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작성자
Lv.8 삭월(朔月)
작성
09.03.24 13:13
조회
1,162

작가명 : 흰새

작품명 : 카르다미네 : 메이드 일기

출판사 : 없음. 문피아 정규연재란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이는 안구사(雁丘詞)의 한 구절로 무협소설을 아는 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명대사다. 물론 저 위에서 정(情)이란, 곧 사랑. 남녀사이의 정을 말하는 것이나 여기선 정을 좀 더 확대해보자. 어버이와 자식 간의 정, 형제자매 사이의 정, 친구 사이의 정 등등. 정은 안 보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다방면으로 뻗었다. 정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랑이며 우정이고 관심을 뜻하며, 더 단순하게 이해하자면 ‘나’와 ‘너’의 긍정적인 연결고리다.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명 속 온갖 구속에서 발길을 끊은 자유인이 아닌 이상, 우리들은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지내는 것이다. 항상 좋은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나쁜 관계만 맺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 살아간다.

허나 본문의 주인공 리스 엘리제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어온 터라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 왜 그러지? 왜 내게 잘해주지? 꿈과 로망에 혹해야할 나이에 지나치게 현실에 적응해버린 탓일까. 이미 그녀의 눈은 잿빛이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밝혔듯 이것은 메이드의 일기다. 실제로 일기 형식은 아니지만, 그처럼 그녀가 품었던 생각이나 시선들을 우리들은 그대로 따라간다.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리스의 서술방식은 무척이나 딱딱하다. 겉으론 존대를 해주고 꼬박꼬박 님 자를 붙이는 둥, 제 본분에 맞게 살아가는 메이드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느낀 것은 거리감이었다. 존대란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예이며 나를 낮추는 표현이긴 하지만, 리스는 조금 지나친 면이 있다. 초반부분만 친구 먹었던 피엔을 제외하면 편하게 대했던 상대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리스는 그렇게 스스로 벽을 만들었다.-개인적으로 이렇게 정중한 주인공은 엔디미온 키리안 이후 처음이었다.-

허나 인연이란, 사람 사이의 정이란 게 그저 부정하고 벽을 친다고 끊어지던가? 로빈슨 크루소도 아니고 사회 속, 그것도 온갖 선연과 악연, 암투가 난무하는 황실에서 고립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남들이 신데렐라 로맨스를 꿈꿀 때 가늘고 길게 산다는 현실적인 꿈을 꿨던 리스도 친구를 사귀고, 기라울에게 기대기도 하며, 황제의 총애까지 사고-이걸 총애라고 해야 할지... 참- 암투에 휘말려 죽은 제이다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도 한다. 오로지 참고 막으려고만 했던 리스에게 다양한 감정들, 아니 그보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끈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고립시키고 쇄국정책(?)을 펼치던 리스에게 서서히 변화가 왔다. 본래 같은 메이드 모임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털어놓을 친구도 없던 그녀에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소꿉친구가 등장했고 기라울과 친분도 점차 깊어져가는 듯하다.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부정을 그가 대신 채워주려는지, 상급자와 하위 메이드보다는 엄격한 할아버지와 야물지 못한 손녀를 보고 있는 것 같다면 본인의 착각일는지‥‥‥.

아직 소설은 끝이 나지 않았다. 이제 삼 장일뿐이며 그녀의 이야기도 더 이어나갈 것이다. 가슴이 비어버린 소녀가 어떻게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하여 사람다워지는지 지켜볼만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지적하자면 소설시점이 조금 문제가 있다. 메이드 일기는 일인칭인데 이것은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을 그리기엔 아주 적절한 편이다. 허나 일인칭 소설이 가지는 치명적인 함정이 바로 지나친 내면묘사에 있다. 너무 주인공 심리만 비추다보니 주변 상황이나 배경에 소홀해지기 때문에 장면이 바뀔 경우 독자의 입장에선 당혹스럽다. 섬세하고 여성적인 문체엔 감탄이 나오지만, 내외 분배를 잘한다면 정말 걸출한 작품 하나가 탄생할 것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에 이를 적는다.

전투도 없다. 모험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본다.

상처 많은 풍랑 끝에 마음이 비어버린 소녀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시다.


