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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혼의환
작성
09.01.21 18:34
조회
2,037

작가명 :

작품명 :

출판사 :

현재 장르문학의 상황과 추구해야 하는 방향

-판타지를 중심으로

  장르문학에서 힘의 추구와 관련한 일련의 토론을 읽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지금 토의는 장르문학, 그 중에서도 판타지와 무협지의에서 힘의 추구가 옳은 것이냐에서 힘을 추구하는 것이 주제가 될 수 있느냐로 넘어 왔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토의는 장르문학의 질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중요한 얘기입니다. 저는 이 토의가 두 가지 측면에서 장르문학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장르문학에는 주제가 있는가, 있다면 그 주제는 현대 문학 전반과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는 장르 문학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문학적 보편성인지 장르적 특수성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두가지 측면의 문제를 판타지와 무협 모두를 아울러 다루면 좋겠지만 제 식견이 짧아 판타지에 한정해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전개될 논지를 요약하자면 저는 일단 현재 장르문학(이하 판타지)에는 그 주제의식이 무척 희박하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할 것입니다. 이는 기타 현대 서사 문학과 비교했을 때 판타지가 태생적 한계로 보편 독자의 공감을 얻는 내용이 아닌, 특수 독자에게 한정된 장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판타지가 당당히 장르문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 주장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자세하게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이하 평서체로 글을 쓰겠습니다.)

1. 판타지엔 주제가 있는가

1-1. 서사문학의 주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판타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장르가 문학에서 어떤 범주에 속하는 지를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장르론은 단순한 분류학에 그칠 수 없고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문학계에선 각 장르의 구조를 투시하고 이를 기초로 갈래를 설정해 둔 상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장르론은 작품 속 자아와 세계의 관련 양상을 바탕으로 서정, 서사, 교술, 희곡으로 나눈 문학 4분설이 있다. 이 중 소설은 서사 갈래의 하위 장르로 설화, 전설, 민담 등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우리는 판타지가 소설이라는 점엔 동의하고 있으니 판타지를 서사 갈래의 한 장르로 포함시키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 문학의 보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서사는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로 정의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서사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가 의도하고 구성한, 현실 세계의 한 단면을 그려낸 세계와 갈등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등장인물(인물)이 작가가 꾸며낸 세계(배경) 속에서 갈등을 겪는 것(사건)이 바로 서사다. 이런 것은 주몽 설화와 같은 건국 설화에서부터 현대 소설까지 계속되는 서사의 장르적 특성이다. 건국 설화는 주인공의 신이한 능력을 부각시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왕권을 획득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런 예는 비단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활약이 뉴스 보도되는 등 동일하게 작용하는 양상이기도 하다) 현대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갈등을 겪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 때 작가는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일부러 현실 세계를 왜곡시키고 변형시켜 주인공과 갈등을 일으킨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작품 속 현실과 융합하거나 상반하며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는 판타지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판타지 작가는 세계를 재창조 하지만 이 재창조된 세계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선 다른 분야의 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굳이 현실을 변형해 세계를 재창조 하는가 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는 작가가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작가는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내 작품 내의 세계를 구축한다. 건국 설화는 창업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조(始祖)가 기이한 태상과 신묘한 능력을 이용, 건국 과정의 장애를 극복해 결국 나라를 창업하는 과정을 그려 낸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경우에도 나와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기 위해서 작가는 소작농의 삶과 당시 농촌 현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재창조한 세계는 주제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기본적인 세계 안에서 주인공이 겪는 일을 통해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1-2. 판타지의 세계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가

