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어설프나마 한마디 적습니다.
저도 김부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바로는 세간의 평가처럼 김부식이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자 같은 골수 깊은 사대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치력이 뛰어난 사상가로 평가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근대를 거치면서, 고구려등의 문제가 붉어지면서 치졸한 사대주의자로 폄하받는데, 그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김부식은 묘청등의 난을 진압하고 권력의 핵심에 다가갑니다. 그러하기에 그들과는 반대되는 정책과 사상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즉 묘청등이 고구려의 정통이라 한데 비해, 김부식은 신라의 정통이라 주장한것이지요. 때문에 삼국의 역사를 신라를 기준으로 썼기에 그러한 평가를 받지 않았나 합니다. 게다가 신라 왕손의 후예이니.
마지막으로 실지로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몇몇 오류가 보이기는 하지만, 생각처럼 짙은 사대주의의 향기를 느끼기는 힘듭니다.
옛 사료 중에서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하여 고대사를 부풀리는 일은 학문적 정의에 위배됩니다. 친일 사학자의 주장이기에 믿을 수 없다라는 오물 덮어씌우기에 놀아나지 말고 어디까지나 학문적 양심을 가지고 진실이 무엇보다 아름다우며 가장 유익하다는 견지에서 연구하여야 합니다. 매국적 왜곡은 나쁘고 애국적 왜곡은 좋다는 생각으로는 한없는 소설의 세계밖에 나올 게 없습니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 자가 원래 없었다는 주장은, 낚이셨습니다. 링크 하나 겁니다. <a href=http://fireblood.egloos.com/1415778
target=_blank>http://fireblood.egloos.com/1415778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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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합니다. 삼국사기는 "편년체"가 아니라 "기전체"입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전, 김부식이 사대주의자였다면 굳이 기전체를 사용하지 않았으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편년체는 사건발생연대순으로 쓴 것이 맞구요. 기전체는 "역사사실을 서술할 때 본기(本紀)·열전(列傳)·지(志)·연표(年表) 등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는 역사서술의 체재"를 말합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제가 김부식이 개념 없는(?) 사대주의자가 아니란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본기"는 황제의 업적을 다루고 "세가"는 제후의 전기를 다룬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참고해서) 개념 없는 사대주의자라면 우리 나라의 왕조의 왕을 황제의 선에 넣지는 않았겠지요. 다시 말해서, 본기가 아닌 "세가"라고 했어야 함이 옳았다는 것입니다. 사대주의 입장에 따른다면요.
삼국사기가 소설이 아니라 역사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정사라는 것도 있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의 오류가 사마천의 사기나 다른 중국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적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일식기록(천문관측기록 등)이 얼마나 맞느냐에 따라서 역사서가 진짜나 거짓이냐라고 구분 짓는 것이라면, 삼국사기가 역사서가 아니라 거짓이라 분류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대주의.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사대주의 성향을 띤 것은 사실이지만 땅 크기가 크고 힘만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받들던 것은 아닙니다. 같은 중국 땅에서 일어난 강대국이라고 해도 처음에 원이나 금, 청을 사대하지 않고 당, 송, 명 등등의 나라를 사대했던 것을 보면 그 나라가 가진 힘에 굴복하기 보다는 더 뛰어난 선진 문물 때문이라는 이유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냉정히 말해서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들 중에서 중국의 문화가 가장 우수했기 때문이지요.
또한 김부식. 김부식이 유학자였던 것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대적 성향을 완전히 지우기에는 무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김부식과 정지상, 혹은 김부식과 묘청의 대립구도를 봐서도 김부식이 정지상과 묘청의 난에 진압하였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요. 정지상과 묘청.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서경파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식견의 바탕은 풍수지리설 등의 과학적 입증이 안되는 그런 이론에 있었구요. 합리적 사고니 뭐니, 이며 기가 뭐니, 그런 생각을 하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지상과 묘청의 주장은 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수 밖게 없겠지요. 이들의 충돌은 권력쟁탈을 위한 개경파와 서경파의 충돌도 되겠지만 학문적 성향에서의 충돌도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 삼국사기의 편찬은 김부식 혼자서만 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책임자였을 뿐입니다. 편찬에 있어서 마지막에 훑어보고 정리하고 하는 것은 김부식이 했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삼국사기는 고려라는 한 국가에서 낸 역사책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보면은 각 역사적 사건 혹은 인물에 대한 김부식의 개인적인 역사관 혹은 견해도 들어가있습니다. 현실비판적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만 봐도 김부식이 무조건적인 사대주의자라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학자이기에 싸그리 지나친 사대주의자로 넣기엔 무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선의 유학자들만 봐도 조선 전기와 후기에 나타나는 무리들의 성격이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가 쉽게 훈고파와 사림파라고 나누긴 하지만, 이들이 성리학자이고 유학을 높이 샀다고 하여도 정치적인 코드에서는 서로 다른 성향을 보였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부식 그 자체만 봐도 유학자이긴 해도 중국에 대한 지나친 사대보다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독자성을 중시하였다는 것도 고려할 수 있고요.
