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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과 짐멜의 문화사회학

작성자
펜잡은노새
작성
06.10.16 23:51
조회
1,560

* 총론의 비평이 점차 일정한 구조로 귀착하는 가운데 짐멜의 사회학을 접하게 되어, 그것을 장르문학계에 적용해본 글입니다.

* 인용을 허락해주신 당근이지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이 글에 있는 모든 오류와 있을지도 모르는 편협함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 이 글의 목적은 장르문학의 개별 작품이나 그것의 전형적인 형식보다는, 그것이 생산, 유통, 소비, 비판, 재창조를 이루는 구조 자체의 의의를 발견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 한국 장르문학계의 자존감 확립을 기원합니다.

판타지소설이나 무협소설 등,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과 대별되어 심심풀이로 읽는, 대여점에 비치된 소설들을 ‘장르소설’이라고 한다. 그 장르소설 중에서도 명작이라고 일컫는 장르소설이 몇 편 있고, 나는 그 소설들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스스로도 판타지소설을 하나 써 인터넷의 장르소설 사이트에 연재하였다. 처음에는 ‘조아라(http://joara.com)’에 연재하였는데, 그곳에서는 누구든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고 조회수에 따라 게시물이 정렬되기 때문에, 말초신경의 자극으로든 무엇으로든 흥행성을 보장받지 못하면 독자와의 소통로가 거의 차단되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매우 평가절하되고 있는 장르문학의 세계에도 나름대로 질적 향상(많은 장르문학 독자와 작가들의 최고 이상은 ‘장르문학이 순수문학의 권위를 획득하는 것’이다)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으며, 지금 연재하고 있는 문피아(http://www.munpia.com)라는 사이트는 그 노력이 가장 제도화 된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문법이나 맞춤법파괴가(비록 정도를 지나쳐 꼬투리잡기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관습적인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예이고, 고정적인 독자를 확보하려면 심사를 거쳐 게시판을 따로 얻어야 하는 제도나 비평란과 감상란이 마련되어 있어 장르문학 전체에 대해, 또 개별 작품에 대해 꾸준한 검토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또 다른 근거가 될 것이다.

오늘 단편적으로나마 짐멜의 이론에 관해 들으면서, 내가 보아왔던 장르문학 시장과 그에 대한 ‘비평’ 중 상당한 부분이 그 이론으로 설명되고 비판될 수 있다고 느꼈다. 즉 짐멜의 이론을 빌면, 장르문학 마니아들에게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소위 ‘양판소’를 비롯하여 장르문학에 특이하게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장르문학계 내에서는 상당히 진부한 논의가 된 “어떻게 장르문학을 순수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릴 것인가?”라는 해묵은 질문에 대해서도, “작가가 소신을 지켜야 한다.”든지, “출판사가 이윤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양질의 작품을 발굴해야 한다.”라든지, “독자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든지, 그 3자가 병행되어야 한다든지, 인터넷 소설사이트의 자체적인 정화기능을 강화해야한다든지, 그것은 이상론에 불과하며 어떠한 방식으로도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든지 하는 온갖 종류의 주장들을 벗어난 다른 차원의 가치 발견, 혹은 의미부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장르문학 비평계에서 끊임없는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양판소’ 문제이다. 주석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양판소란 정형화된 이야기구조를 가졌으며 독창성이나 참신성, 주제의식, 개연성 등등의 제측면에서 현격한 질적 저하를 나타내는 작품들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정형화된 이야기구조에 초점을 맞춘 한 마니아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제목] 내가 판타지에 가면 평민이 되고 싶은 이유

글쓴이: 당근이지 / 글쓴날:  2006-10-15 19:46:10

귀족으로 태어날 경우 주인공이 아니라면 나는 살이 뒤룩뒤룩 찐 한마리 생각없는 돼지가 되어 다른 이들을 학대하다가 소드맛스타에게 목을 베일 것이다. 드래곤으로 태어날 경우 나는 하는 일 없이 잠만 자다가 기지개를 펴고 드워프들을 괴롭히러가서 소드맛스타에게 두드려 맞고 꼬봉이 될 것이다. 엘프로 태어날경우 남자라면 주인공에게 까불거리다가 열심히 맞고 고개도 못들 것이다. 여자라면 별다른 썸씽도 없는데 소드맛스타의 눈깔을 보고 '당신의 순수함에 반했어요'란 말을 하며 소드맛스타 빠순이가 될 것이다. (중략) 그러나 평민이 된다면 그냥 세금만 꼬박꼬박 바치고 있다가 소드맛스타들이 잘먹고 잘살게 해줄것이다 ㄳ

