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글쓴이 본인이 한 번 상황을 가정해보시죠.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웃으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알려줄때와 자신이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나서 직접 깨달았을때 중 어떤 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깨달음을 가져올지 말이지요.
굴곡없는 글이 재미있으려면 그 분야가 코미디가 되어야 할까요? 한 없이 밝기만 한 글에서, 독자들에게 주인공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독자들이 과연 납득할 수나 있으련지..
비평글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여기지만, 그것을 마치 장르소설이 수준이 낮아서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하시니 조금 어이가 없네요.
밝은 분위기로 사람의 마음을 즐거움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구도소설이 있기나 한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구도'라는 말 자체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과연 각각의 주인공들의 현실이 어떠할지는.. 상상에 맡겨봅니다.
P*S 예전 백상님의 어떤 소설들이 그러한 구도소설인지 저는 기억이 나지 않아서, 혹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비로 인하여(쓴맛을 체험해아 단맛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 차가운 물이 있어야 뜨거운 물이 있을 수 있는 개념)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다만 너무 쓴맛만 보고, 쓴맛만 보고, 쓴맛만 보다, 나중에 한번 살짝 단맛 주고 끝나는 구도 소설이 대다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편중 된 생각 에 구도라는 말이 쓰여지고 있지 않나 우려되서 이 비평글을 썻습니다.
저의 개념은 상식수준만 님과는 다르게 굳이 깨달음이라는 말이 현실과 벗어 났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떤 산에 올라가, 보통 사람의 체험과 다르게, 절에 들어가야지만 얻을 수 잇는 개념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현실안에 존재하고, 사람 사이에 존재하고,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더욱 쉽게 말하고 어떤 상황에던 기쁨과 행복의 상태로 존재 할 수 있는게 깨달음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보통 사람이 쓴맛을 보는 상황에서도, (그 쓴맛이 단맛을 위한 쓴맛임을 알기에) 기꺼이 받아 들이고 자신이 행복임을 체험 할 수 있는 상태. 또한 즐거움은 즐거움 데로 받아 들이고 행복 할 수 있는 존재가 깨달은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정의가 각자 다를 수 있으니 이에 대해서 더 뭐라 말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사랑'에 대한 자기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노력해본 사람은 사랑이라는 개념 조차도 '언어'로 전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그건 어떤 느낌으로 전달되 었을 때 더 전달되죠.
마찬가지로 어떤 조건 없는 행복을 체험해 본 사람은 그것보다 더 가보치 있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체험을 해봤을 꺼라고 생각 합니다.
제가 여기서 문제를 꺼낸건, 쓴맛만 너무 강조한 구도 소설이 대다수여서(마치 단맛을 보면 안 되는 듯) 이는 너무 편중 되어 있지 않나 생각해서, 이 비평글을 썻습니다.
제가 무슨 말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면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어 보심을 추천합니다. 굳이 어렵게 살아서 어떤 좋은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겠지만요. 즐겁게 살면서도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 합니다.
백상님의 소설에 대한거는 제가 본지 오래 되서, 또한 구할 길을 없어서 정확한 소설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겠네요. 가슴 아프고 먹먹한 기분이 드는 소설도 있었지만요. 이미 어떤 존재 상태에서 시작해서, 세상을 해학으로 이끌어 나가던 소설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한 제목을 말씀 드리지 못한 점은 사과 드립니다. 저의 기억의 한계네요.
상식수준만 님이,
[비평글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여기지만, 그것을 마치 장르소설이 수준이 낮아서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말하시니 조금 어이가 없네요.]
이 부분에서 장르소설이 수준이 낮다라는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 합니다. 아니 수준이 낮다라는 말은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저의 비평글을 읽고 상식수준만 님께서 사용하신 단어 입니다. 수준이 낮다라는 단어는요.
물론 제가 [기대를 안한다] 란느 표현을 썻긴 하지만요. 이것이 수준이 낮다라고 연계 될 가능성도 있긴 하겠군요.
