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황규영
작품명 : 참마전기
출판사 : 드림북스
0.
<참마전기>는 황규영의 근간으로, 얼마 전 7권으로 완결되었다. 저자 황규영의 필력저하와 이야기의 매너리즘은 이미 유명한 바, 그러나 <참마전기>는 전작인 '천년용왕'에 비해 상당한 발전이 엿보였다.
본 평은 <참마전기>와 저자 황규영을 평하며 저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1.
<참마전기>를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와닿는 것은 두드러지게 발전한 문장이다. 전작 '천년용왕'에서 거의 일관적으로 단문을 남발했던 것과는 달리, <참마전기>는 중문 활용의 폭이 넓어졌다.
문장마다 간단명료하여 희곡을 읽는 느낌마저 주던 '천년용왕'과는 달리, <참마전기>는 '소설'이라는 인상이 확연하다. 이야기를 유연하게 전달하기 위해 서술자가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킨 결과가 중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은 엄밀히 말하면 발전보다는 회귀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복수다'와 '천년용왕'을 거치며 이야기의 진행을 전적으로 인물에게 떠맡겼던 그가, 다시 예전처럼 서술자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던 시절로 돌아갔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여겨진다.
다만 이 회귀가 일시적인 것인지, 또는 저자가 <참마전기>를 계기로 작품의 방향을 돌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하기 이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2.
<참마전기>가 황규영의 전작들에 비해 특징적인 점은 시점의 활용이다. 지극히 일반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참마전기>의 서술자는 주인공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음으로써 전지적인 작가로서 인물과 독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맡았다.
바로 전작인 '천년용왕'의 서술자는 그리 큰 존재의의가 없었다. 모든 정황은 주인공이 주도하며, 서술자의 역할은 희곡의 지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참마전기>는 이야기의 주도권이 주인공에게 있지 않다. 사건은 대개 우연적으로 일어나고, 주도권은 그 우연을 조장하는 작가가 틀어쥐고 있다. <참마전기>의 주인공 유난극은 당장 눈앞에 닥친 사건에 대응하는데 급급하며, 사건을 진행하기보다는 수습하는 역할에 더 치중하고 있다.
더구나 주인공인 유난극의 눈에 보이는 현실과 실제의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서술자는 실제의 현실을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왜곡된 현실을 인지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웃으라 한다.
주인공 유난극이 늘상 말하는 '나 정말 나쁜 놈이었네'는 '좋은 사람 미친개'와 간극이 벌어져 있다. 그는 의부 사람들이 말하는 '미친개'에 좋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서술자가 스스로 존재감을 부각시켜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라고 독자에게 귀띔한다. 주인공의 현실과 서술자의 현실 둘 모두를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유난극을 미친개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미친개 소리를 듣는 유난극' 양자 모두를 독자에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3.
<참마전기>는 저자 황규영의 바람대로 '따뜻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따뜻한 이야기'보다는 세력간의 균형에 비중이 쏠리며 정치적 성향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기실, <참마전기>는 전작 '천년용왕'은 물론이거니와 그 전작들과도 유사한 구도를 보인다. 정사를 대표하는 두 세력과 출중한 능력을 지닌 개인, 그 와중에 정사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며 주인공에게 열등의식을 가진다는 점까지.
사실상 이 구도는 이미 황규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고유 패턴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구도가 작품마다 이어져온다는 점이야말로 매너리즘이라 지탄받는 가장 큰 원인임과 동시에 황규영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마전기>의 전개는 이러한 구도에서 탈피하는 듯 보였다. 정사의 두 세력이 양분되어 있음이 표면적으로만 드러났기에, 이야기가 황규영 스타일의 구도에서 비껴난 채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참마전기>의 결말은 정사대전의 발발과 그것을 저지한 개인, 즉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어쩔 수 없는 황규영의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를 가리켜 매너리즘에 빠졌달지, 황규영이 이야말로 자신의 스타일이라 확신하고 있달지에 대해 특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가 쓰는 작품은 별 수 없이 정해진 구도를 따르리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참마전기>의 후기에서 '뒷권으로 갈 수록 사람 사는 이야기의 비중이 줄어, 그게 조금 아쉽다'라고 토로한 것에는 다음 작품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걸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쉽지 않을 방향으로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자들이 바라는 매너리즘의 탈피일 테니 말이다.
4.
<참마전기>를 포함한 황규영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특징은 인물이 평면적이라는 점이다. 이 '평면적'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인물의 성격이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는 '완성된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물의 성격이 단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캐릭터 메이킹의 단계에서 정해진 인물의 캐릭터리티가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인물의 이면(異面)이 비춰지지 않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인물상이 단순하다, 이 또한 저자 황규영이 지탄받는 연유이기도 한데, 이는 엄밀히 말해 좋다 나쁘다 말하기 어려운 요소다. 소설에 표현되는 인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캐릭터(개성)인데, 이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느냐 복잡하게 표현하느냐는 전적으로 작가에게 달린 문제이며,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취향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로 나뉠 따름이다.
적어도 그 단순하고 강렬한 캐릭터리티는 저자 황규영에게는 취향에 맞거나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그의 글에 맞다. '변태 노래나 부르고 유난극에게 약속을 지키라며 불평만 해대는 여자'라는 이 설정만으로 하나의 인물을 거의 다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인물상은, '가벼운 글'을 지향하는 황규영에게는 활용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쯤에서 아쉬움을 드러내자면, 그의 처녀작인 '표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표사'에서 나타나는 인물상은 근작에 비해 크게 복잡하다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인물에게서 변화가 엿보였다. 완성된 인물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표사'가 그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된다. 단순한 인물상이 황규영의 스타일이라 말하고는 있으나, 다만 이 점만은 아쉽기가 그지없다.
5.
<참마전기>는 확실히 전형적인 황규영의 작품이다. 그러나 기억을 잃었기에 주도권을 주인공에게 맡겨둘 수 없다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질적 향상을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발전이라 부를 수 없는 연유는 <참마전기>가 너무나 확연한 황규영 스타일인 탓이다. 그것은 설정하기에 따른 작은 변화일 뿐이며, 저자의 성향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냈을 따름이다. 다음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를 발전이나 회귀라 명확하게 말할 수 없으리라.
확실한 것은, 이런 건설적인 변화야말로 독자가 바라는 바람직한 작가상이라는 점이다. 첫 작품인 '표사'의 흔적이 희미한 지금은 뭇 독자들의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나, 저자에게 발전의지가 있다면 다시 환영받을 날도 머지 않아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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