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윤현승
작품명 : 뫼신사냥꾼 上
출판사 : 대원
요즈음의 장르소설은 이야기만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그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바빠서, 그 안에 독자의 자리는 없다.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을 들어줄 독자를 다룰 줄 모른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종착점을 향해서 작가 혼자 열심히 달려가는 것 같다. 나는, 독자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함께 달려주지는 않는다.
뛰어난 작가는 독자와 함께 한다. 저기 멀리 도달해야 할 곳이 있고,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그곳까지 나를 능숙하게 데려간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서 어쩔 줄 모르도록, 때로는 미끼를 흔들고 때로는 눈을 가리고 때로는 뒤에서 슬쩍 밀어주면서. 나는 유원지에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처럼 그가 보여주는 세상에 취하고 그 즐거움에 푹 빠져 기뻐할 뿐이다.
이야기는 화자와 청자가 함께 할 때 성립하는 것이다. 혼자 이야기해봐야 독백일 뿐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면 청자와 하나가 될 줄 알아야 한다. 화끈하게 눈길을 끌고, 관심을 모으고, 두근두근 기대하게 만들다가, 슬쩍 애태우고, 살짝 복선을 깔고, 안타까운 암시를 던지고, 꽝 터뜨리고, 능숙하게 정리해 내야 한다. 청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어제 윤현승님의 '뫼신사냥꾼'을 읽었다. 오랜만에 진짜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최근 장르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나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책 속에는 작가의 이야기만이 있을 뿐, 독자의 자리는 없었기에 함께 달려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작품과 나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 갭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뫼신사냥꾼은 그렇지 않았다. 몇 장 넘길 때부터 나의 시선은 책장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세 귀신의 슬픈 이야기 경연 부분에서는 이미 책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세희와 함께 포효를 터뜨렸고, 서리에게 정을 붙이고 말았고, 솔이에게 여성을 느꼈다. 이야기꾼 윤현승님이 1권 끝이라고 선언한 그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먹귀였고 세희였으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였고, 또한 이야기꾼과 한몸이었다.
밀고, 당기고, 맺고, 끊으며, 숨기고, 드러내고, 늦추고, 몰아치고... 그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 줄 알고 있었다. 독자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뫼신사냥꾼의 세계에 초대받은 아이였다. 오로지 나를 위해 준비된 그 세계에서,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창조된 그 세상에서, 마음껏 뛰놀았고 마음껏 울고 웃었다.
지금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그 세상에서 빠져 나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찬찬히 되짚어보면 완전무결한 작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난 완벽하게 그 세계와 하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꾼 윤현승님의 덕분이다. 이렇게 오늘 난 또 하나의 세상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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