제가 기대를 안 한다는 말은 저의 생각으로 풀어 쓰면, 독자층이 어려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나이든 사람이 기대하는 소설을 쓰기 쉽지 않을 거라는 의미 입니다. 또한 작가님께서도 더 좋은 소설을 쓰실 수 있음에도 판매량(독자층)으로 인하여 어린친구에게 맞춰서까지 책을 내시던 경우도 있더군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기대하는 또한 그 이상의 소설을 쓰기란 쉽지 않다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기대를 안 한다] = [수준이 낮다] 라는 말은 다르다고 생각 합니다.
어린 친구가 수준이 낮다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 어린 친구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나이에 따라 좋아하고 기대하는 바가 다르긴 하겠지만요. 좋아하는 바와 관심사, 경험한 바가 다르다고 해서 수준이 낮다 라는 쓰는 건 그리 동의하는 바는 아닙니다.
말 못하는 갓난아기 보고, "니가 말하기를 아직 기대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쓸 수 있어도, "너는 말을 못하니 수준이 낮다" 라고는 하는 사람 없잖아요. 왜냐하면 자라나는 과정이고, 더 큰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되는지 알기 때문이죠.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분을 가지고 '수준이 낮다'라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독자층이 점점 어려짐에 따라 제가 기대하는 또는 그 이상의 소설이 나올 수 있을지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긴 하죠.
결국 하고 싶은 말씀은 내 입맛에 맞는 구도소설을 만들어 달라는거 아닌가요? 근데 내가 원하는 구도소설이 예전에 백상님의 글을 통해 본것 같기도 한데, 제목도 기억이 안날정도로 가물가물하고, 그런류의 구도소설이 먼지 알고 싶으면, 어떤 스님의 책을 읽어보란 말이지요?
스스로 쓰신 글을 다시 읽어보세요. 머리아파집니다. ㅋㅋ
구도소설은 그 자체로도 장르소설 전체에서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쓰는 것도 힘들고,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기도 힘들지요. 당연히 요즘에는 그러한 구도소설이 출간되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머리아픈 '구도'의 의미조차 논하지 않는 것이 요즘의 시류이지요. 그런데도 구도소설 비슷한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면, 대부분이라 할정도로 요즘의 글에서처럼 '힘(무공)'을 어떻게 얻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글과는 다른 글을 씁니다. 대표적으로 중걸님의 '활선도'를 들을 수 있겠네요. (이것을 구도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제가 보기에 구도소설이란 자체가 거의 없는 장르소설계에 '구도소설에서 주인공이 별다른 굴곡없이 깨달음을 얻게 해달라.'는 얘기는 위에서 홍암님이 언급하신 현 시류를 자신 스스로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자신의 피부에는 전혀 와닿지 않는 얘기를 장황하게 적어놓고, 장르소설 작가들에게 떼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이 구도소설 비스무리한 것을 좋아하는데, 백상님의 소설 중 기억나는 구도소설이 없습니다. 장르소설에서 '구도' 그자체에 본연의 의미를 두고 글을 쓸리야 없을테니.... '구도'를 글의 중심 소재 중 하나로서 건드리고 가는 소설조차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편중'이란 단어가 어울리기나 하는지 의문입니다.
P*S 쓰다보니 궁금한 것이 홍암님이 말씀하시는 '구도소설'이란 것은 어떤 것인지요. 굴곡이 있든 없든 제목 몇개 나열해 주실 수 있나요?
상식수준만 님의 말씀도 역시 맞습니다.
제가 쓰인 단어와 문장에 대한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오해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며칠 몇날이 걸릴지는 모르죠. 그것이 가능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다만 상식수준만 님과 같이 어떤 단어나 문장에 대해서 오해를 하실 때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이 지금으로써는 저의 최대한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합니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 대한 오해를 없애 달라는 요청은 저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제 능력이 안 되니 제가 받아 들일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입장이네요.