판타지는 위에서 서술한 작가에 의한 세계의 재창조가 극으로 달린 문학이다. 판타지의 작가는 세계를 완전 새롭게 창조해 낸다. 새로운 땅을 만들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와 드워프, 오크, 엘프와 같은 종족을 비롯해 마법과 새로운 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 세계도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고 그 기본적인 세계는 현실의 중세 혹은 고대, 근대 유럽의 생활 양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판타지도 결국엔 현실의 모습을 재창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작가는 이런 세계를 재창조해 냈다면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판타지는 그런 작가의 생각, 세계를 재창조한 이유, 즉 주제를 잊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 스스로가 세계를 창조해 낸 당위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이번 논의의 시작이었던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수준에 머무는 작품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제의식이 결여되거나 약화된 판타지 소설이 늘어나면서 판타지는 주제의식이 분명한 양질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이 삶의 이면 탐색이라는 소설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비주류 문학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나는 판타지가 이런 문제를 안게 된 것은 우리나라 판타지의 태생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판타지의 확산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초창기 PC통신의 확산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PC통신 게시판엔 지금과 같은 인기작가들이 존재했고 그 인기를 등에 업고 <바람의 마도사>나 <데로드 앤 데블랑>, <하얀 로냐프 강>과 같은 작품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도서 형태의 출판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층을 확보하던 판타지가 폭발적으로 독자와 작가층을 형성하게 된 것은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다자간 정보 교환과 사용자 주도의 컨텐츠 생산을 골격으로 하는 인터넷은 독자와 작가를 정확하게 구분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독자가 작가가 되고 작가가 독자가 되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작가는 일약 스타가 되고 작품이 출판되었다. 게시물의 조회 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조회 수가 높은 작가는 그만큼 재미있는 글을 쓴다는 뜻으로 간주되었고 조회 수가 낮은 작가는 그만큼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 조회 수와 인기에 신경을 쓰면서 본래 인기 있던 작품과 유사한 내용, 문체, 설정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판타지와 무협의 결합, 새로운 유형의 판타지 등장과 같은 순기능도 있었지만, 결국 이런 현상은 일회적 쾌락을 추구로 이어져 심미적 가치는 등한시하고 재미만 추구하는 판타지를 양산하는 계기도 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다수의 양질의 작품이 등장했지만 이 시기에 주인공의 힘이 어마 어마한 소위 먼치킨류의 판타지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현재에 와서는 이런 현상이 많이 정화되어 충실한 세계관과 개성이 강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판타지의 주제의식이란 숙제를 풀지 못한 작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판타지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과 주제로 채워지지 못하고 읽는 사람만 읽는 흥미 위주의 소설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현상들 속에서 주옥같은 작품들이 통속 소설로 치부되어 외면받고 있다.

2. 판타지는 문학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판타지 작가들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통한 삶의 의미 탐색이라는 문학 보편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가가 세계를 창조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다수의 독자에게서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인간 보편의 삶과 그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차적인 이유는 학생들에게 문학적 심미안을 기르기 위해서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이 소설을 배워서 자신이 사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찾아 그것을 듣고 읽는 이에게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이다. 우리는 현재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판타지는 소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판타지를 아끼고 사랑한다. 판타지가 오랫동안 지속되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판타지가 소설 장르의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자는 판타지의 가치를 판단하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영혼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명필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을 늘 반복하며 판타지를 쓰고 또 좌절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글쓰기의 오랜 격언처럼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를 인식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양질의 작품이 나올 때 판타지도 재평가 될 것이다.


Comment ' 12

  • 작성자
    Personacon 아야가사
    작성일
    09.01.21 19:07
    No. 1

    헐리웃 액션무비와 예술성...이라면 비유가 좀 어긋나는 것 같지만, 역시나 대다수의 '양산형'들에게 문학 보편성은 그들 나름의 목적의식에 부합하기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서비
    작성일
    09.01.21 19:17
    No. 2

    잘 쓰셨네요.

    최근에는 소설문학(산문문학)에서 사용했던 소설, 픽션, 로망 등의 관용화된 명칭들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장르분류론 일반에 의한 서사문학이라는 용어가 차지하고 있죠.

    본문에서는 장르문학을 서사문학이란 대분류에 포함시키고 장르문학이 문학일반으로 가져야 할 보편성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꼬이는게 있는데 서사의 핵심을 세계의 창조에 두고 있는 것이죠. 서사의 일차적인 목표는 사건의 서술입니다. 소설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론은 서사문학의 요소와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서사문학의 요소는 사건과 사건을 이야기해줄 화자입니다.
    배경이 서사문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느냐는 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장르문학이 서사문학이라고 전제했을 때, 세계의 창조는 소설창작의 주요기법, 더 나아가 핵심이 될 수 있지만, 서사문학의 그것으로 보기엔 미흡합니다.

