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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inetailor
작성
09.09.25 18:40
조회
1,747

작가명 : 이가빈

작품명 : 브라운베스

출판사 : 없음(작연란 연재)

1. 시작하며

생각한 것은 이미 다른 누군가가 생각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만큼 독창적인 것은 우리가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소설가 존 바스 씨는 옛날에도 이러한 고민은 있었다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지금껏 아직 알려지지 않은 구절, 아직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으며 반복된 적도 없는 낯선 말, 선조가 이미 사용하여 아직 진부해지지 않은 말을 구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이 파피루스에 적혀 있다더군요.

어쨌건 이렇게도 구하기 어려운 독창성을 얻고자 가시밭길을 걸을 생각이 아니라면, 선택할 길은 기존의 것을 얼마나 고치고, 세련되게 결합하느냐 하는 길일 겁니다.

사실 시드 노벨의 '정의소녀환상'은 분명히 국내 라노베와 판타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를 하였지만, 마법소녀라는 기존의 클리셰에 의지해야 했고, 낯설음을 강조하기 위해 표명한 '메타픽션'이란 단어로 말미암아 수많은 비웃음을 사야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도의 가장 중심이 된 그 결말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반응이 많았지요.

브라운베스는 이러한 독창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전자의 길을 버리고 후자의 길을 택해 기존의 것 중 크게 3가지를 결합하려고 시도합니다.

리즈와 에드 간의 관계로 대표되는 연애. 대불 동맹과 프랑스 간의 전쟁을 다루는 허구의 역사. 그리고 최근 한국에 빠르게 퍼진 이능력배틀.

그리고 글쓴이는 이 세 가지 중 독자에게 가장 낯선 소재가 될 나폴레옹 시대를 스팀펑크라는 요소를 넣어서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한 번 더 재단합니다.

2. 다양한 능력을 갖춘 초인들 간의 활극.

현자의 능력을 갖춘 리즈, 빙의하는 영혼, 영매, 불가사의한 마술사.

다리 하나를 날려먹는 전투장면으로 시작하는 브라운베스는, 1권 말미까지 진행이 빠른 박자로 이어집니다. 적과의 조우-전투-추적-적과의 조우-전투-추적으로 이어지는 상당히 단순한 구조지만, 그렇기에 쓸데없는 잔가지가 없고 읽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정보량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글의 전반적인 내용을 매우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요새 판타지 소설을 보면, 무슨 기의 흐름이니, 마나를 구성하는 방법이니 하면서 무의미한 고유명사를 남발하고 쓸데없이 많은 분량을 투자하면서 흐름을 끊어먹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런 점에서 브라운베스는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매우 담백하게 나아갑니다.

3. 매력적인 배경

사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한 것은 우리도 흔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 시기의 유럽에 대하여 아는 것은 매우 파편적입니다. 더구나 아무래도 '역사'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옵니다. 자칫, 판타지 내의 가상적인 세상보다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배경이지만, 스팀펑크라는 요소로 변용하여 젠틀맨 리그의 그것처럼 부담감을 줄이고 소설 내에서 익숙하게 제시해 나갑니다. 그렇다고 나폴레옹 치세의 유럽 묘사가 허술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 부분에서는 다소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머스킷 발사 묘사를 보고, 그저 머스킷을 등장시키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쓴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메리카-유럽간의 알력이라거나 아우스터리츠 이전의 정세를 전체적으로 별 무리가 없이 녹여내고 있습니다.

4. 원동력이 되지 못한 리즈-에드간의 관계

하지만 3개의 다리로 지지가 되어야 할 브라운베스는 다리길이 하나가 맞지 않는 까닭에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둘의 관계 자체는 글의 초반부부터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서로에게 매우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고, 언제라도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아니, 사실 연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어색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에드가 리즈에 가지는 감정적인 기반은 연민과 동정입니다. '한참, 사춘기에 빠진 소녀요. 감수성이 아주 민감한, 황금 같은 심장이 뛰는 애'가 나날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처지에 대한 안쓰러움이지요. 그런데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리즈와 소통하는 존재인 걸로 비추어진 에드는 뒷부분에 등장하는 사라와의 대화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을 느끼며, 사실은 전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임이 드러납니다.

거기에 리즈가 에드에 가지는 감정은 그녀의 신데델라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이성, '지저분한 하층민이 아닌, 상류층 출신의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신사. ' . 그뿐입니다. 만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둘은 실제로 서로 거의 모르는 사이지만, 작중에서의 감정의 소통과 표현은 지나치게 깊고, 격렬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단순하게 한눈에 반했다고 설정하는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알기도 쉽고 복잡하지도 않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마술사'의 존재입니다. 1권 분량의 후반부에는, 적으로서의 마술사가 아닌, 리즈와 교감하는것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남성인 '마술사'가 등장합니다. '마술사'는 에드와 달리 리즈와 같은 초인이며 그녀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녀처럼 자유가 박탈된 삶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마술사'는 굳이 낭만적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할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도 되냐고 리즈에게 요청한 그 순간, '마술사'의 위치는 작중에서 에드를 대신할만한 인물이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비약은 있을지언정, 그만큼 현재 에드-리즈 간의 관계가 비약이 더욱 심하기에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리해서 소설의 추진력이 되어야 할 리즈-에드 간의 관계는 더이상 매력적이지도 않고, 빛을 잃어버린 채 그저 작가가 억지로 서사를 밀어붙임으로써 어색함만이 드러나게 됩니다.

5.

브라운베스는 그래도 제법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실 일일 베스트에 올라온 글과 비교해도 나쁜 수준은 아니며, 오히려 일부 작품보다는 더 나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회 수의 허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각각의 재료를 정성 들여 손질하고 요리를 하였지만, 끌어낼 수 있는 맛을 모두 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글쓴이 자신의 기획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겠고,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이 아닌, 글쓴이 스스로 상정한 불명확한 '독자'와 타협한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의 것은 아직 수정 전의 글이라고 하니, 향후의 재연재는 더 기대할 수 있을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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