물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몇가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기술된 내용에는, 음.... 예를 들어서 고문서에서 따온 내용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출처가 잘 안 밝혀졌다고 들었습니다. 어디어디에 이런 말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디며 누군가에게 지어진 책이라는 말도 첨부해주었다면 삼국사기를 연구하고 사실을 입증해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많이 줄어들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사대성 논란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가 유학자였으며 그 시대에 정권을 잡은 많은 사람들이 유학자라는 것에 더 논란이 가중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는 총체적인 흐름 속에서, 어느 한쪽만이 아닌 양쪽 모든 의견을 냉철하게 봐야 하는 것이 옳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김부식에 대한 신채호의 의견, 혹은 김부식과 묘청의 대립, 또는 김부식과 정지상의 대립. 어느 한쪽만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식민사관을 가진 어용사학자들의 말을 너무 참고하시지는 마시구요.
^-^
제가 올린 첫 댓글에 오류가 있어서 다시 남깁니다.
아. 이병도씨. 이완용씨의 후손이라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완용의 무덤을 이전할 때, 그 관이 나왔는데. 이병도씨가 그 관을 산 사람에게 다시 사서 그것을 불태우면서 크게 울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완용의 무덤 이전에 대한 이야기는 또 웃기지도 않습니다. 이완용의 시신에 나온 금니며 금반지들을 가지고 이완용씨 후손들이 서로 가지겠다고 싸웠다는 일화가 있다던데, 뭐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지 못하고 들은 이야기라. -_-;;; 여하튼, 이병도씨의 사관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맞는 듯 합니다. 이건 그냥 사족인지라 두서 없이 떠들었습니다. ^-^
사대주의, 소중화, 가끔 저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역사적 사료와 연구가 많은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증오에 가까운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도 몽골에 지배를 받은 고려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거든요. 더 재미있는 점은 환단고기라는 희대의 판타지 소설은 자주적이라고 생각하며 믿는다는 겁니다.
삼국사기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중국 역사는 잘 아는데, 우리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의도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중국의 천조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본기'라는 편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부식이 철저한 사대주의자라면 과연 이럴 수 있었을까요?
소중화, 앞에 소자가 붙어서 그렇지 중화입니다. 중화라는 말, 아무나 가져다 붙일 수 있는게 아닙니다 . 어지간한 문화적 자부심이 없다면 가져다 붙일 수가 없는 게 바로 중화입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선 이후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청왕조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반발심리도 작용하긴 했지만 명나라가 망했으니 이제 진정한 문명국은 조선이다라는 선언이나 진배없는 것이 바로 소중화입니다.
민족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문화 우월주의에서 시작합니다. 조선이 스스로를 중화라고 표방하는 건 중국과 자신을 구분짓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후에 일제시대 민족주의의 시발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실력도 없이 입만 살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성리학 중심의 사대주의란 지금과 같은 힘의 논리가 아닌 도덕과 문명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이대올로기 속에서 문명국, 즉 상국은 도덕적 명분이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 오만함이 중국과 일본을 우습게 여기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니 아이러니지요.
지금의 관점에서 힘이 없다는 건 곧 죄악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유교논리는 지금과 같은 힘의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도덕적 명분이라는 기치 아래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사대를 하고 강대국은 약소국에게 강대국으로서 예를 갖춤으로서 성리학적 인격의 완성을 꿈꿨던 그들에게 사대는 너무도 당연한 외교방법이었습니다.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서 외국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정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사실무근의 판티지 취급을 하는걸까요?
물론 단군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장르소설이 될 소질이 다분하지만 고조선의 통치자 정도로 본다면 거의 정설에 가까운 것을요
단군신화(곰 호랑이 쑥이 등장하는 그것!)는 누가봐도 허구에 가깝습니다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지요. 그렇지만 로마의 건국신화만 봐도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렇다고 로마는 없던 나라입니까?