    본문에서는 현실세계의 왜곡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이 장르문학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변하고 주인공의 보여주기에 그치는 요즘의 장르문학은 이에 소흘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인공의 보여주기는 세계의 창조와는 배타적인 관계일까요? 그렇지는 않죠. 배경이 곧 세계를 의미하지도 안거니와 인물을 통해서도 세계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주인공 중심의 서술이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그 것이 서사문학의 핵심을 벗어난 것이라곤 할 수 없죠. 오히려 주인공 중심의 서술을 하면서도 핵사건과 주변사건의 정밀한 구조를 형성해가면서 정교하게 완성된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작품도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1에서까지는 장르문학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다 1-2부터는 판타지로 시각이 좁혀지게 되죠.
    -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서사문학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판타지는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장르이다.

    이 세가지 명제가 세계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서로 뒤섞이면서 판타지는 문학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말았죠.

    실타래는 장르문학의 분류를 서사문학으로 전제하고도 소설의 문학 일반론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설의 허구이다라는 것은 픽션의 정의이지 서사문학의 정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밝혔듯이 소설의 3요소가 서사문학의 3요소가 아니죠.

    그러므로 장르문학이 서사문학이라는 관점에서는 문학적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서사에 중심으로 두어 장르적 특수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주장은 맞는데 논리가 꼬였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이곳
    작성일
    09.01.21 19:35
    No. 3

    판타지, 무협을 가리지 않고 장르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특별합니다.
    아니,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이들보다 많은 조명을 받으니, 인기 절정의 연예인, 소위 말하는 스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인물(조연, 엑스트라 등)에 비해서 보다 많은 굴곡을 보여줄 수 밖에 없지요.
    그러다보니 좀 더 특별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지요.


    과거에는 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고,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러 저러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지요.
    그러면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이 옵니다. 왜냐하면 어쩌고 저쩌고 하고는 했지요.

    요즘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 좋아하는게 무엇이냐 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저런 것을 좋아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되고 싶은 것과 그것을 하고 싶은 것의 차이지요.


    한 소설에 어떤 주인공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니 좀 특별하게.. 영웅을 만들어 봅니다.
    왜 영웅이 되는가와 이렇게 영웅이 되었다 라는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저런 이유로 영웅이 된 주인공과 특출난 힘이 있어 영웅이 된 주인공의 차이라고 할까요.

    재주가 없어서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무협소설로 예를 들어봅니다.
    힘을 기를 때는 재밌다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어떻게 힘을 기르는지(왜 힘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간략한 설명이 대부분입니다.)에 대해서 흥미가 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힘을 쓸 때는 어떨까요.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싸우고, 이깁니다. (그 과정은 필력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요;;)
    그래서인지 조금 지루해집니다.
    특히나 게임판타지 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에 조미료 형식으로 소소한 에피소드가 추가됩니다.
    대부분 인간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지요.
    게임판타지라면 게임이 아닌 일상의 이야기가 될 것이고, 판타지라면 주인공과 히로인의 애정전선, 무협이라면 과거 회상같은 것들이 있겠군요.
    하지만 그것들이 옴니버스 형식의 에피소드여서 보면 좋고, 안 봐도 크게 상관없는 것들이라는 것이지요.

    읽다보면 이야기가 상대를 이기는 것에 혹은 주인공의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라는 질문은 빠져있고, 어떻게 라는 질문에 맞춰진 글이 되는 것이죠.

    사실 왜 라는 질문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언뜻 보면 재미없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어떻게 하는 질문은 대부분 하고 싶은 바가 있기 때문에 답이 쉽게 나옵니다. 말하자면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된다면 결국 같은 행동의 반복이어서, 처음에는 유쾌하고 통쾌한 행동이라도 질리게 되지요.


