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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an
작성
08.02.22 20:56
조회
3,138

작가명 : 허담

작품명 : 고검추산 - 황금선 上 下 -

출판사 : 청어람

1.

매번 나올 때마다 읽고 있기는 하지만... 고검추산만의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을 지닌다는 것 정도인데, 그조차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청부가 들어오고, 해결한다. 이 해결과정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고검추산이다. 강호의 일이다보니 드러난 것과 속사정은 다르고, 그러한 비밀을 벗겨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 류의 스토리에 필수적인 게 뭘까. 바로 '긴장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 흩어져있는 단서,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음모, 한걸음씩 진실에 가까워지는 주인공과 그들을 덮치는 위기, 기지와 무공을 통한 극복, 어느순간 드러나는 충격적인 전모.... 이런 것 아닐까.

과연 고검추산에 이런 맛이 있는가. 없다. 없으니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2.

분명 사건의 배후에 음모는 존재하지만 <독자들이 추리하기도 전에 이미 다 밝혀진다.> 사건 중간쯤에 흉수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전면에 나서서 사건해결에 힘쓰는 이들은 사패四覇와 사건 당사자들이고, 무불장의 청부사들은 오히려 '아웃사이더인양' 뒤에서 기회를 노리며 가끔 조언을 해줄 뿐이다. 전투는 끊없이 이어지지만 긴박감은 없다. 싸우고 도망치고, 싸우고 도망치는... 의미없는 전투의 연속.

그나마 황금충으로써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은 추산이 적의 은신처를 추리해내는 부분 정도이고, 그것조차 중요한 반전이라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추산이 밝혀내기 전에 독자들에게 다 알려주기 때문에 답을 알고 시험을 치르는 격이다)

이번 황금선 에피소드를 요약해보면 배가 실종되었고, 청부를 받아 해결했고, 그 와중에 A와 B가 꾸민 음모가 드러났고, C라는 암중세력의 존재가 밝혀졌다 정도다. 겨우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 밖에 안된단 거다.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쥘 부분도 없었고 감탄하지도 않았다. 아 그런 내용이구나 하면서 읽을 뿐.

3.

고검추산은 분명 옴니버스식이고 표면적으로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볼 때, 허담님은 각 에피소드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마음속에 그려놓은 커다란 밑그림을 조금씩 내보이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다.

각각의 사건해결과정에 기승전결을 넣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큰 줄기의 일부로만 취급하기에 이같은 모습이 나오는 거라 본다. 황금선 사건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면 지금처럼 미리 흉수의 입을 통해서 반전이란 반전은 다 까발리는 식의 전개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숨기고, 미묘하게 복선을 깔고, 살짝 독자의 시선을 흐트리면서 깜짝효과를 노렸겠지.

강호전체의 정세변화, 특히 사패四覇가 지배하는 현 체제에 큰 격변이 있을 것을 암시하는 역할이 더 컸기에 지금같은 밋밋한 전개가 된 것이다. 안정되어 있던 사패체제에 변화가 오며 미묘하게 흔들리는 강호의 모습도 좋긴 하다. 하지만 기껏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여 에피소드를 짜면서, 실제로는 장편소설 쓰듯이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4.

그 외에 지적하고 싶은 점은, 촛점 분산이 심하다는 것. 장르소설 독자 대부분이 한사람만 미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멀티 주인공 체제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고검과 추산이라는 2명의 주인공을 내세운데 이어서, 이번에는 사건에 투입된 무불장 고수들 거의 전부가 각자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조호연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고검은 거의 활약이 없었고, 추산은 한두번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 다이다. 그렇다고 다른 무불장 고수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도 아니니, 막상 다 읽고 나면 사건의 흐름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촛점이 분산된 만큼 개개인은 희미해진다는 거다. 장르소설에 있어 이건 커다란 약점이 아닐까.

그리고 [작가 스스로 네타하는 듯한 전개]는 정말 고쳐야 할 점이라 본다. 난 궁금해 하면서 글을 읽고 싶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손에 땀을 쥐며 읽고 싶다. 어떤 음흉한 계략이 숨어있는지 추리해가며 읽고 싶다. 뻔한 내용일지라도 어쨌든 알기 전까지는 즐겁지 않은가.

암옥의 제왕도, 백일검 이야기도, 이번 황금선도... 지나치게 친절하고 단선적인 구조라 반전이랄 것이 전혀 없다. 특히 황금선에선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마다 반전이 미리 까발려질 뿐 아니라, 제목부터가 심각한 네타나 다름없다. 독자 머리 위엔 항상 물음표(?)나 느낌표(!)가 떠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검추산을 읽을 때는 말줄임표(...)가 뜬다.

5.

독립된 에피소드 속에 일관된 흐름을 숨겨넣는 기법은 라이트노벨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성방식이다. 하지만 라노벨은 각각의 에피소드에도 힘을 쏟는다. 고검추산도 그러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 거라 본다. 부디 다음 이야기는 내 머리 위에 수십 개의 물음표, 느낌표가 뜨게 하기를...


