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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36 논검자
작성
06.11.19 11:58
조회
3,192

작가명 : 대장정

작품명 : 반왕 4권

출판사 : 영상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결국 독자는 글로 작품을 읽는다. 간혹 보면 독자들의 비평에 대해 작가가 직접 해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설정상의 오류라면 모를까 왜 그런 작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무지한 독자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작품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서? 결국 그런 해명은 작가의 머리 속에 있는 세계를 독자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판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얼까? 물론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혹은 내가) 판타지를 읽으면 재미 혹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말을 안 듣는다.'라고 투덜대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창조주는 작가 자신일지라도, 좋은 작품의 인물들은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작가는 흐름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작가가 그 흐름을 함부로 거스르려 하면 작품의 질서는 무너지고 독자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와 버린다. 갑자기 책 속에서 쫓겨난 독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차라리 영어단어나 하나 더 외울까?'

반왕은 요즘 관심있게 보던 작품 중 하나다. 전쟁소설,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반왕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출판속도도 빨라서 전 내용을 잊어버릴 염려도 없었다. 괜스레 '인빅투스'라는 말에 가슴 떨려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반왕과 함께했던 소장정도 어쩌면 4권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왕은 주인공 레미 앙쥬가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레미의 전쟁이야기이고 레미의 성장이야기다. 이런 구도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기 쉽다. 레미가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순간에는 독자들도 인빅투스를 외치게 되지만, 레미의 카리스마가 사라진다면 독자들도 어느새 패잔병처럼 낙오하고 만다.

작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작품내내 지치지도 않고 레미의 카리스마를 강조한다. 화자가 레미가 아닌 다른 병사가 될 때 그들은 감탄한다. 끊임없이 감탄한다. '저들이 바로 무적의 앙쥬군단이구나.' '저 사람이 바로 불패의 명장 레미 앙쥬구나.' 패턴도 같다. 실망 - 감탄 - 경악의 순서다. 물론 각각의 순서에 '인빅투스'와 '무적의 앙쥬군단'은 빠지지 않는다.

패턴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다. 레미의 카리스마는 사건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부자연스럽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수십 만을 장사지낸 그 대단한 전공이 있음에 작가는 무엇이 그리 불안했을까?

패턴에도 불구하고 레미의 카리스마가 나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점은 일관성이었다. 제국군인이라는 자부심. 시민에 대한 충성심. 적지 한가운데서도 배신자들에게 재판의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는 시스템에 대한 사랑.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반왕이 될 수 있었을까? 설득력있는 반왕이 탄생한다면 나도 같이 '인빅투스'를 외치고 싶은 마음에 두근대며 기다렸다.

그런 레미가 4권에서 드디어 '반왕'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너무나 급작스럽다. 어려서 레미의 모든 것이었던 이사벨이 황제의 후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레미는 황제를 적으로 규정한다. 황제가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마치 뿔난 망아지처럼 일관되게 미워한다. 물론 앞에서 이사벨에 대한 레미의 애정이 묘사되기는 했다. 그러나 부족하다. 작가의 머리 속에 살아있는 레미와 달리 소설 반왕 속에서의 레미는 너무나 가끔 '이사벨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름 덤덤하던 레미가 어느 순간 폭주해버린 것이다. 작가는 그 앞의 사건들을 통해 레미를 변호하고자 한다. 우선 여름의 검 아이스타스가 레미의 성격을 바꿨다고 한다. 그 결과 레미는 3권까지 지켜오던 성격을 20쪽만에 바꾸게 된다. 그것도 5줄 정도의 설명으로. 또 하나 레미가 갖고 있던 정신적 상처를 자극시킨다.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기억이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사벨과 대면시켜 충격을 강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레미는 상처받았을 것이다. 죽었다고 애써 믿어왔던 아버지와 형들의 배신이나, 전장의 고난에서 가슴 속의 한 가닥 순수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사벨에 대한 기억이나. 그에게는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게다. 그렇다고해서 지금까지 믿어왔던 가치관이 일순간에 흔들린다? 더욱이 반왕이 되고자 한다? 그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레미가 아니다. 제국의 시민과 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레미. 그런 레미가 반왕이 되려면 나름의 설득력이 필요하다. 반란상황에서도 '인페리움'을 얻고자 노력했던 레미다. 이상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라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레미의 신념이고 불패의 인빅투스다. 그런데 레미는 공적 명분을 포기하고, 사적 명분을 취해버린다. 제국을 위해서도 시민을 위해서도 아니다. 레미 자신의 입으로 얘기하고 있듯이 얼마 전까지는 충성을 얘기할 수 있던 황제가 이사벨의 존재하나만으로 적이 되어버린다. 이런 영웅을 과연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레미를 따를 것이다. 그가 뛰어나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작가는 알아야 한다. 이제 한 독자의 눈에는 레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라고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물론 내가 레미가 완벽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적 명분? 취해도 좋다. 하지만 그러려면 레미가 격정적인 인물이며, 이사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드러내왔어야 한다. 그런 레미라면 나는 기꺼이 황제에게 함께 분노했을 것이고, 레미의 처지에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만 감정의 폭류에 튕겨나와 허허로워 했을 뿐이다.