    음... 저도 계속 같은 글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군요.
    결론입니다.
    현 시대가 정보화의 시대이다 보니, 내가 재밌으려고 읽는 글에서도 스트레스(즐거운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이기 때문에..)를 받아가며 읽어야겠느냐! 하는 분들이 계시는 한 양판소는 계속 될 것 같습니다.

    Ps. 사실 양산형이라고 해도 수작인 작품들이 많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무영신마괴
    작성일
    09.01.21 19:49
    No. 4

    서비님//서사문학이 보통의 문학분류와 어떤 다른 특성을 가지고있는지 설명해주세요. 궁금합니다.^^ 아 그리고 서사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이 장르문학으로서의 특수성과 동일한 것인지 혹은 유사한 것인지, 유사한 것이라면 어떤 점에서 다르고 같은지도요.
    아 어쨌든 좋은 글에 좋은 댓글이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Personacon 자공
    작성일
    09.01.21 21:55
    No. 5

    잘 읽었습니다.
    끝맛이 좋은 차를 마신 것과 같은 기분이네요. 좋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영혼의환
    작성일
    09.01.21 23:25
    No. 6

    서비님///. 좋은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처음에 지적하신 서사의 정의를 이야기 하는데 소설의 구성 요소를 가지고 온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근거였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하려다 보니 정말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네요. 좋은 지적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하의 두 가지 지적은 제 주장이 곡해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지적하신 주인공 중심 서사의 완결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는 이 지적을 “주인공 중심의 서술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잘못된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논제로 받아들였는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요? 일단, 지금 상황에선 답변을 기대할 수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보여주기(Showing)은 분명히 설명하기(Telling)과 더불어 소설의 시점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보여주기만을 통해서도 훌륭히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은 많지요.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판타지(서비님께선 장르문학과 판타지를 혼용해서 쓰셨지만 전 계속 판타지에 국한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해 바랍니다.)들은 보여주기는 있되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인지 모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제의식을 상실한 채 그저 주인공의 여정과 능력을 사용하고 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핵사건과 주변사건이 정밀한 구조를 형성해 가면서 정교하게 완정된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사는 앞서 지적하신 것처럼 사건의 서술을 목표로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왜’ 서술하느냐 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없는 현재 수많은 판타지들은 분명 문학 보편성에 비추어봤을 때 그 생명이 없는 통속소설에 불과할 뿐입니다.

    두 번째 지적의 논제를 저는 “판타지를 서사문학의 한 갈래로 정의하고선 소설 일반론을 들어 결론을 내고 있다.”로 판단했습니다. 그 예로 잘못된 논리 전개방식을 드셨는데요, 이는 아마 제 필력이 다른 분들과 비교했을 때 많이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서 각 단락의 논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 제 잘못인 것 같습니다. 저는 1-1에서 2까지의 논리적 전개를

    1-1. 서사문학의 보편성은 자아와 세계의 갈등이며 판타지도 이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자아와 세계의 갈등 양상을 심화하기 위해 작가는 작품 속 세계를 구축한다.
    이 갈등을 통해 작가의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1-2. 현재의 판타지 작가는 작품 속 세계를 구축한 목적의식이 없다.
    세계를 구축한 목적의식이 없이 없는, 판타지가 서사문학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을 수 없다.
    2. 그러므로 판타지가 문학적 위상을 지니기 위해서는 문학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

    로 잡았습니다.
    저는 판타지가 환상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판타지에서 환상적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은 현실의 상황에서 보여 줄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지 환상적 세계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통속소설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지금의 논의도 필요 없는 거지요.
    또, 서사문학이 일방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쓰지도 않았고요. 세계의 구축은 현실을 기반으로 작가가 설정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간편한(하지만 가장 논쟁도 많은) 소설의 정의가 ‘있음직한 일을 그럴 듯하게 꾸며 쓴 글’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 부분은 제 필력이 부족해 오해가 빚어진 것 같습니다.

