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매번 비슷한 구도.
이건 동감입니다. 다른 작가도 한다는 말은 변명일 뿐이니까요.
점점 퇴화하는 문장.
퇴화는 아니죠. 퇴화라고 하려면 글의 수준이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지거나 전작보다 못해야 합니다. 단문이 문제가 아니라 글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단문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내포하는 것이 없는 건 글의 성격상 당연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구성.
개개인의 취향을 많이 탄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의 인과율이죠. 이야기 자체가 얼마나 정합성을 유지하느냐가 소설의 구성보다 중요합니다. 적어도 무협, 판타지라고 불리는 대중통속소설에서는 말입니다.
천년용왕을 길고 긴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대중통속소설이 이야기가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보시는가요? 혹시 인간 내면의 갈등을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의 단계를 따라서 독자에게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순수소설의 역할을 기대하시는 건가요?
물론 대중통속소설 중에서도 그런 명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년용왕이 명작이 아니라고 해서 퇴화니 바람직하지 못한 구성이라는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천년용왕은 '잘 쓴 이야기'입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고 역사에 회자될 훌륭한 이야기나 위대한 이야기까지는 아니지만 잘 쓴 이야기임은 확실합니다.
만약 표사 이후로 다른 글 없이 천년용왕이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평가를 받을까요? 이런 가정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인정합니다만 굳이 한 이유는 천년용왕에서 작가가 최적화가 이루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매번 비슷한 구성이었다는 기록이 대중통속소설에 가장 알맞게 진화한 모습을 가리고 있는게 아닐까요.
저는 천년용왕을 황규영 작가의 새로운 출발지점으로 보고 싶습니다. 오히려 참마전기가 천년용왕과 똑같을 지를 걱정하고 싶습니다(읽어보니 좀 많이 걱정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글을 쓰던 작가도 두세 번 글을 망치면 욕을 들어먹습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구성의 글을 남발했다는 기록이 새 글의 발목을 잡을 이유는 없습니다.
단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문을 남발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문을 남발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무엇인지, 저자가 무엇을 의도하며 단문을 사용했는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여깁니다. 다만, 단문 남발에 딱히 그럴싸한 의도가 보이지 않거나, 또는 그리 좋지 못한 의도로 비춰지는 것이 천년용왕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글에 내포된 것이 없다, 단문이 남발되었다, 결국 동일선상의 문제이나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단계는 비단 인간 내면과 주제를 드러내며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필요한 구성이 아닙니다. 결국 그 역시 궁극적으로는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야, 긴장감의 고저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천년용왕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겪지 않는 주인공, 위기가 없는 사건, 이것에 무슨 긴장감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이야기가 독자에게 재미를 얼마나 줄 수 있을지요.
천년용왕은 전부가 단문입니다. 남발 정도가 아니죠. 그렇게 한 이유는 작가만이 알겠지만 저는 필요없는 부분을 잘라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나오는 무협, 판타지의 99%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설정집입니다. 아무리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해도 작가가 직접 나서서 일일이 해설해주는 건 소설이 아니라 설정집을 출판한거지요. 그런 면에서 천년용왕은 내적 갈등에 집중하는 소설의 장기가 아니라 보여주기에 집중하는 영화적 글쓰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물론 이게 완성형일 수는 없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더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으면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죠. 이렇게만 봐도 천년용왕의 단문 남발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는 (소설에서) 작가의 생각을 등장인물을 통해 알고 싶은 거지, 작가의 고백을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고백은 적어도 대중통속소설이 아니죠. 천년용왕은 단문을 이용하여 주인공의 모습에 집중하게 합니다. 굳이 힘들여 생각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읽다 조금 어색한 부분이 나오면 바로 그 다음 단락에 역시 단문으로 그런 이유를 보여줍니다.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이런 게 천년용왕에서 단문의 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의 재미를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뻔한 얘긴지 알지만 일부러 시간 들여 앞으로 자신이 보게 될 것이 무언가 정서적으로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응시하는 의식이라고요.
천년용왕에 6권 전체를 아우르는 산처럼 커다란 주요 갈등의 구조가 없는 건 맞습니다. 대신에 한두 장(章)을 대상으로 발단 전개 갈등 위기 결말의 언덕같은 소소한 긴장감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천년용왕이 4권 정도로 끝났다면 좀더 긴장감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만약 천년용왕이 노블레스 클럽의 책처럼 두꺼운 한 권으로 나왔다면 긴장감의 큰 변화란 얘기가 맞아들어갔을 겁니다. 독왕지혼의 부분이 한 권으로 본다면 충분히 위기 부분에 해당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천년용왕이 너무 길었다는 하신다면 동의하겠지만 긴장감의 변화가 없다거나 의미없는 단문의 남발이라는 데는 동의하기가 힘들군요. 단문마다 단락을 끊은 게 차라리 더 문제이죠. 단락 이용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2권 정도로 압축한다면 천년용왕은 잘 쓴 이야기입니다. 단점은 그렇지 못한 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천년용왕은 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독자에게 거부감없이 먹혀들 수 있을 정도의 몰입감을 제공했습니다. 특별히 시대 배경이 언제인지 궁금해하지 않도록 단문을 이용하여 빠르게 글을 끌고 나갔습니다. 전형적인 구파일방을 벗어나면서도 신경쓰이지 않도록 깔끔한 구성을 보여줬습니다. 음지에서 현대까지 전승되어온 문파라는 구태의연한 설정을 벗어나 양지에서 펼쳐지는 현대 배경의 무협을 자연스럽게 보여줬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글이 늘어지지만 적당한 선에서 결말을 맺는 절제력도 보여줬습니다. 이 정도면 전작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다시 한번 미래를 기대해 볼 만하지 않나요.
뭐 그렇다고 천년용왕이 훌륭하다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전작의 멍에와는 상관없이 자체로만 평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잘 쓴 '이야기'라는 건 확실합니다.
Commen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