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쥬논
작품명 : 앙신의 강림
출판사 : 북박스
먼저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저는 장르소설에 입문한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초보독자이며, 앙신의 강림은 제가 세번째로 본 장르소설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훌쩍 지난 지금 이렇게 비평글을 올리는 이유는 앙신의 강림을 '다시 봤기' 때문입니다.
처음 앙신의 강림을 보았을 때, 저는 앙신의 강림을 살육과 파괴로 점철된 수준 이하의 글로 평가했었습니다. 그리고 몇 일 전까지 그 평가는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앙신의 강림을 다시 보게된 이유는 아마도 이젠 제가 장르소설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앙신의 강림을 읽기 전까지는 저는 감수성 예민한 문학소녀(?)였고, 장르소설도 입문작으로 추천받은 드래곤라자나 룬의 아이들 밖에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살인과 악의가 휘몰아치는 장르소설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잔인함에 질렸다는게 아닙니다. 그 '빈도'에 질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야 겨우 장르소설을 보다 장르소설 독자다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 기념으로, 앙신의 강림을 첫타로 비평하고자 합니다.
1. 장점
앙신의 강림의 최대 장점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은 마지막 반전과 스타일을 첫 순위로 꼽습니다. 하지만 쥬논님의 반전과 연출은 조금씩 단점이 있습니다. (단점 항목에서 꼽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안정적인 문장력과 흔들림이 없는 스토리라인, 캐릭터를 꼽습니다.
앙신의 강림은 장르소설 중에선 보기 드물게 비약을 극도로 억제한 소설입니다. 아주 굳건한(?) 스토리 라인을 타면서 곁길로 새는 법이 없습니다. 소위 '반전'이라고 불리는 결말마저 계속해서 암시되죠. (이러한 탄탄한 구성능력은 결국 쥬논님의 모든 글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문장력 또한 수준급입니다. 확실히 쥬논님의 문장은 눈에 띕니다. 유려한 미문이나 자로 잰 듯한 완벽한 문장은 아니지만 '쥬논의 독특한 감각'이라는 것이 묻어나는 문장입니다. 게다가 묘사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스피드감을 잃지 않는다는 엄청난 강점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가독성이 중시되는 장르소설계에선 무시무시한 강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슬프게도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캐릭터들은 아니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것에 충실합니다. 가끔 글을 읽다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캐릭터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이 나오는 글들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고정된 역할이란게 있긴 있는건지, 그냥 작가가 버리기 아까워서 계속 재활용을 하는건지 알 수가 없는 캐릭터들, 꼭 하나쯤은 있습니다. 하지만 앙신의 강림에는 그런 캐릭터가 없습니다. 각자 주연 시르온을 부각시켜주기 위해 특색없는 담담한 색채로 앙신의 강림 특유의 어두운 갈색톤을 유지합니다. (조연에 특색이 없다는 것은 단점이 아닙니다. 앙신의 강림처럼 주인공에게 모든게 집약되어야 하는 글은 특히나 조연이 튀어버리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역시 여자는 성욕의 대상물에 불과하고 적들은 무능한 점이 맘에 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생리적 거부감 수준이니까요.)
2. 단점
앙신의 강림은 분명 재밌는 글이고 추종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단점은 단점입니다. 단점을 지적해도 '완전한 글이 어딨어. 이만큼 재밌으면 됐지!'라는 반응이 나오거나 매장(...)당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전 꿋꿋하게 쓰렵니다(...).
앙신의 강림의 최대 단점은 우습게도 연출면입니다. 쥬논님은 아주 스타일리쉬한 글을 써내려가는 분이시고 화려한 감각마저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연출 가운데는 부분부분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도 있고 또 좋은 요소가 지나쳐서 독이 된 점도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을 부각시키려는 연출이 과합니다. 거의 찬양조에 가까운 연출은 약간 비릿한 맛까지 느껴집니다. 주인공에게 많은 권능을 주어서 그것을 하나하나 개방할 때마다 멋진 연출을 넣어주는 것은 좋지만 아무래도 절도가 없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화려한 문장일수록 어느 정도 선에서 끊는다는 느낌이 있어야하는데 결국 문장에 휘둘리듯, 한도 끝도 없이 '공포와 살육을 찬양하는 듯한' 연출이 따라붙는 것이 앙신의 강림의 연출입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형상의 묘사에 치중한 연출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오히려 쥬논 특유의 '압도, 살육, 광란' 코드를 좀 더 살렸어야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추가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앙신의 강림이라는 소설에서 가장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것은 망혼벽에 봉인된 망령들의 권능이 드러날 때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여기서 쥬논님의 최대 미스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망혼벽에서 권능을 끌어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욱 더 강하고 많은 권능이 뛰쳐나오는 후반부로 갈수록 포스가 떨어집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너무 많아서 입니다.