    판타지에 주제가 필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무리하게 장르론을 들먹인 것은 장르종을 구분하는 작업이 그 개별 문학 작품 갈래들 간의 특질을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판타지를 소설로 이해하고 있고, 소설은 서사의 한 갈래로 인정됩니다. 그렇다면 판타지 또한 서사의 특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장르론을 가지고 판타지에 주제의식이 필요한 이유를 쓴 것입니다. 모쪼록 지금 우리의 이런 논의가 무의미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판타지를 쓰고 읽는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식이 되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지적으로 논리적 취약성을 짚어주신 서비님께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초심짱
    작성일
    09.01.22 01:35
    No. 7

    영혼의환님 // 좀 더 읽기 편하게 문단구성을 하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셨다면 더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저에게는 조금 눈에 쉽게 다가오지 않더군요.

    이 글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진 내용 중 바라보는 시각차이를 가진 부분이 있어 논의에 참여해 봅니다.

    1. [작가는 이런 세계를 재창조해 냈다면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판타지는 그런 작가의 생각, 세계를 재창조한 이유, 즉 주제를 잊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 스스로가 세계를 창조해 낸 당위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이번 논의의 시작이었던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수준에 머무는 작품이 늘어난 것이다.]

    이 표현에서 작가가 자신의 글에 담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히 하지 못했거나, 그 주제를 스스로 잊어버렸기에 그 결과로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만연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이 점을 베이스로 두고 주장을 펴고 계신데요. 저는 이와는 다른 입장입니다.

    제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책을 1번이상 완결한 대다수의 작가 및 어느정도 습작을 경험한 작가는 결코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작가가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를 잊어버린다면 저는 그 사람은 작가라 불릴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밥먹는데, 숫가락 젓가락 다 잊고 손으로 뜨거운 반찬과 밥을 떼어 먹고, 뜨거운 국을 후루룩 입대고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또, 자신이 10년이상 키운 자식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도 모르는 부모와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제가 볼때, 대다수의 작가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나 목적의식도 잊는, 터무니 없는 글실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제가 볼 때, 판타지 소설에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많아지는 것은 작가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주인공을 원하는 독자의 수가, 그렇지 않은 독자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이죠. 그 작가가 작품의 질보다 그 책의 흥행을 위한다면, 당연히 보다 쉽게 대리만족을 주고, 보다 많은 독자가 접근 가능한 내용으로(또는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거라고 봅니다.

    또 한가지는 질이 높은 작품은 출간주기가 길다는 것이지요. 더 고심해서 글을 써야 할테니까요. 그러나 출간주기가 긴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또 좀 덜 고심해서, 좀 더 쉽게 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또 대다수의 독자들의 코드와 맞는다는 것이지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의 책을 대다수의 독자들이 좋아하니까 말입니다.

    이러한 것은 작가들에게는 전략이 아닐까요? 내가 후세에 길이 남을 질 높은 작품을 쓸 것인가? 대다수의 독자층이 몰려 있는 10대 중후반 20대 초반을 공략하여 많이 읽히는 책을 쓸 것인가? 그리고 여러가지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자기 소신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인이 작가가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를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10대 독자들을 대다수 독자층으로 보는 상황에서, 경제성 있는 or 흥행하는 책을 내놓기 위해 작가는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주인공, 소재, 글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 [이런 식으로 주제의식이 결여되거나 약화된 판타지 소설이 늘어나면서 판타지는 주제의식이 분명한 양질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이 삶의 이면 탐색이라는 소설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비주류 문학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판타지가 비주류 문학으로 간주되는 이유에 대한 시각도 저는 조금 다릅니다. 영혼의 환님이 말씀하신 부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보편적인 정서라고 해야할까요? 드래곤이 나오고, 이종족이 나오고, 칼싸움이 나오는 그 세계관을 대다수의 어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거기에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장르문학을 비주류 문학으로 내 모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 진입장벽을 일단 뚫어야지 영혼의 환님이 말씀하신 힘 이면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세상속의 갈등도 수면으로 떠올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을 둔 분들 중 이 부분을 문학의 한 요소 또는 세계관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이 매우 적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성이 터부시 되는 것처럼.... 현재 문화개방과 인터넷 확산으로 성이 매우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또 이전에 비해 성적으로 많이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식을 두 부모로서는 절대적으로랄까~ 매우 보수적인 성관념을 고집하시지요.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장르문학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장르문학을 비주류 문학으로 자리잡게 하는데에 큰 진입장벽으로 존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영혼의환
    작성일
    09.01.22 12:07
    No. 8