Comment ' 13

  • 작성자
    비성
    작성일
    08.02.22 21:03
    No. 1

    확실히 결말이 쉽게 예상되는 부분은 너무 아쉬웠습니다. 고검추산이 추리소설적인 기법은 도입한 부분은 좋았지만 역시 그 궁금증을 글을 읽는 중간에 미리 다 풀어버리게 되니 결말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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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윤하늘아래
    작성일
    08.02.22 21:15
    No. 2

    아직까지의 소설 전개에선 산산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후에 나올 내용들에 대해 기대를 가져봅니다.
    아직 소설이 진행중이고, 전체적인 틀에서 보자면 아직 '발단-전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절정' 부분에서 크게 터져 줄 날을 기대해 봅시다.^^
    (이런 저런 눈에 밟히는 부분도 많지만 요즘 쏟아져 나오는 소설 중에서는 단연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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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天下無上
    작성일
    08.02.22 23:36
    No. 3

    좋은 글이지만 뭔가 담담한 내용전개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예들 들자면 바다처럼 시시각각 풍랑이 일고 변하는 환경이 아닌 커다란 호수같이 스케일은 크지만 잠잠하다고나 할까요.
    장르소설의 어떠한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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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8 대마21
    작성일
    08.02.22 23:53
    No. 4

    저 또한 산산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부족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설레임을 주는 작품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미지근한 물같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줄지 기대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운보
    작성일
    08.02.23 00:29
    No. 5

    정말 공감가는 비평이네요..허담님이 고검추산에 담으신 여러가지 선택(복수의 주인공, 에피소드식 전개, 무림의 핵심에서 한발짝 물러서있는 주인공집단, 추리적인 내용의 삽입)들이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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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금원
    작성일
    08.02.23 02:30
    No. 6

    동의합니다. 주인공들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지 않죠. 결국 끼어들지만, 지켜보기만 할뿐, 도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주인공이 관찰자의 시점인 소설은 많지만, 그 글들은 일관된 면이 있죠. 관찰자가 보는 일정한 대상이 있다는 것이지요. 글속의 실질적 주인공이라던가 말이죠.
    제 생각엔 작가분인 청부업자라는 것에 너무 목을 매단듯이 보이더군요. 글에서도 티가 많이 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고스톱황제
    작성일
    08.02.23 03:26
    No. 7

    왕 이번 비평은 동감이 가네요.
    뻔히 주적이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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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 Supreme...
    작성일
    08.02.23 08:47
    No. 8

    확실히 황금선 편 읽을 때 별다른 긴장감 없이 후딱 읽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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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mo
    작성일
    08.02.23 15:16
    No. 9

    동감합니다.
    <고검추산>엔 긴장감이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노릇입니다.

    허담 님의 글을 좋아하며, 신간들을 챙겨 읽고 있긴 하지만,
    <신기루> 1,2권만한 포스가 그 이후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듯 싶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옴니버스 구성이긴 하지만, 결국은 큰 궤도를 따라
    진행되고자 하는데 더 초점이 있는 듯...
    (제법 장편이 될듯 여겨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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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 LadyY
    작성일
    08.02.23 19:34
    No. 10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고검과 추산의 활약이 크게 부각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사부인 천검의 배후에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대모'라는 인물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미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집단이 그 '대모'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모'도 천하팔대고수 중 하나이거나 또는 그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천하사패의 지배력이 약해지고 사패의 체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머지않아 그들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같은 세력 안에서도 서로를 견제하고 시기하고 심지어 밀어내려고 하기에 썩은 물이 고이고 종기가 곪아 버리듯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아지면 언제 사단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니까요. 만일 천하사패에 분열이 일어나서 강호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면 오히려 고검과 추산에게는 그들이 본격적으로 강호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진명(震鳴)
    작성일
    08.02.25 21:00
    No. 11

    ㅋㅋ 산산님 오랜만에 오타를 보이셨군요.
    고검추산은 뿔미디어가 아니라 청어람입니다.
    허담님은 처녀작인 황벽과 철괴여견자를 제외하고는 줄곧 청어람에서 나왔죠. 좋은 비평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SanSan
    작성일
    08.02.25 22:51
    No. 12

    아 전 YES24에 표기된 [청어람(뿔)] ← 이렇게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쓴 거긴 한데 ^^; 오해의 여지가 있는 듯 하군요. 수정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희겸
    작성일
    10.03.31 23:37
    No. 13

    작품설정상 필연적으로 고검과 추산의 비중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일단 고검과 추산은 청부사, 즉 용병입니다. 그리고 사건은 의뢰를 받아 수행되어지죠.
    그 말은, 애초에 그들이 주역이 아니란 얘기와 같습니다.
    무불장 식구들은 주역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사패에 속해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그들과의 마찰도 피해야 하니 행동 하나하나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역시 추리의 결과가 너무 일찍 나오는 것은 아쉽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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