이 글 하나만 보아도, 양판소의 스토리구조와 그 주인공, 주인공 이외의 모든 등장인물과 소설 내부에서의 그들의 역할 등등을 모두 알았다고 할 정도로, 현재 양판소의 정형화는 심각하다. 그 정형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물론, 그것이 끝없이 인기를 끌고 엄청난 양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지나치게 전형적인 정형성’이 계속 질타받자, 소드마스터를 스피어(Spear)마스터나 보우(Bow)마스터로 바꾸는 정도의 아주 피상적인 독창성이 시도되기도 하고, 그것이 매우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져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상황까지 전개되기도 한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 속에서 판타지문학의 정형화는 점점 구조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그 수준은 현존하지 않는 ‘마법’에 관한 이론이 상당수 독자들의 머릿속에 구체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 그 이론을 현실화시킬 수만 있다면 장르문학 독자들의 상당수가 전쟁의 비밀병기로 곧장 1선에 투입될 수 있을 정도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이러한 정형성이나 여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마니아층의 상당수가,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장르문학을 10년 이상 읽어왔다’는 경력에서 끌어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 작품의 세계관을 비판할 때, 그 세계관이 전혀 실존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한 작품에서 보면 드래곤이란 이러이러한 존재이므로,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방식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리구조를 전제한다. 이 비평가들이 요구하는 창의성이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컨대 기초적이고 형편없는 마법으로 여겨지는 그리스(grease, 땅의 마찰계수를 일정 시간동안 0으로 만드는 마법)를 전술에 응용하여 혁혁한 전과를 거두는 모습이라든지 하는 식의 창의성이다. 그러한 창의력은, ‘장르문학을 얼마나 폭넓게, 얼마나 많이 읽어서 그 정형적인 패턴 안에 얼마나 확고히 뿌리박았느냐’에 따라 상당히 좌우되므로 ‘장르문학을 10년 이상 읽어왔다’는 근거는 상당히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나는 이러한 구조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짐멜 문화사회학 이론의 아주 적절한 구현이 된다고 생각하여 매우 흥미로웠다. 즉 기존의 예술이 인간의 자기실현이나 의미구현이라는 데에서 존재의미를 찾았다면, 근대의 예술은 일상화되고 복제되는 데에 그 특징이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화된 예술’로서 기능한다는 그의 논의가 여기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짐멜이 오직 음악을 녹음해서 듣는다든지, 그림을 복사한다든지 하는 말 그대로의 ‘복사’만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르나 판타지소설에서는 그것이 내용과 형식 양면에 있어서의 철저한 복제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 현대의 다양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오히려 개별화와 사회화의 동시적 진행을 겪고, 그 개인이 사회화된 관계를 얼마나 다양하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개별성을 실현한다는 그의 논리도, 이 경우에는 그의 문화이론에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중첩되는 것은 사회적 관계망이 아니라 ‘수많은 판타지 세계관’에서 유추할 수 있는, 수많은 문화컨텐츠나 문화형식이 될 것이다.

나는 양판소를 양산해내는 작가들이나 그것을 끝없이 유통시키는 출판사를 옹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매우 비판적이다. 또한, 하나의 전형으로서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을 구분하는, 작품 내적인 면에서 보면 개별 작가들 간의 역량차이에 불과할 그런 차이를 장르 전체의 것으로 범주화하여 파악하려는 일련의 장르문학 비평가들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대의 예술이 실현했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데(그 형식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멜이 말하는 ‘사회학적 미학’의 차원에서, 적어도 ‘판타지 문학 비평가’들이나 그들이 형성하는 담론은 적극적으로 재평가하고 긍정적으로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장르소설’이라는 고도로 정형화된 문화형식을 매우 오랜 기간 경험하고, 그 내용을 자기 안에 내재적으로 중첩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개성을 창출하며, 그러한 개성을 표현한 또 하나의 작품을 직접 창작하기도 하여 장르문학의 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짐멜의 말을 빌어 “비교에 근거한 차이감정과 온갖 비교에 대한 당당한 거부의 독특한 조합”을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장르문학에 어떻게 순수문학 정도의 작품성을 부여할 것인가, 혹은 장르문학 외부인의 시각으로 ‘장르문학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의 진부한 담론을 벗어날 수 있다. 짐멜의 시각을 빌어 사회적으로 조감해보면, 장르문학은 분명히 근대 예술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적극적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양판소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가 현대 한국문화의 한 축을 이루며 그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석1 . 양판소: 양산형 판타지 소설. 정형화된 틀에 맞추어, 주인공 이름만 바꾼 채 계속해서 여러 작가들에 의해 생산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독자층을 확보하여 출판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유통시키는 그러한 유형의 판타지 소설을 말한다.

주석2 . 소드맛스타: Sword Master라는 정형화된 판타지의 영웅을 낮추어 일컫는 말.

주석 3. 세계관 : 판타지 소설에서 말하는 세계관이란, 누가 어떠한 기술을 쓰고, 세계의 지리는 어떻고 사는 종족은 어떤지, 개략적인 역사는 어떤지에 대한 설정을 이야기한다. 학문적 관점에서의 세계관과는 의미가 다르다.

주석 4. 그러한 창의력은, ‘장르문학을 얼마나 폭넓게, 얼마나 많이 읽어서 그 정형적인 패턴 안에 얼마나 확고히 뿌리박았느냐’에 따라 상당히 좌우되므로: 그리스라는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나, ‘그리스’를 전쟁에 이용하는 것이 ‘파이어볼’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창의력 있는 전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저러한 창작도, 비평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논지이다.


Comment ' 2

  • 작성자
    Each time
    작성일
    06.10.17 05:09
    No. 1

    짐멜의 문화사회학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어느정도 부족한듯 합니다.
    주석에 학설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펜잡은노새
    작성일
    06.10.17 07:43
    No. 2

    Each time님 // 애초에 글을 쓴 목적이 짐멜 문화사회학을 공부한 학생으로서 그 이론을 적용해보라는 교수님의 지시에 따른 것이어서 설명이 부족해졌습니다. 실은 저도 그 내용에 대해 깊은 소양이 없어서, 또 이론의 내용이 좀 방대하여, 주석 정도로 그것을 요약할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이 주제에 관해서는 김덕영 "짐멜이냐 베버냐(베버냐 짐멜이냐)"라는 책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__)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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