    초심짱님/// 모자란 게 많은 제 의견에 좋은 반론 내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초심짱님의 의견은 두 가지 면에서 제 의견을 반박하셨는데요, 이를 제 나름 정리해 보면,

    1) 작가들의 주제의식 결여가 아니라, 시장성을 고려한 현상이다.
    2) 판타지가 외면 받는 것은 한국 보편적 정서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 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1)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이 문제는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현재의 판타지 시장은 대부분 10대와 도서 대여점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런 현재의 시장성만을 고려하다 보니 주제의식의 결여가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보고 자신이 가장 감동을 느낀 책을 사게 됩니다. 지금 시장이 10대와 도서 대여점을 위주로 돌아가게 된 것에는 주제의식이 결여된, 흥미위주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흥미위주의 소설은 일회적인 쾌락은 제공할 수 있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인 감동과 교훈, 재미를 주지는 못합니다. 그 결과, 독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판타지는 구입할 필요가 없는, 빌려서 읽고 그 순간 재미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순수 문학 장르도 지속적으로 예술성만 추구하다가 시장이 황폐화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순수문학계에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예술성에 대한 반발로 신인 작가들이 발칙한 상상력과 문체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예술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새는>,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김영하의 <너의 의미>등이 있습니다. 이들 작품은 예술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대표적인 소설들입니다. 이미 이런 성공적인 예들이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의 판타지 출판 상황은 시장성만을 쫓다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잊어버린 상황입니다. 초심짱님께서는 작가가 주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하시면서 질보다는 책의 흥행을 위한 선택일 뿐이라 강변하셨지만, 진짜 작가라면 자신의 주제의식과 흥행을 함께 잡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팔리기 위한 책을 쓴다면, 그것은 제가 글 말미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는 글로써 이야기해야 한다”는 격언을 잊어버린, 자본에 작가의 영혼을 판 행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작가가 영혼을 팔아 버린 것 보단 주제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쪽이 그들을 위해서 더 나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번 팔아버린 영혼을 되찾는 것은 어렵지만 영혼을 탐색하는 쪽이 더 쉬운 일이니까요.

    2)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이미 판타지가 우리 보편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명제는 약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이상문학상 추천 우수작 중 하나인 복거일의 <내 얼굴에 어린 꽃>은 놀랍게도 미래의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 인간은 등장하지 않고, 버려진 행성에서 인간이 찾아오기만 기다리며 살고 있는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박민규의 단편 소설집<카스테라>는 그 경우가 더합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는 아예 양복을 입고 출근 전철을 타려는 기린이 등장합니다. 국문학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잡아야 하는가는 논란이 많은 의제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한민족에 의해 민족 보편의 정서를 담고 있는 당대의 형식으로 쓴 문학’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판타지에 드래곤이나 마법, 이종족이 등장하는 것은 이미 일반 대중에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종 영상매체를 통해서 그런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을 많이 접해 그에 대한 이질감이 약화된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런 드래곤, 마법, 이종족이 등장하는 민족 전통의 소재가 아닌 것을 사용하는 판타지에 어떻게 우리 민족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녹여내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제의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판타지가 주인공의 신이한 탄생, 범인과는 다른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여러 모험을 통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는 내용은 바로 우리가 주몽설화, 견훤설화, 서동요, 홍길동전 등을 통해 익히 접한 전통적인 설화, 전설, 민담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은 그 이야기 구성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는 것입니다. 이제 소설 구성의 측면에서 더 나아가 그 작품 안에 우리 민족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타지 작가들의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 현재의 시장 상황과 판타지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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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영혼의환
    작성일
    09.01.22 12:10
    No. 9

