 초인이 아닌 그냥 물리적 힘이 강한 이를 지칭한다. (정신적 의미에서 초인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작가(인간)는 스스로의 수준을 뛰어넘는 사고를 하는 존재를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인이 주체로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차별화되고 초월적인 힘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은 문학적 문법에서 굉장히 동떨어진다.
6. 이것은 읽는 이를 위해 굉장히 단순화시킨 도식이다. 만약 주인공(=초인)이 가진 힘이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에서 차별화되지 않고 초월적이지 않은 단순한 부가조건에 불과한 상태이고(즉 그것이 주체가 아니고), 우리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그려내고 있다면 이것은 문학의 수준에 근접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에게 비현실적인 힘과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 이후의 과정을 어떻게 서술해가고 결과는 어떤지에 따라 문학에 가까운가, 한 여름밤의 꿈에 가까운가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밖에 같은 견지에서 다른 가능한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좀 더 관심있으면 테리 이글턴의 문예 이론이나, 아니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7. 현재의 무협/판타지 소설들은 장르문학, 환상문학이라고 불릴 수는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주체로서 초인이 하나의 지배적 경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들도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로크미디어에서 나온 '꿈을 걷다, 경계문학 단편선'의 글들이나 아주 극소수의 작가들이 풀어내는 소설들은 분명 문학의 자리에 오롯이 서 있음을 주장해도 무방하다. 여기서 잠깐 조그만 논쟁을 불러일으킨 '아로스 건국사'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다. 정상수가 지닌 미덕은 영지물이라고 불리는 철저히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서 주인공(초인)의 역할을 축소화시키고 봉건제, 관료제라는 새로운 주체를 등장시켰다는 것에 있다. 다만 그것에서 조그만 부조리를 느꼈을 뿐이고, 그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8. 장르물과 장르문학의 간극에는 초인이라고 불리는 풀기 어려운 난제가 있다. 만약 작가들이 문학의 자리에서 존경받고 싶다면 초인의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장르의 법칙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며 장르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있으니까. 우리들이 대가라고 말하는 몇몇 작가들이 바로 그렇다. 정상수도 그것을 시도하는 것 같고.
9. 그런데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르문학이 되길 원하지 않는 이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장르가 문학의 위치에 놓여야 한다는 법은 전혀 없다. 장르물이 장르문학이라 불리지 않더라도 그보다 수천배는 많은 다른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읽으면 될 뿐이다. 설득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10. 다만 대부분의 무협/판타지 소설들을 일컬어 장르문학이니, 환상문학이니 하는 말은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그것은 문학을 문학이게끔 노력하는 이들과 문학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 대한 모독이고, 노력을 폄하하는 처사다. 혹시나 해서 추가하는데 장르적 도구를 쓴다고 해서 장르'문학'이라 정의하는 망나니같은 답변이 없었으면 좋겠다. 로크미디어가 왜 장르문학, 환상문학같이 잘 알려진 범주를 쓰지 않고 '경계문학'이라는 생소한 말을 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문학으로 자처하는 장르물과 같은 선상에 놓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이라고 자랑스레 붙여놓을 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크미디어의 '꿈을 걷다'의 탄생 이전에 어느 누가 자랑스레 '문학'이라 말할 수 있었을까. 쪽이나 당하지나 않을까 무서워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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