물론 망령들의 권능 종류도 너무 많은 감이 있지만 그런 의미의 많다가 아니라, 한 장면에 동원되는 능력의 숫자가 너무 많고 또 권능이 너무 자주 사용됩니다. 나중으로 가면 갈수록 권능의 사용은 빈번해지고 한번에 여러 망령의 권능을 끌어내는 시르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게 무슨 매력이 있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관심사가 그쪽이다 보니, 차림새를 예로 들겠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드레스에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려버리면 매력이 죽습니다. 몸의 맵시도 가려지고 시선도 분산이 되어버리죠. 보석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야회 때 초보(?)들이 자주하는 실수가 자기가 가진 가장 멋진 장신구들과 옷으로 몸을 장식하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차림새든, 글이든 포인트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시르온은 그저 능력을 퍼부어대는 미사일 포대 정도로 전락합니다. 전혀 포스가 살지 않죠. 그냥 불꽃놀이식으로 능력을 남발합니다.
제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장면인 '번개맞는 시르온(...)'을 예로 들어보죠. 사실 전 이 장면이야말로 앙강 최고의 연출빨을 받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군터 자이츠의 힘으로 무수한 번개 속에서 홀로 버티고 있는 시르온. 땅마저 녹아내리고 하늘에는 새하얀 뇌전이 번뜩이는데도, 시르온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 장면에서는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일종의 강렬한 전조가 느껴집니다. 그 다음 펼쳐질 시르온의 분노에 찬 맹공세가 불러올 참극의 전조가 피부가 저리도록 느껴집니다.(사실 여기서 바텐키움의 재생능력이 사용되었지만, 군터의 피부만으로 버티다가 번개가 그쳤을 때 마치 '불사신'처럼 바텐키움의 재생을 사용하면서 이를 가는 열받은 시르온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백배는 처절하고 맹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쥬논님은 아마도 망혼벽 망령들의 권능에 엄청난 애착과 자신감을 품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나하나는 뻔한 소재지만 그것들을 모두 합치면 분명 '와, 뭐가 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소재지요. 하지만 그것의 사용이 너무 지나쳐 버리면 오히려 박력이 떨어집니다.
또 하나의 단점은 아무래도 모든 것이 집약된 듯한 주인공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시르온의 귀족적 교양이나 전술은 별 볼 것이 없습니다. 리얼리티의 구현에 힘쓴 정성이 옅보이는 앙신의 강림 치고는 너무나 허술한 '주인공 띄워주기'입니다.
본래 고위 귀족은 할 일은 없고 돈과 시간은 남아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것이 댄스과 술, 요리입니다. 시르온이 댄스로 귀족적인 교양을 과시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당연하지...) 하지만 술(정확히는 와인)과 요리에 대한 박식함으로 좌중(모두 귀족)을 압도하는 장면에서는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보통 요리가 나오면 그것에 가장 어울리는 와인 정도는 주최자가 반드시 구해놓거나, 혹은 구할 수 없었다면 양해를 구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음식과 와인 각자의 수준 뿐만 아니라 그 조화의 수준 또한 파티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파티의 질은 결국 주인의 체면과 직결됩니다. 체면에 목숨거는 귀족들이 그런 방면의 공부나 준비에 그렇게 소홀했다고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시르온의 전술은 아주아주 기본적인 화공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작 시르온의 카리스마 한 방에 일반 시민들이 전원 버서커로 변해버리는(?) 부분에 대해선, 신의 사자 특유의 신적 카리스마라고 해둔다고 쳐도 고작 화공 한 방에 철저한 준비를 마친 압도적인 군대가 패퇴한다는 것은 적벽대전 식의 드라마입니다. (사실 적벽대전도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인 기반과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만, 시르온이 있던 영지에 적벽대전 당시의 오나라 정도의 조건이 그냥 갖추어져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화공과 매복의 조합은 열세인 군대가 가장 먼저 노리는 책략인 만큼 쳐들어온 군대의 지휘관이 조금만 머리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고려했어야할 사항인데, 시르온의 적은 그러지 않습니다. 결론은 적들은 무능하다는 말 밖에 안 됩니다. 무력은 몰라도 병법은 꽝인 장수가 일군을 지휘했다는 뜻입니다.
앙신의 강림은 제 개인적 취향에는 분명 맞지 않는 글이지만, 깊이 따지고 들지 않고 보면 확실히 재밌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첫 비평이다보니 산발적이고 정돈도 되어있지 않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다 한 것 같습니다.
다음 비평은 천마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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