작가의 머리 속에 있는 '레미'는 분명 일관된 개성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일 것이다. 나는 숨겨진 그의 모습이 보고 싶다. 말하지 못한 그의 생각을 읽고 싶다. 4권의 레미가 아니라!


Comment ' 10

  • 작성자
    Lv.5 tarim
    작성일
    06.11.19 14:59
    No. 1

    비평글이 흥미진진합니다. 오히려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금강지체
    작성일
    06.11.19 17:56
    No. 2

    인빅투스 임페라토룸이 무슨 말이에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조호
    작성일
    06.11.19 18:34
    No. 3

    아쉬운 부분 이었지요
    1~3권까지 그려지던 레미 앙쥬가 아니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眞柏
    작성일
    06.11.19 19:09
    No. 4

    제가 느낀 것을 너무나 잘 설명해 주셔서 대단하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80 청동미르1
    작성일
    06.11.19 19:20
    No. 5

    최소한 5권까지 보고 이런글 써야 하지않은가 생각 합니다
    저도 초반 인투빅스 에 열광 했죠 4권 은 반왕 으로 변하는 과정
    이라 최소한 한권 나와야 작가이 생각 을 알수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성급한 비판보다 격려가 더어울리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논검자
    작성일
    06.11.19 19:22
    No. 6

    우선 오기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임페라토룸은 임페리움으로 정정하겠습니다. 제가 책을 옆에 놓고 쓰지 않아 고유명사에서 자꾸 오류가 나는 것 같네요. 이는 작가님은 물론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임페리움(Imperium)은 현대적 감성으로 보면 '계엄권'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개선장군에 주어지는 임시적인 명예칭호였으나 카이사르가 임페라토르(임페리움을 가진 자)라 불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점점 실권과 결합됩니다. 작품 내에서도 군사령관에게 부여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빅투스(Invictus)는 '불패의'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동명시와 함께 인용되서 앙쥬 군단의 구호 정도로 사용되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마법시대
    작성일
    06.11.19 20:00
    No. 7

    글쓴이의 머리속에서야 어떻든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로 비중없던 히로인의 죽음으로 주인공이 폭주한다는 내용은 많은 글쓴이들이 실수하는 부분이지요.

    반왕 4권을 보지 않아서 반왕도 그런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평글만 보자면 그것들과 다른것 같지 않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유니크블루
    작성일
    06.11.20 10:03
    No. 8

    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은영전에서 안네로제가 후궁으로 팔려나가자 라인하르트가 마음속에 칼을 품게 된 것과 같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라인하르트는 예전에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0이었지만 레미는 100이었죠.

    100이 깎이고 깎여 0이 되는게 아니라 순식간에 0으로 반전됩니다. 뭐 중간에 군단기 기수 체시의 죽음과 아버지의 배반등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너무 급격하게 바꼈죠... 주인공의 사상이...

    뭐 애초에 제목이 반왕이니 그러려니 해야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깡치
    작성일
    06.11.21 11:13
    No. 9

    저도 4권에서 주인공의 충성심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과정이 너무 작위적이고 급하게 만들어 어색해보였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푸른벌레
    작성일
    06.11.25 00:51
    No. 10

    아버지와 형의 배신도 너무 갑작스럽게 뛰어나와서 앙쥬가문과의 갈등을 높혔고 이사벨대한 감정이 너무 과격해지면이 있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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