구도 소설에 대한 관점은 댓글을 보니 상식수준만님과 저의 기준이 많이 다른 듯하네요. 일단 저는 백상님 소설의 80% 이상이 구도 소설 내지는 그와 유사한 소설이라고 생각 하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상식수준만 님께서 생각하는 구도 소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일단 제가 구도 소설 같지만 아닌 소설에 대한 언급을 해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화선무적'은 구도 소설이라고 생각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작가님의 전작에서는 구도 소설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요.
특정 소설이 엄청난 개성이 없는 한 구도 소설이고, 이건 기정무협이고, 이건 복수물이고, 이건 추리소설이고 등등 그 기준을 나누기는 쉽지 않을거라 생각 합니다.
물론 '화선무적'이 구도 무협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구도 소설의 향을 약간은 풍기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오히려 저는 치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치유과정을 보는 것 같더군요.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더 정확하게 알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으로만 판단하면 치유 소설이 맞다고 생각 합니다. 그 치유 과정이 지금까지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저도 같은 걸 느꼈죠. 많은 종류의 무협 등에서 보여지는 구도의 모습이 단순히 고난의 극복, 그 이상이 아니었죠. 위에서 잠까 백상님이 나온것 같은데, 백상님도 그냥 무공을 익히는데 있어서 도가 나오지 제대로된 구도니 뭐니 할건 아니죠.
진짜 제대로된 구도소설, 아니 성장소설이 맞을래나? 하여튼 이런걸 보려면 작가 이우형님을 빼놓을수는 없죠. 다른작가님들은 솔직히 무공을 익히기위해 도를 말하지만, 이우형님의 글은 정말 도,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확신이 들죠.
암튼 유수행 강추합니다. 미완의 글이지만, 나올건 충분히 다 갖춘글이니 어설픈 구도형 무협에서 느낀 찝찝함을 덜 수 있을겁니다.
확실히 지금 보면 백상님의 소설이 구도 소설이라고 100% 확신하긴 힘들긴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또한 딱 짤라 아니라고 하기에도 힘든감이 있다고도 생각 됩니다.
과거에는 재미있게 보던것을 지금 보면 또한 유치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시절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백상님의 소설들이 정말 혁신적인 소설들이었다라고 생각 됩니다. 또한 저의 의식상태를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던 소설이었죠. 물론 지금 보면 그닥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겟지만요. 그 당시의 저에게는 고마운 소설이었습니다.
구도소설이 아니더라고, 일반적인 무협에서 깨달음의 단초를 제공하는건 대부분 시련이었죠.
벗어났지만,
그런것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런종류의 깨달음이 무공증진에 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차라리 권왕무적처럼 싸움에대한 기술력의 증진 = 전투력 상승이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론 무협에서 깨달음이 시련으로 오는 이유중 하나가 무협을 구성하는 요소중 하나가 복수, 은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의 진행과 주인공의 변화와 주인공과 반동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시련 한가지로 얻을 수 있으니 편하기도 하구요.
또 무협소설이나 고전소설같은 전기적 작품들에 시련이 들어가는게 +를통한 +++보다 -를 통한 +가 독자들이 느끼기에 더 큰 희열을 주지 않나 합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정신적, 감성적 충격이 큰 것은 대부분 -죠. 가족의 죽음같은 정신적 충격과 동일한 충격량을 가지는 +한 감정을 맛보기란 발생의 횟수를 따질때 훨씬 확률이 훨씬 희박하니 오히려 주인공에게 큰 정신적충격을 줄때 마이너스한 충격을 주는게 더 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
글쓴이님이 말씀하신 +에서 +++로가는 훈훈한 소설을 저도 기다립니다.
책을 관통하는 테마가 구도인 작품을 몇개 보진 않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책들도, +에서 +++로가는 그런 상황도 꽤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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