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제가 예전에 (라니안/ 라다가스트 이 시절?) 이 부분으로 비평을 남긴적이 있는데 엄청나게 까였습니다-_-;;;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음.. 문피아가 특이한 것인지 독자들이 더 냉정해 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없네요;
저는 퀴트린이 아아젠에게 당신의 카발리에로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엄청나게 감동먹었던 사람입니다만.
그것과는 다르게 연결고리가 참 미흡하다고 여겨졌었죠.
문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면에서 상당한 수작임은 분명하지만..
역시 군데군데 허점이 보이는 건 어쩔수 없나봅니다.
그럼에도 굉장히 좋은 책이지요.
네팔은 반례를 잘못 선택했다고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명목적 입헌군주제 하에 국민들이 고통받다가 10년 전쟁(내전) 후 최근 공화국(왕정 폐지)으로 바뀐다지요... 개인의 일은 몰라도 다수가 관련된 일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기 마련이죠...
저 같은 경우 카발리에로 선언이 상당히 거슬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소설인 걸 새삼 확인하니... 이걸 대수롭지 않게 넘겨 줄 뭔가 제가 모르는 가치가 있었던가 봅니다.
그리고 위의 비평글 마무리를 짓지 못했는데 퀴트린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누구와 싸워야 할까요? 제가 그 후는 안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최악의 설정으로 퀴트린 아버지가 전쟁의 총사령관이고 라벨이 돌격대장 정도로 나온다면... 라벨과의 전투에서 실수로 라벨의 심장을 찌른다.(친동생 같은 라벨...) 혹은 아버지와 칼을 겨룬다... 이런 일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데 아아젠은 아무리 나름대로 이유가 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끔직한 걸 바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사랑하는 이를 배려하는 현명한 아아젠이 전쟁 참여를 결사반대하고 같이 숨어버리자고 하나 이놈의 운명이라는 놈이 여차여차 심술을 부리는 진행은 어떨까 하네요...
저도 이해가 안 가는 면이었습니다.
역사서에 남을 정도의 위대한 기사가 되고 싶어서 내키지 않음에도 왕녀의 카발리에로가 되려 했던 퀴트린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상대일 뿐이던 아아젠을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카발리에로 의식을 치루다니요. 그 후에 이나바뉴에선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부정당하고 있는데 또 아아젠을 위해 로젠다로에서 기사가 되는 부분도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희생을 해서 얻을 만큼 큰 사랑이었나 자꾸 의문이 생기고요.
그래도 그렇기때문에 상대의 옆에 있기 위해 모든 걸 다 감수하는 퀴트린과 아아젠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확실히 카발리에로 선언 장면 갑작스러운 면이 있지만
극초반(피엔젤에게 사랑을 못느낌- 아칼로르로부터 무기한 휴가받음-평민들의 사회를 접함- 아아젠큐트 만남)부터 충분히 복선이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즈파샤의 '계급 차별 폐지'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 층에서 오히려 기득권을 포기하다니?! ..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자 혁명이라 생각합니다. 전 읽으면서 이부분만큼은 충분히 이해했고 라즈파샤란 인물에 대해 감동했었습니다만..
평민이나 현대의 가치관을 교육받은 이계인만이 가능하다니.. 언제나 '변화'는 한 명의 인물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 인물의 배경이 크든 작든..
예로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유명한 석가모니의 얘기가 있습니다.
왕족인 석가모니는 사람은 누구나 잘먹고 잘살고 풍족한 생활을 하는줄 알고있었는데 처음 바깥세상에 나와 평민들의 사회와 노인(삶과 죽음)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게됩니다. 어째서 인간은 살고 죽으며 계급이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석가모니가 계급폐지를 선동한것도 아니지만,, 고위계급층도 충분히 '계급사회의 부조리함' 느낄수 있다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읽으시다가 포기하셨다고 했는데.. 2부의 존재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부로부터 70~80년정도 흐른 뒤의 얘기인데.. 1부를 능가하는 대작이라 생각합니다.
2부 제목은 하얀 로냐프 강- 이백 년의 약속. 1부와 마찬가지로 5권 완결입니다. 1부에서는 이름만 등장하는 이나바뉴 식민지 루우젤의 독립전쟁 이야기입니다.
2부도 한번 보시는게 어떠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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