    아야가사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판타지가 분명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미 할리우드 대중 영화들은 그 소재를 순수예술에서 찾거나 <다크 나이트>와 같은 방식으로 그 시도를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성과를 조금씩 얻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런 시도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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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영혼의환
    작성일
    09.01.22 12:13
    No. 10

    이곳님///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판타지를 읽는 독자가 많다는 것, 저도 공감합니다. 저도 가끔 스트레스가 쌓이면 먼치킨류의 소설을 찾아 읽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독자들이 나이가 들고 눈높이가 높아지면 판타지를 멀리하고 순수 문학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 이 점과 연관시켜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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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5 에버
    작성일
    09.01.22 23:22
    No. 11

    좋은 글에 이은 영양가 있는 댓글들을 보며 많은 것은 생각해보고 또 배워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초심짱
    작성일
    09.01.24 16:36
    No. 12

    영혼의환님 //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수준의 작품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작가의 글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환경으로 인한 문제다 라는 것을 동의하셨으니 다음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독자는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보고 자신이 가장 감동을 느낀 책을 사게 됩니다. 지금 시장이 10대와 도서 대여점을 위주로 돌아가게 된 것에는 주제의식이 결여된, 흥미위주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흥미위주의 소설은 일회적인 쾌락은 제공할 수 있으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인 감동과 교훈, 재미를 주지는 못합니다. 그 결과, 독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판타지는 구입할 필요가 없는, 빌려서 읽고 그 순간 재미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 먼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재미와 쾌락은 그 의미가 비슷하더라도, 그 인식은 엄연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장르소설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있지만, 쾌락을 기대하거나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쾌락이라는 단어는 그 인식상 성인물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로,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영혼의환님은 장르소설을 읽으시며 쾌락을 느끼신적 있으십니까? 장르소설을 읽고 쾌락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놈이라는 소리 듣기 딱 알맞습니다. 흥미위주의 소설을 비판하고자 하는 영혼의환님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것을 비하시키는 모습은 작가와 독자를 모두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내용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요즘 나오는 일명 양판소와 같은 흥미위주의 소설은 일회적인 재미를 제공하지만, 감동과 교훈까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독자들은 이러한 장르소설을 구입할 가치가 없는 빌려 읽는 소설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양판소에 대해서 한정해서 말씀하신다면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혼의환 님 댓글의 주장입니다.
    [지금의 판타지 출판 상황은 시장성만을 쫓다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를 잊어버린 상황입니다. 초심짱님께서는 작가가 주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하시면서 질보다는 책의 흥행을 위한 선택일 뿐이라 강변하셨지만, 진짜 작가라면 자신의 주제의식과 흥행을 함께 잡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팔리기 위한 책을 쓴다면, 그것은 제가 글 말미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는 글로써 이야기해야 한다”는 격언을 잊어버린, 자본에 작가의 영혼을 판 행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작가가 영혼을 팔아 버린 것 보단 주제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쪽이 그들을 위해서 더 나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번 팔아버린 영혼을 되찾는 것은 어렵지만 영혼을 탐색하는 쪽이 더 쉬운 일이니까요.]

    작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영혼의환님은 작가가 가야 할 방향은 그 안에 내용(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흥행을 노리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하셨죠. 이에 공감하며, 저도 내용이 알찬 글들이 시장의 다수를 차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그런데 "작가는 글로써 이야기해야 한다."는 근거를 내어놓고, 힘을 부각시키는 내용으로 흥행만을 노리는 글을 쓰는 것은 자본주의에 영혼을 판 행위다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장르소설의 태생이 감동과 교훈을 통한 재미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상문학은 환상이라는 설정에 바탕을 둔 재미라는 요소를 부각시킨 장르라고 봅니다. 단지, 여러 작가들이 각각의 생각을 글로 내놓다 보니,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부각되는 글도 있고, 인간의 관계(복수, 사랑, 우정, 효 등등)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나타난 것이지요.