그리고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중에 사실과 업적등이 1이라고 하면 아마 학자들은 10이라고 부풀릴 겁니다. 이게 '역사'라는 학문이 갖는 필연성이니까요.
중국이 동북아 공정을 왜 시작했겠습니까? 왜 모든 나라들이 자기들의 건국 신화를 가지고 있고(사실 자국민들도 사실로 안 믿지만) 나라의 정통성을 그렇게 주장하려고 애 쓸까요? 왜 일본은 역사를 날조를 할까요?
정치론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면 단군과 고조선이 설사 허구라고 해도(이미 허구가 아니라는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걸 '역사'라고 말해야 하고 주장해야 합니다.
사이비도사/ 단군과 고조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리고... 정치론적 입장에서야 그렇겠죠. 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날조 내지는 왜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학문의 순수성에도 위배되지요.
설령 그런 이상주의적인 관점을 떠난다하더라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날조나 마찬가지의 행위. 그렇다면 그들을 무슨 근거로 비판하죠?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관점은 국내에서나 통용될 뿐, 제3자인 국제적인 입장에서는 용인되지 않습니다.
중국이야 국내통합이라는 국내적인 목적, 일본이야 우경화라는 국내적인 목적이 있기에 그런 왜곡을 할 이유가 있지만, 한국에서 굳이 그런 입장을 취할 까닭이 있을까요?
릴리엔//솔직히 겁나 당황스럽네요..^^;
우선 단군조선의 근거지는 백두산 아래 아사달입니다. 아사달은 현재의 하얼빈인데, 그 지역을 발굴하고 있는 북한의 학자나 소련 학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은
"우리 조선족이 청동기를 사용한 것은 서기전 2 천 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 천 년 전이다. 그때 농가의 유적도 발굴했고 농기구와 오곡 씨앗까지 발굴했다."
-1978년 8월 14일 북한 '중앙통신'
"조선족은 4 천년 전부터 청동기를 사용했다. 단군왕검이 있던 유적지도 발굴했고 단군 조선 시대 중앙 행정기관의 유적지도 발굴했다"
-유 엠 푸진이의 '고조선'이라는 책에서(소련 학계에서 발간한책)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고조선의 실채에 대해 연구해주고 있는데 정적 우리는 학문의 순수성 때문에 아직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1등입니다/ 호오~ 그렇군요. 북한 쪽이야 선전용 거짓일 가능성이 있으니 솔직히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소련 쪽은 상당히 신빙성이 가는군요.
아, 그리고 학문의 순수성의 입장이라면 말씀하신 북한, 소련의 이야기는 유물 유적등의 실제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들도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물론 '해석'과정에서 날조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대한민국은 고조선의 근거지와 떨어져있으니, 순수하게 고조선을 연구하기에는 어려운 입장이지만... 어쩔 수 없지요. 외국에라도 나가서 연구할 수 밖에...
중국의 역사왜곡은 정통성 계승이 아닌, 현재 영토에 있었던 나라를 연구한다는 속지주의적 관점만이라면 문제가 없긴 합니다. 어디까지나 보는 시각이 다를 뿐이니....
문제는 중국에서 그것에 그치지 않고 유물 유적을 훼손하며 조작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날조, 왜곡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짓이죠. 도굴, 약탈보다도 더 비열한 행위. 명목상으로는 관광지 개발이라고 하면서... 제대로 보존도 안 하고 오히려 더 망가뜨리고 있는데 무슨 관광지를 만들겠어요. 속셈이 뻔히 보인다고 할까....
'환상' 으로 검색하던 중 보게 되어서 뒤늦게 코멘트를 답니다.
저같이 뒤늦게 보게 되는 분들을 위해..
이병도가 말년에 했다는 말은? <a href=http://orumi.egloos.com/2462275 target=_blank>http://orumi.egloos.com/2462275</a>
김부식: <a href=http://orumi.egloos.com/1523908 target=_blank>http://orumi.egloos.com/1523908</a>
역사서는 삼국사기밖에 남은 게 없다? <a href=http://orumi.egloos.com/3032752 target=_blank>http://orumi.egloos.com/3032752</a>
일제는 '역사서' 20만권을 태웠나? <a href=http://orumi.egloos.com/2458426 target=_blank>http://orumi.egloos.com/2458426</a> <a href=http://orumi.egloos.com/214612 target=_blank>http://orumi.egloos.com/21461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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