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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Comment ' 7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08:22
    No. 1

    명왕전기를 썩 재밌게 보지는 않았지만 비평을 하신분의 글은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글이군요.
    1. 어린아이나 여자가 개연성의 소도구로 쓰인다. 물론 많은 소설에서 그런 점이 있긴 하지만, 명왕전기에서는 별로 그렇지가 않군요. 천산파에 의해 죽은 의동생의 복수를 하다가 질녀를 거두어 들인 것이지 대의를 위해, 협을 위해 라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 어린아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이 각박한 현대에도 대부분이 공감하는 심리입니다. 의협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의 발로 일뿐입니다.
    2. 명왕전기의 신황은 의, 협과는 전혀 무관한 이기적인 인간의 표상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무공을 위해 수많은 강자를 죽이고 돌아다닌 인간입니다. 질녀를 위해 싸움을 하지만 그것 또한 친인을 위한다는 이기심의 발로이지 의와 협에 전혀 관계되지 않았습니다. 죽이다보니 나쁜놈이요 때리고보니 바퀴벌래였다는 결과론일뿐, 신황 자신도 협을 행한다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파괴적인 만족감을 대리하는 것일 뿐, 교훈적이지 못한 소설이지요.
    3. 오히려 요즘소설에 의와 협을 말하는 소설이 거의 없더군요. 그저 결과론적인 의, 결과론적인 협, 일 뿐이지 지 내키닌데로 개판치고 돌아다니는 주인공이 더 많지요. 명왕전기의 신황 역시 의협을 행하려는 목적은 없습니다. 싸우고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의 숙적을 발견했을 뿐.

    이런 의미에서 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별로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 좀더 제대로 소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녹슨칼
    작성일
    06.12.21 09:04
    No. 2

    글을 보니 조금 오해하신것 같습니다.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제대로
    읽었습니다. 다만 끝까지 읽지 않았을 뿐이죠.

    1. 명왕전기의 부분 예를 든것 뿐이지 신황의 삶에 대해 논평한것이
    아닙니다. 의형제를 맺고 의동생이 아마 죽었을겁니다. 게다가 영약
    인지 구해서 전달해주려다 천산파와 다툼이 있었고요. 첫싸움은
    아마 의동생의 죽음을 보고 달려들었을겁니다. 그후론 의형제의
    부인때문이였던가요? 제말은 신황이 때려죽인것이 모두 다른이로
    인해 벌어졌다는것을 말하는겁니다. 글의 진행에 있어서 다른 이를
    매개체로 싸우는것이 모두 연속해서 나온다는겁니다. 물론 명왕전기
    뿐만아니라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죠. 연약한이, 소녀, 여자 모두
    싸움의 원인은 이들에게서 시발점을 잡고 있다는거죠.

    2. 계속 명왕전기를 말씀하시는데 명왕전기의 예는 1번뿐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제가 알수 없는 부분이고요. 파괴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모든 변명은 의와 협으로 위장되어 있다는것을 주장한겁니다.
    의와 협으로 안보일지라도 "내가 기분나빠서" 라는 명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라는 사고로 부터 시작된다는걸 지적하는 겁니다.
    역시 명왕전기의 뒷부분은 모르겠습다.

    3. 그렇습니다. 결과론적인 의, 결과론적인 협입니다. 내가 좋아서
    죽였고 내가 필요해서 죽였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악인이 아닌 포장
    으로 둘러싸인다는겁니다. 악인라도 좋고 무인이라도 좋지만 스스로
    의 의지에 의한 피를 손에 묻혔다면 소설에서 작가가 위장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개념없이 개판치고 돌아다닌다고
    하더라도 본인(주인공) 스스로 책임을 지는것이면 상관없다고 생각
    합니다. 마지막으로 명왕전기는 앞부분만 읽었다고 말씀드렸고
    명왕전기에 국한해서만 쓴것은 아닙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09:44
    No. 3

    많은 소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급한 일반화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소설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소설을 예로든 것도 조금 그렇군요.

    권선징악과 의와 협을 많이 다룬 구무협도 그렇지만 요즘의 많은 소설들이 의와 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의협, 쉽게 말하지만 정말 힘든 일이지요.
    균형이 잡힌 세상에서 한쪽을 악으로 밀어붙여 정의를 행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일뿐입니다. 한쪽의 정의는 한쪽의 악일뿐....

