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떤 분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글을 이상하게 쓴 출판작가의 글을 보아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판이라도 할 재주조차 없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맛없는 빵을 먹어도 제빵사 자격증도 없는 우리는 참아야 하고, 택시기사가 운전을 난폭하게 해도 운전면허증조차 없는 우리(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겠습니다만은 저는 없기에)는 그에 대해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겠군요. 화목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누구도 불평을 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화목한 사회이겠습니까.
그 분의 논리는 차치하고, 저는 작가, 특히 출판물을 출판한 작가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더 엄격하게 비평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출판(出版)물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공인(公人)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회에 메세지를 전하고, 이 메세지는 파급력을 지닙니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응답이며 우리는 이러한 메세지를 작가의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세지에 관해 작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메세지의 방향은 일방적입니다. 사회의 사물이나 현상이 작가에게 심상을 주고, 작가는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꿔 세상에 내보냅니다. 이것을 사회 현상에 대한 피드백(feedback)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정 부분 옳습니다. 하지만 현상을 보낸 주체와 그 메세지를 받는 피사체가 동일하지 못하다는 데서 이 피드백은 다소 복잡한 구조를 띕니다. 우리는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작가의 메세지고, 그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응답은 매우 적습니다. 기껏해야 감상이나 비평 정도가 그 행동이 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이런 존재입니다. 습작할 때는 상관없습니다. 그건 자신의 메세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탄주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현고르기 같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출판은 다릅니다. 그것은 나온 순간부터 그것을 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은 언어가 무력보다 얼마나 더 파급력이 큰 지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작가를 직접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작가를 판단할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메세지, 즉 작품입니다. 그 척도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메세지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언행을 보고 그들의 인격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작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말을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책임없는 자유는 방종일 뿐입니다. 자신의 메세지에, 책임을 지십시오.
p.s. 요즘은 자신이 가진 위치를 자각하지도 못한 채 함부로 '작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긴 합니다. 장르시장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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