Comment ' 1

  • 작성자
    Lv.1 봄비내리다
    작성일
    09.03.26 13:27
    No. 1

    과분한 감상 잘 받아보았습니다 :)
    역시 1인칭이고 또 리스가 주변에 관심이 없어서 ( -) 내용을 파악하기 있는 점이 있었네요. 이 점 참고해서 열심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수록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역시 좀 신경을 써야 겠네요.
    삭월님께서도 건필하시고,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번 감상나눔 이벤트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흰새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평란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찬/반
1488 판타지 말단병사에서 군주까지 Lv.29 ga****** 19.01.24 886 13 / 5
1487 판타지 뼈때리는 비평 부탁드립니다. +2 Lv.11 독수리타자 18.11.23 506 0 / 0
1486 판타지 검사님, 정의구현 가신다 비평글 부탁드립니다. +6 Lv.86 13월생 18.10.01 962 1 / 5
1485 판타지 [만능만물상] 판타지/게임/퓨전 비평요청드립니다. Lv.18 로아스 18.09.20 620 0 / 0
1484 판타지 그림 그리는 마법사 +1 Lv.78 백발도사 18.08.31 987 5 / 5
1483 판타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아 정말 최악이군요.. 도저... +3 Lv.48 메덩메덩 18.07.27 1,718 19 / 3
1482 판타지 이 작품 조금 비슷한 부분이 많은듯 +1 Lv.99 나태한교주 18.07.08 849 4 / 0
1481 판타지 [칭호를 파는 사냥꾼] 비평 요청드립니다 (90도 인사) Lv.15 스티븐젠장 18.07.03 471 3 / 0
1480 판타지 판타지 SF [가을의 언덕] 비평 부탁드립니다. +1 Lv.26 설화S 18.06.14 577 0 / 0
1479 판타지 최고의 헌터 비평 +8 Lv.60 Arkadas 18.05.26 1,236 7 / 4
1478 판타지 [미르가 만든 세계] 비평 요청드립니다. +3 Lv.15 스티븐젠장 18.05.19 700 2 / 0
1477 판타지 영어쌤말고 벼락부자 정중히 비평요청 드립니다. Lv.28 기다려복근 18.03.06 851 0 / 0
1476 판타지 [막노동 계약자] 비평 부탁드립니다 Lv.10 얼방 18.02.06 764 1 / 0
1475 판타지 'SSS급? 거절한다!' 비평 요청드립니다. Lv.42 IdeA™ 17.12.29 866 1 / 3
1474 판타지 간택당한 마법사 비평요청드려요! +2 Lv.80 칼튼90 17.12.29 770 0 / 1
1473 판타지 자의 작가님의 오버크라운 비평 Lv.87 견리 17.12.19 843 17 / 1
1472 판타지 '케미' 소재는 좋은데 전공자가 보기에 불편한 소설 +25 Lv.52 어킁 17.11.15 1,372 27 / 10
1471 판타지 뮐 필레츠의 교도소 비평 +1 Lv.60 Arkadas 17.11.13 604 4 / 0
1470 판타지 아직 모자란 점이 많은 초보 작가입니다. 비평을 ... +7 Lv.10 씁쓸한설탕 17.10.31 896 2 / 1
1469 판타지 모루선인님께, 부족한 비평 +2 Lv.56 은생원 17.10.01 881 12 / 2
1468 판타지 매우 주관적인 비평-나를 위해 살겠다 +1 Lv.19 런드리 17.09.10 739 4 / 0
1467 판타지 대마신 아즈타스 비평 부탁드립니다. +4 Lv.10 레마인 17.08.20 625 0 / 1
1466 판타지 판타지 초보 글 비평 부탁드립니다. +21 Lv.12 녹차. 17.08.18 1,212 2 / 1
1465 판타지 초보작한테 조언좀부탁드려요ㅠㅠ +4 Lv.13 윤하느님 17.08.14 853 1 / 2
1464 판타지 첫화만 조회수가 높은 소설 비평 부탁드립니다. +2 Lv.22 히스토리 17.08.13 795 0 / 0
1463 판타지 안녕하세요 더욱 발전하고자 비평좀 해주세요^&^판... +3 Lv.30 손연성 17.08.08 631 0 / 0
1462 판타지 카사노바이야기 비평 요청합니다. +5 Lv.64 나모라 17.07.26 544 0 / 0
1461 판타지 평론 마무리 - 조선에서 귀환했다. +1 Lv.15 사평 17.07.09 831 12 / 1
1460 판타지 초보자가 없는 초보자로 탑 클리어. +4 Lv.15 사평 17.07.03 1,013 9 / 2
1459 판타지 빠르다 LTE 처럼 - 조선 귀변사 Lv.15 사평 17.07.01 671 5 / 2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