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가을Bee
작품명 : The D
출판사 : 문피아 정연란.
전에 올렸지만 제목이 너무 홍보하는 것 같아서 지우고 다시 올립니다.
전체적으로 비평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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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방. 처연한 달빛의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심해의 어둠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암흑의 방이 있다. 고급호텔의 방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그 방은 자신의 자태를 뽐낼 수 있는 한줄기의 빛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방의 입구에서 바로 옆에 위치한 침대는 다른 가구와 마찬가지로 고급스럽기 짝이 없었다. 네 개의 코너로 승천하는 드래곤의 형상을 조각한 침대기둥이 검투명한 실크로 장식되어있었다. 침대를 덮는 커버나 이불 또한 최상의 천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흡사 제국의 왕자가 타고 다니는 왕실마차 같았다.
그러한 침대위에 사련이 비스듬히 걸터 앉아있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기에는 상당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을 설쳤는지, 아니면 아예 날을 새었는지,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나 잠옷을 입은 것을 보면 분명 잠을 자려고 하기는 했나보다.
그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도 그의 몸은 지금 잠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침대에 몸을 뉘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모두 다 빠진 듯이 넓은 어깨는 축 쳐졌고, 고개는 떨어뜨리어져 있었다.
충혈 된 눈 안에 있는 눈동자는 마치 썩어버린 생선눈동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언뜻 보면 회색 같을 정도로 연한 검정색의 눈동자는 이십대의 청년에게 흔히 보이는 또랑또랑한 생기는커녕 인생의 허무함을 깨우친 노인의 공허가 담겨있었다.
짙은 눈썹과 뽀얀 피부, 거만해 보이기 쉬운 반달형의 눈매, 살짝 치솟은 눈초리, 다부진 입술 그리고 날카로운 턱을 가진 그는 미적으로 아름답다기보다는 천성적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을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은듯한 눈동자가 그 모든 것을 가리고 있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다면 모를까, 저런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면 평생을 가도 존재감을 들어내기가 힘들어보였다. 조용히 있다면 누구든지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요, 말을 섞는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는 손을 들어 아무렇게나 비산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뭐지, 이놈들은?”
새벽에 잠긴 둔탁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침대에서 가장 가까운 창가까지 갔다. 창가 앞에 있는 난로에 걸터앉은 그는 햇빛조차 완전히 차단시키는 두꺼운 커튼을 열어 재꼈다.
완전한 어둠속에 익숙해진 그는 하늘에 떠있는 네 개의 달빛에도 눈이 부신 것을 느꼈다. 잠시 손을 들어 달빛을 막은 그는 눈을 지그시 누르며 기다렸고, 곧 그의 눈이 빛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사층 창문을 통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화염이었다. 수 백 명의 식객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거대한 D가문의 저택들이 하나같이 불타오고 있었다. 사실 수 백 명의 식객이야 천 년 전에나 가능했던 숫자이고, 지금은 일 년에 열 명이 올까말까 했기 때문에, 그런 저택들을 그 누구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태우는 짓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것도 한 밤중에.
사련은 창가를 통해 왼쪽을 슬쩍 보았다. 그곳에는 D가문의 현 가주인 자신의 아버지가 살고 있으며 D가문의 중요한 방들이 다수 위치한 중앙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건물조차 화염에 뒤덮여 그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가쟁 인가?”
자신의 가문이 멸문당하는 상황에서 나온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감정이 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고 한동안 지긋이 바라보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태도는 D가문의 사람이라면 당연한 표현이었다. 암살가문으로 이름이 높았던 D가문의 가르침을 받은 자라면 자신의 가문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냉철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련은 이 가문의 계승권을 일정부분 가지고 있는 남자기이고 했다. 스스로의 성이 D인 이상 그가 이 세상에서 감정을 동요시키는 일은 극히 적을 것이다. 사련은 한동안 밖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D가문의 자재들은 물론 일반하녀들조차 암살수업을 받았기에 모두가 여기저기서 정체불명의 기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D가문의 모든 인구수를 합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밖에 보이는 기사들의 숫자의 반도 안 될 것 같았다.
건물 안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지형을 이용한 암습을 통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지만, 기사들의 지휘관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한 것이 확실했다. 불로 공격한다는 확실한 작전이 없었다면 이 거대한 건물들을 모두다 화염에 휩싸이게 만들 정도의 기름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어째거나 화염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건물에서 뛰쳐나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들은 그들을 각개격파 식으로 도륙했다. 특별한 검술을 배우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평지에서 대면하여 싸우는 전투에서는 모조리 죽음을 맛봐야 했다.
사련은 자신의 건물을 보기 위해서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역시 아래쪽에서 기름과 불을 준비하는 기사들이 눈에 잡혔다. 사련은 그가 사는 건물만이 특별하게 봐준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지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은 심각했다.
사련은 방문을 슬쩍 흘겨보았다. 그리고 불쾌하게 잠에서 깨어야했었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그의 방문은 특이하게도 그의 침대에 바로 옆에 위치했기 때문에 침입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침대 맡에 준비해둔 숏소드(Short Sword)로 단칼에 배어버릴 수 있었다. 그것이 한 시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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