    요즘 세상에 맞춰 예를 든다면, 지독하게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이 있어서 특별한 힘을 가진 개인이 한 노동자의 비참한 착취현장을 보고 힘으로 기업을 때려부셨다. 짧게 보았을 때는 그가 비참한 노동자를 구했다라고 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과연 이게 의협일까요? 그저 자기만족일뿐이 아닐까요? 죄없는 기업자의 가족은? 그 기업의 밑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때러부순 놈이 더한 악이 아닐까요?
    (기업을 방파나 호족, 또는 지주로 생각하고 노동자를 평민이라 생각해 보십시요.)

    현실에서 의협은 말하기 힘들고, 선이니 악이니 하며 타인의 눈에 비치는 것은 상대의 이익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장르소설의 대부분에서는 모든 다른 상관관계를 배체하고 순수하게 상황의 이분법으로만 독자에게 보여 권선징악을 권장하는 것일뿐.... 권선징악, 의협이란 주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요.
    님께서 위에 열거한 부분에서 반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안보이는 부분이 무의식 에 머리속에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아니라면 지독히 이기적이거나 냉소적일 수도....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비록 주인공이 초인이라 할지라도 뭘 할수 있겠습니까? 현대사회에서 특별히 쌈을 잘해도 잘하면 경호원, 군인이요 못하면 깡패밖에 되지 못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저 깽판치고 돌아다닐뿐.....
    요즘소설에서는 이런 가식적인 상황속에서의 의협과 권선징악을 말하는 소설도 적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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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무극검제
    작성일
    06.12.21 09:52
    No. 4

    판타지 소설은 그냥 기분좋게 킬링타임용으로 읽는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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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3 녹슨칼
    작성일
    06.12.21 15:00
    No. 5

    음...제가 설명을 잘 못했나요?....(-_-:)
    한쪽의 주장을 하게 된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룬다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바로 이분법적 사고를 말하는건데요. 의와 협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고민은 보이지 않고 위장됐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주인공의 수동적인
    자세, 혹은 맘에 안들어 한대 쳐서 죽였는데 그놈이 악인이었더라 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선행등이 흔하게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악인(전 특별히 이 단어도 그리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이 주인
    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의협의 화신으로의 변신.

    그리고 노동자에 관한 예는 저도 당연히 동의합니다. 핏값의 수십,수백
    배를 지불하고도 소설속에선 그에게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호쾌한것으로 결과적으론 무림을 위해서 혹은 평화를 위해서
    등등 공정한 행동을 한것으로 작가가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주인공과 그 같은편은 좋은놈, 상대방은 나쁜놈으로 나눠서 거기에
    맞춰 소설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다른 시각,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때려죽였으면 자신의 만족감을
    표시하는게 아니라 그것이 당연한, 정당한 행동(권선징악)으로 상황을
    몰고가지 말았으면 한다는것이지요.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상황을
    이끌지 않고 주변이 상황을 이끌어 정당화시키고 독자에게 인식시키
    려는것이 불만족스럽다는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15:46
    No. 6

    이분법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의 한계입니다. 가상의 현실이라도 현실이 반영되기에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지요. 우두머리가 절대악이라도 거기에 따르는 많은 고용인, 민초는 선에 가깝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직접적인 행동을 하고 욕심에 움직이며 사람을 죽이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악의 화신이지요.

    태어나서 거의 평생을 주입식으로 교육받는 일반인의 도덕관념에 악을 권장하는 것은 굉장히 눈이 찌푸려지는 일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이 그런 이분법적인 배경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선행과 의협을 말합니다.

    아니면 다크포스가 줄줄 흐르는 소설이 되던가. 권악징선의 냉소적인 소설이던가. 막깨부수는 호쾌하지만 지극히 독선적인 욕망만족 소설이 되겠지요. 그런 소설도 요즘은 많이 나옵니다. 오히려 인기도 많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21:09
    No. 7

    녹슨칼님.
    뜬금없는 글 올립니다. 님의 글에 흠을잡고 딴지를 걸만한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햇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글이란 다 읽고 비평하는 경우는 한국의 경우 신춘 문예를 예로 들자면 10편 내외 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기사화 되엇습니다. 덧붙이자면 지금은 모르겠으나 옛날에는 거의전부, 반드시 글을 평가 할때 다 읽을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걸로 알고 저도 그렇게 읽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당시에, 반듯이 한 꾸러미의 계란을 검사하기 위해서 열개를 ㄷ ㅏ깨는 것은 손실이고 바보짓이라고 했습니다. 년말 행복하세요. 그리고 개인적인 부탁은 그 어떤 누구의 작품이건 속으로 따져가면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인가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러다보니 안목이 생기더군요. 메리 클스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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