    필수요소는 '재미'고, 선택요소가 '감동'과 '교훈'쯤 되겠지요. 그런데 재미만 부각시키는 글을 쓴 작가들을 자본에 영혼을 판사람이라고 매도 할 수 있나요? 오히려 재미없게 글을 쓴 것에 머라고 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요? (그럼 안보면 되겠지요)
    저는 흥미위주의 글을 쓰는 작가도 대다수의 독자층이 있는 10대 중후반 20대 초반에게 "자신의 글로써 재미를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가 나온 발상은 대략 이해가 갑니다. '성인들이 생각하기에 힘만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고, 그러한 인식이 환상문학을 저질로 보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이겠지요.

    재미를 찾다가 환상문학으로 찾아온 사람이 그 글을 읽고 감동을 느끼고나서 '와~ 글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네.' 하고 놀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왜 장르문학이 재미만 추구하냐고 타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도 질을 높여보자!' 이러한 주장은 동의합니다.
    '너희는 질이 낮아. 그러니 너희는 나뻐!' 이런 주장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드래곤라자를 쓰신 이영도님 같이 모든 작가분들이 필력이 뛰어납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요. 모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여길만한 필력을 가지신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주장을 하시려면, 장르소설의 작가가 "왜" 영혼의환님이 가진 기준에 맞추어서 글을 써야하는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르소설의 위상이 높아지기 위해서 라는 대답은 공감이 안갑니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이 쓴 글의 장르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요.

    한 독자가 자신에게 맞는 질 높은 글을 원하듯이,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어줄 많은 사람을 원합니다. 그런데 현재 시장의 상황에서 상당수 작가들이 (그것이 자신의 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든 어떻든)그 두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흥행위주의 글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작년에 카디스라는 책이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힘(마법이나 검술)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저주를 받아 죽지 못하는 자가, 자신이 죽지 못하는 이유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신들에게 답을 구하는 여행을 주 내용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담백하고 건조한 어체로 주인공의 심경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현한 이 작품은 제게 여러번 읽을 만한 감동적인 책이었고, 구입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저와 다르더군요. "읽기 어렵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작품 같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 이런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도 흥행도 저조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현재의 시장이라는 애기입니다.

    영혼의환님의 장르문학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에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만, 작가들이 처해있는 출판시장의 현 상황을 본다면 "왜 두마리 토끼를 다 잡지 않느냐?"는 타박은 공감하기가 어려운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여겨집니다.

    2)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몇몇 문학작품이나 설화까지 들어서 예시로 드는 수고를 하셨는데요. '판타지가 우리나라 성인들의 보편의 정서에 많이 접근해 있다라는 공감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예시만 가져다 대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배경지식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만, 그 근거의 내용은 일반인들과 별 관계가 없는 내용들과 비교불가능한 설화들이죠.

    단적으로 주몽설화와 견휜설화 서동요, 홍길동전과 판타지 소설을 일반 성인들에게 동시에 갔다주며, 비슷한 장르*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까? 이런 것들이 드래곤이 나오고, 엘프가 나오고 마법을 사용하고, 칼싸움 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는 전혀 도움이 안 될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그에 대한 단편적인 근거 하나를 바로 오늘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골든베스트 순위에 있는 글중 에뜨랑제라는 글을 올려놓으신 요삼님이라는 분이 가장 최근에 써놓으신 글(에뜨랑제 125화)의 후기에 일반인들이 환상문학 이른바 무협소설과 판타지 소설에 대해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적어놓으신게 있더군요.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절대적인 시각이라고까지 얘기하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대다수의 시각은 이렇다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너무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제가 그 분의 글을 보고 베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결론적으로 영혼의 환님이 쓰신 글은 장르문학의 위상이 높아지기 위해서 힘을 추구하는데 모든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글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교훈과 감동도 함께주는) 여러 이야기를 담은 내용 있는 글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취지인데요.

    현재 출판시장의 상황과 그에 대해 대응하는 작가의 현실문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나, 일반인들이 환상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차이가 많이 나서 공감하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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