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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르문학의 상황과 추구해야 하는 방향
-판타지를 중심으로
장르문학에서 힘의 추구와 관련한 일련의 토론을 읽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지금 토의는 장르문학, 그 중에서도 판타지와 무협지의에서 힘의 추구가 옳은 것이냐에서 힘을 추구하는 것이 주제가 될 수 있느냐로 넘어 왔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토의는 장르문학의 질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무척 중요한 얘기입니다. 저는 이 토의가 두 가지 측면에서 장르문학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장르문학에는 주제가 있는가, 있다면 그 주제는 현대 문학 전반과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는 장르 문학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문학적 보편성인지 장르적 특수성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두가지 측면의 문제를 판타지와 무협 모두를 아울러 다루면 좋겠지만 제 식견이 짧아 판타지에 한정해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전개될 논지를 요약하자면 저는 일단 현재 장르문학(이하 판타지)에는 그 주제의식이 무척 희박하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할 것입니다. 이는 기타 현대 서사 문학과 비교했을 때 판타지가 태생적 한계로 보편 독자의 공감을 얻는 내용이 아닌, 특수 독자에게 한정된 장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판타지가 당당히 장르문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보편성을 추구하는 작품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 주장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자세하게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이하 평서체로 글을 쓰겠습니다.)
1. 판타지엔 주제가 있는가
1-1. 서사문학의 주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판타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장르가 문학에서 어떤 범주에 속하는 지를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장르론은 단순한 분류학에 그칠 수 없고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문학계에선 각 장르의 구조를 투시하고 이를 기초로 갈래를 설정해 둔 상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장르론은 작품 속 자아와 세계의 관련 양상을 바탕으로 서정, 서사, 교술, 희곡으로 나눈 문학 4분설이 있다. 이 중 소설은 서사 갈래의 하위 장르로 설화, 전설, 민담 등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우리는 판타지가 소설이라는 점엔 동의하고 있으니 판타지를 서사 갈래의 한 장르로 포함시키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 문학의 보편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서사는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로 정의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서사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가 의도하고 구성한, 현실 세계의 한 단면을 그려낸 세계와 갈등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등장인물(인물)이 작가가 꾸며낸 세계(배경) 속에서 갈등을 겪는 것(사건)이 바로 서사다. 이런 것은 주몽 설화와 같은 건국 설화에서부터 현대 소설까지 계속되는 서사의 장르적 특성이다. 건국 설화는 주인공의 신이한 능력을 부각시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왕권을 획득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런 예는 비단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활약이 뉴스 보도되는 등 동일하게 작용하는 양상이기도 하다) 현대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갈등을 겪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 때 작가는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일부러 현실 세계를 왜곡시키고 변형시켜 주인공과 갈등을 일으킨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작품 속 현실과 융합하거나 상반하며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는 판타지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판타지 작가는 세계를 재창조 하지만 이 재창조된 세계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해 만든 것이라는 점에선 다른 분야의 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굳이 현실을 변형해 세계를 재창조 하는가 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는 작가가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작가는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내 작품 내의 세계를 구축한다. 건국 설화는 창업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시조(始祖)가 기이한 태상과 신묘한 능력을 이용, 건국 과정의 장애를 극복해 결국 나라를 창업하는 과정을 그려 낸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경우에도 나와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기 위해서 작가는 소작농의 삶과 당시 농촌 현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재창조한 세계는 주제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기본적인 세계 안에서 주인공이 겪는 일을 통해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1-2. 판타지의 세계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가
판타지는 위에서 서술한 작가에 의한 세계의 재창조가 극으로 달린 문학이다. 판타지의 작가는 세계를 완전 새롭게 창조해 낸다. 새로운 땅을 만들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와 드워프, 오크, 엘프와 같은 종족을 비롯해 마법과 새로운 신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 세계도 모두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사고 방식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고 그 기본적인 세계는 현실의 중세 혹은 고대, 근대 유럽의 생활 양식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판타지도 결국엔 현실의 모습을 재창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작가는 이런 세계를 재창조해 냈다면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판타지는 그런 작가의 생각, 세계를 재창조한 이유, 즉 주제를 잊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 스스로가 세계를 창조해 낸 당위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이번 논의의 시작이었던 ‘힘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수준에 머무는 작품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제의식이 결여되거나 약화된 판타지 소설이 늘어나면서 판타지는 주제의식이 분명한 양질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이 삶의 이면 탐색이라는 소설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비주류 문학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나는 판타지가 이런 문제를 안게 된 것은 우리나라 판타지의 태생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판타지의 확산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초창기 PC통신의 확산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PC통신 게시판엔 지금과 같은 인기작가들이 존재했고 그 인기를 등에 업고 <바람의 마도사>나 <데로드 앤 데블랑>, <하얀 로냐프 강>과 같은 작품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도서 형태의 출판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층을 확보하던 판타지가 폭발적으로 독자와 작가층을 형성하게 된 것은 인터넷의 보급이었다.
다자간 정보 교환과 사용자 주도의 컨텐츠 생산을 골격으로 하는 인터넷은 독자와 작가를 정확하게 구분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독자가 작가가 되고 작가가 독자가 되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작가는 일약 스타가 되고 작품이 출판되었다. 게시물의 조회 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조회 수가 높은 작가는 그만큼 재미있는 글을 쓴다는 뜻으로 간주되었고 조회 수가 낮은 작가는 그만큼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 조회 수와 인기에 신경을 쓰면서 본래 인기 있던 작품과 유사한 내용, 문체, 설정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판타지와 무협의 결합, 새로운 유형의 판타지 등장과 같은 순기능도 있었지만, 결국 이런 현상은 일회적 쾌락을 추구로 이어져 심미적 가치는 등한시하고 재미만 추구하는 판타지를 양산하는 계기도 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다수의 양질의 작품이 등장했지만 이 시기에 주인공의 힘이 어마 어마한 소위 먼치킨류의 판타지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현재에 와서는 이런 현상이 많이 정화되어 충실한 세계관과 개성이 강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판타지의 주제의식이란 숙제를 풀지 못한 작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판타지는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과 주제로 채워지지 못하고 읽는 사람만 읽는 흥미 위주의 소설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현상들 속에서 주옥같은 작품들이 통속 소설로 치부되어 외면받고 있다.
2. 판타지는 문학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판타지 작가들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통한 삶의 의미 탐색이라는 문학 보편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가가 세계를 창조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다수의 독자에게서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인간 보편의 삶과 그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차적인 이유는 학생들에게 문학적 심미안을 기르기 위해서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이 소설을 배워서 자신이 사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찾아 그것을 듣고 읽는 이에게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이다. 우리는 현재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판타지는 소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판타지를 아끼고 사랑한다. 판타지가 오랫동안 지속되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판타지가 소설 장르의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자는 판타지의 가치를 판단하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영혼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명필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을 늘 반복하며 판타지를 쓰고 또 좌절한다. 그러나 잊지 말자. 글쓰기의 오랜 격언처럼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를 인식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양질의 작품이 나올 때 판타지도 재평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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